독일어로 글을 쓰는 일본 여성 작가 다와다 요코의 에세이 『영혼 없는 작가』.
이민 작가로는 드물게 이중 언어로 글을 쓰고, 전 유럽에서 주목 받고 있는 다와다 요코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언어를 모르는 채로 온 유럽에서 관찰한 낯선 사물과 세계를 낯선 언어를 배워 적어가며, 낯 선 것에 적응한 저자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풀어내고 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시각을 드러내는 다 와다 요코. 우리의 삶에 대한 빛나는 성찰과 소설가로써의 경험, 낯선 풍경이 함께하는 여행까지.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진지함과 새로움으로 풀 어낸 다와다 요코의 내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현재 독일 문학계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여성 작가,
타와다 요코의 대표작!
『목욕탕』과 『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작품의 특징이자 강점은 이야기의 구성이나 줄거리, 사건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아’와 ‘매체로서의 언어와 몸’과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 있으며, 이는 특히 중단편 소설과 에세이에서 두드러진다. 『목욕탕』과 『영혼 없는 작가』 역시 이런 특징을 여실히 보여 준다. 다와다는 언어를 매개로 한 기존의 자동화된 세계 인식 방식을 고찰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흥미로운 시도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언어 부재의 상황’을 인위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목욕탕』의 주인공 ‘나’는 직업이 동시 통역사로, 언어에 대해 일상적이고 직업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그녀는 한 무역 회사의 독(獨), 일(日) 공식 모임을 통역한다. 그러나 두 그룹 간에는 진정한 의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의례적이고 주변적인 언어만 허공에서 계속 교차한다. 쓰레기 같은 허위 언어에 대항할 수단이 없는 그녀는 말을 더듬고 위가 뒤틀린다. 결국 화장실에서 토하다가 기절한 주인공은 청소부의 방에서 다시 깨어나지만 모임에서 먹었던 생선이 자신의 혀를 잡아먹은 꿈을 꾼 이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혀를 탈취당한 상황은 세계를 인지하며 표현하는 매체로서의 언어를 그 자동화 관계 속에서 끊어 내기 위해 작가가 새로 설정해 낸 인공적이고 환상적인 상황이다. 이 상황은 결코 세계에 대한 인지가 중단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언어 굴레에서 해방된 상황으로서 새로운 방식의 인지와 감각이 출발함을 암시한다. 기존의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난 주인공은 초감각적, 초현실주의적 상황으로 이끌려 가는데, 거기에서 그녀는 한을 품고 자살한 한 여인과도 직접 만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작가의 언어관, 문학관과도 맞닿아 있는데, 즉 언어는 자아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체로서 자아가 실제 세계를 보지 못하도록 덮어 버리는 매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혼 없는 작가』에 등장하는 샤샤라는 여성도 주목할 만하다. 글을 읽지 못하는 샤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다. 화자가 보기에 샤샤는 세상을 ‘읽기’보다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관찰’하고자 한다.
“그 여자는 나를 볼 때마다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주 집중해서 관심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때 한 번도 내 얼굴에서 무엇인가를 읽어 내려고 하지는 않았다.”(12쪽)
다시 말해서 보이는 세상을 이미 고정된 세계 해석에 연결시키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자 하는 인물이다. 또 다른 문맹인 소냐는 불사조 비누의 포장지에 비누와 상관이 없는 불사조가 인쇄되어 있음이 당연한 사실이 아님을 주목하게 만들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일깨워 준다. 결국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하나의 결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각하는 수많은 다른 대안적 지각 방식들이 존재함을 드러나게 해 준다.
“다와다는 마치 인류학자처럼 낯선 나라에 들어온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단순한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이제까지 한 번도 이 나라와 이 나라의 관습에 대해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는 것처럼.”
-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다와다의 이야기는 반쯤만 기억이 나는 노래처럼, 혹은 열쇠가 그 안에 들었는데 잠겨 있는 보석 상자처럼 마음을 뒤흔든다.”
- 뉴욕타임즈
“꼼꼼한 집중력의 작가.”
- Kirkus Reviews
“다와다 요코는 우리 세기의 피곤함을 사지에서 허물처럼 벗어 버리고 꿈에서나 떠오르는 영역에 대한 언어를 요구하고 있는 작가다.”
- 안나 두덴(작가)
“흥미로운 것들은 ‘사이’에 놓여 있어요. 단어들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문화들 사이에.”
- 다와다 요코
“사람들은 모국어 안에 있을 때에는 비겁하고 무력하다.”
- 다와다 요코
“저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안에서도요. 그래서 저는 독일어로 글을 씁니다. 또한 일본어로도 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어 한 가지로만 쓰든지 혹은 다른 언어로 나란히 병행해서 쓰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제 일본어에도 이것은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그것이 아주 흥미진진하답니다.”
- 다와다 요코
“저는 항상 자아가 중심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자아는 마치 물과 같은 자아입니다. 고정된 자아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흐를 수 있고 형체가 없는 몸입니다. 이 자아는 중심에 서 있고 이 자아가 세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아도 변신합니다. 이 자아는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아, 즉 의견을 가진 개인이고 이력이 있고 가족이나 자동차, 집 그 외의 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아와 달리 저의 관심을 많이 끕니다. 앞서의 자아는 저에게는 관심이 없고 물로써의 자아가 그러합니다.”
저자
다와다 요코
다와다 요코는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고,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1979년 19세의 나이로 시베리아 기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갔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짧은 이력서에조차도 이 기차 여행을 거의 빠짐없이 기재하는데,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 체험이 자신의 문학 세계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기차역에서마다 다른 물을 마시며 서서히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왔다는 점은 작가로 하여금 동양과 서양을 대립되는 세계가 아닌, 서로 겹치는 큰 경계 영역을 지닌 세계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새로운 세계와 언어에 대한 낯선 체험은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매개체’로서의 속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했다. 즉 언어는 투명한 유리처럼 자아와 세계를 매개시켜 주고 자신은 보이지 않게 물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선 매개체로서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이 매개체를 통해 생각하고 말해 왔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세계를 자명한 것 혹은 고정된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문시하게 만든다. 다와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나’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물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면서 체험하는 언어의 이방성 혹은 낯섦은 모국어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언어 권력에 매몰되지 않고 저항할 틈새를 찾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와다는 낯선 것이 주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다와다 문학 세계의 중심에는 언어의 낯섦이 놓여 있다.
1982년부터 다와다는 독일에 체류하고 있으며,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2000년에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유럽 문학에 나타난 장난감과 언어 마술」이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에 최초로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Nur da wo du bist da ist nichts)라는 책을 독일어와 일본어로 출판했다. 주목을 받은 『목욕탕』은 1989년에 발표되었고, 그 외에도 유럽이 시작되는 곳(Wo Europa anf?ngt)(1991), 손님(Ein Gast)(1993), 밤에 빛나는 학가면(Die Kranichmaske, die bei Nacht strahlt)(1994), 여행을 떠난 오징어(Tintenfisch auf Reisen)(1994), 부적(Talisman)(1996), 귤은 오늘 밤 안으로 탈취당해야 한다(Aber die Mandarinen m?ssen heute abend noch geraubt werden)(1997), 계란 속의 바람처럼(Wie der Wind im Ei)(1997), 오르페우스 혹은 이즈나기(Orpheus oder Izanagi)(1998), 틸(Till)(1998), 변신 (Verwandlungen)(1998), 오비디우스를 위한 마약(Opium f?r Ovid)(2000), 벌거벗은 눈(Das nacke Auge)(2004)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중,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시와 장편 소설과 연극, 방송극으로 장르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수상 이력도 눈에 띈다. 독일에서 레싱 문학상, 샤미소 상, 괴테 문학상 등을, 일본에서도 군조 신인 문학상, 이즈미 교카 문학상, 쓰보우치 쇼요 상, 다니자키 준이치로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 등을 받았다. 한편 1998년에는 튀빙겐 대학의 문학창작과에서 시학을 강의했고, 1999년에는 미국 MIT에서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올해 방한도 예정되어 있다.
역자
최윤영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 사실주의 소설, 현대 소설, 이민 문학과 비교 문학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 『사실주의 소설의 침묵하는 주인공들』, 『한국문화를 쓴다』, 『서양문화를 쓴다』, 『카프카 유대인 몸』, 『민족의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갈등』 등이 있으며 역서로 『에다』(공역), 『개인의 발견』, 『목욕탕』, 『영혼 없는 작가』, 『훔볼트의 대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