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너새니얼 호손
너새니얼 호손 Nathaniel Hawthorne
허먼 멜빌과 함께 미국 문학이 낳은 최초의 진정한 거인이었던 너새니얼 호손은 1804년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에서 청교도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 중에는 세일럼의 마녀 재판을 맡은 판사가 있었는데, 호손은 이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의 성(姓)의 철자를 바꾸기도 했다.
학생 때부터 월터 스콧, 앤 래드클리프 등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호손은 보든 대학 시절, 헨리 롱펠로와 뒷날 14대 대통령이 되는 프랭클린 피어스 등과 교유했다. 여러 번의 좌절 끝에 1837년 친구의 도움으로 출간한 첫 단편집 『두 번 들려준 이야기』는 에드거 앨런 포의 극찬을 받았다.
1838년에 약혼한 호손은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1839년에서 1840년 사이에 보스턴 세관에서 일했다. 1841년에는 실험적인 유토피아 공동체인 브룩 농장에 살면서 1천 달러를 투자했지만 별 소득 없이 약 2개월 만에 농장을 떠났다. 1842년 결혼한 그는 콩코드에서 에머슨, 헨리 소로, 마거릿 풀러 등과 교제하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렸다. 1846년 단편 소설들과 스케치를 묶어 『구목사관에서 나온 이끼』를 출판했다.
1846년 호손은 오랫동안 민주당에 공헌한 대가로 세일럼의 세관에 검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여기서 3년간 근무하는 동안 작품은 거의 쓰지 못했다. 1849년 정권 교체로 해임된 호손은 9월부터 집필에 몰두하여 이듬해 『주홍 글자』를 완성했다. 『주홍 글자』는 당시에 병적이라거나 외설스럽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52년 대학 친구인 피어스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위해 『프랭클린 피어스의 생애』를 썼고, 당선된 피어스가 1853년에 그를 영국 영사로 임명하자 호손은 이후 1857년까지 리버풀에서 근무했다. 미국에 돌아온 뒤 과중한 집필로 건강을 상실한 호손은 1864년 건강 회복을 위해 여행하던 중 플리머스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콩코드에 있는 슬리피 할로 묘지에 묻혔다. 올컷, 에머슨, 필즈, 홈스, 롱펠로, 로웰이 그의 관을 운구했다.
역자
양석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취득했으며 뉴욕 주립대(버펄로)에서 허먼 멜빌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부터 연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3년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캘리포니아 주립대(어바인)를 방문했다. 「모비딕과 숭고성의 정치」 등 미국 소설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편지는 왜 어떻게 목적지에 도착하는가?: 라캉의 ‘도난당한 편지’에 대한 세미나 다시 읽기」 등 정신분석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저서로는 『「모비딕」다시 읽기』(공저), 『미국소설 명장면 모음집』(공저), 『탈식민주의 이론과 쟁점』(공저), 『영미문학의 길잡이2: 미국문학과 비평이론』(공저), 역서로는 『미국소설사』(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