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의의
캐나다 출신의 글렌 굴드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주목받았고, 1955년에 발표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렸고, 청중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는 급작스러운 뇌졸중으로 50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연주자로서 ‘글렌 굴드 사운드’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화려한 쇼맨십은커녕 박수받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았다. 갖가지 기묘한 버릇이 있어 괴짜로 불렸으며 오랜 세월 이상한 증세에 시달리며 약에 의지해 살았던 까닭에 그의 무대 생활은 극히 짧을 수밖에 없었다. 굴드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을 살았거나 역경을 이겨낸 인물도 아니었고,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여인에게 쓴 연애편지가 남아 있기는 하나 평생 독신으로 살며 동성애든 이성애든 특별히 알려진 염문도, 흥미로운 사생활도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굴드는 단순히 피아니스트를 넘어서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어느 한 영역에서 이룬 성취만을 보는 것은 불공평하다. 굴드는 그의 연주와 언행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도록 도전 의식을 심어 주었다. 그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그 결과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덕분에 더욱 풍부한 음악 유산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전기는 자칫 찬사 위주로 흐르거나 편파적인 시각으로 주인공의 생을 왜곡하기 쉬운데, 이 책은 작가의 개인적인 의견을 적당히 내세우면서도 비교적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굴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스왈드는 굴드를 높이 평가하지만 한편으로는 굴드의 신화를 벗겨내고 숨어 있는 구차한 일상까지 보여주려고 했다. 때문에 혹자는 이 전기에 그려진 글렌 굴드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또 피아니스트로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엉뚱한 일에 에너지를 소비했다고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다면 얼마나 대단했을까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에 반기를 든 우상 타파주의자로서 스스로 힘든 길을 걸어간 한 천재의 모습에서 우리는 결국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본 저작을 통해 심리학자이자 의사인 피터 F. 오스왈드는 굴드의 음악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며 그의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에너지와 모순을 파헤쳤다. 굴드에 관한 매력적인 전기와 연구서, 자료집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오스왈드의 이 책은 굴드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비교적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이야기와 일화도 담고 있어 그의 다양한 면모를 파악하는 데 충실한 자료가 된다. 오스왈드는 정신과 의사인 데다 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고, 굴드와 오랜 세월 동안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에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다른 전기들과 달리 불안했던 굴드의 정신적인 면과 병적인 증세를 비중 있게 다룬 점도 흥미롭다. 오스왈드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굴드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친구, 사촌, 동료 음악가와 생전에 굴드와 함께 일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때까지 나온 여러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참고하여 이 책을 썼다. 현재 나온 글렌 굴드에 대한 어떤 책보다 우선됨은 물론이고 앞으로 선보일 굴드의 모든 관련 저서가 참고해야 할 만큼 권위 있는 전기가 될 것이다.
글렌 굴드는 누구인가?
1932년: 9월 25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태어나, 작곡가 그리그의 후손인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움
1938년: 토론토 음악원에서 조기 교육을 시작하였고, 1952년까지 칠레 태생의 피아니스트 알베르토 게레로에게 피아노를 배움
1944년: 토론토 음악원에서 12세의 나이로 최우수 졸업
1945년: 오르가니스트로 데뷔. 신문에 ‘천재 오르가니스트임을 입증한 12세 신동’이라는 평이 실림
1946년: 왕립 음악원 콘서트 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를 가짐 활발한 방송과 연주로 캐나다 전역을 통해 유명해짐
1955년: 뉴욕과 워싱턴 DC를 시작으로 미국 데뷔 연주를 함. 이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첫 녹음을 하고 이듬해 발매하여 평단의 열화와 같은 찬사를 받음
1957년: 냉전 시절 북미 연주가로는 처음으로 소련에서 2주간 순회 연주를 함
1959년: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바흐페스티벌에서 베토벤의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였고. 루체른 페스티벌 참가로 마지막 유럽 연주를 가짐
1960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 TV에 방송
1961년: 스트래드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첼리스트 레너드 로즈, 바이올리니스트 오스카 셤스키와 함께 음악 감독으로 활약
1962년: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
1964년: 31세 때 돌연 더 이상공개 연주를 갖지 않겠다고 토론토 음악원 졸업식에서 선언
1966년: 예후디 메뉴인과 바흐, 베토벤, 쇤베르크 연주를 CBC 방송을 통해 방영
1970년: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등 주로 방송과 녹음에 매진
1972년: 유니버설 영화사의 <제5 도살장> 음악을 담당
1976년: 캐나다 의회로부터 훈장을 수상
1980년: 바흐의 <푸가의 기법> 녹음. CBS 레이블이 계약 25주년 기념 음반을 제작
1981년: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
1982년: 9월 27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50세 생일이 일주일 지난 10월 4일 사망
옮긴이의 말
머리말
들어가는 글
1. 글렌굴드와 만나다
1. 연주회
2. 한밤의 음악회
3. 천재의 어린시절
4. 신동으로 불리다
5. 단 한명의 친구
2. 굴드 사운드의 탄생과 비밀
6. 새 스승과 도약
7. 매니저를 얻다
8. "마이크와 사랑에 빠져"
9. 스스로 택한 고독 속에 빚어낸 굴드 사운드
10. 미국 정복에 성공하다
3. 연주 생활이 그를 병들게 하다
11.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다
12. 서로 충돌하는 요구들
13. 전화벨은 울리고
14. 해외 연주여행
15. 이상한 병
16. 혼자만의 집
4. 연주보다 녹음에 열정을 쏟다
17. 조지프 스티븐슨 박사
18. 작곡과 연주 사이에서
19. 무대에서 물러나다
20. 고독 삼부작
21.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
5. 피아니스트에서 프로그램 제작자로
22. 배우, 철학자, 그리고 기술자
23. 새 얼굴, 새로운 도전
24. 중년에 접어들며
25. 만년
26. 마지막 타격
에필로그와 감사의 말
지은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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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스왈드
피터 F. 오스왈드는 심리학자이자 의사이며, 1982년 글렌 굴드가 죽을 때까지 20여 년을 친구로 지냈다. ‘연주자를 위한 건강 프로그램’을 고안하기도 한 그는 <슈만: 음악 천재의 내면의 소리>, <바슬라프 니진스키: 광기로의 도약> 등의 예술가 평전을 펴낸 전문 작가이기도 하다. <글렌 굴드>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던 천재 피아니스트의 일대기를 날카롭게 분석한 평전으로 오스왈드는 1996년, 이 책을 탈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역자
한경심
1985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 동아일보사에 입사했다. <음악동아>와 <여성동아> 기자로 활동했으며, 특히 음악과 예술 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 프리랜서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바그다드 소녀 투라의 일기>(동아일보사, 20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