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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이이 , 이민수(李民樹)

232쪽, A5신, 10,000원

2003년 03월 10일

ISBN. 89-324-2068-8

이 도서의 판매처

저술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여러 형태로 간행되었다. 예를 들어 1629년(인조 7)에는 황해감사가 수백 권을 인쇄하여 조정에 바쳐 반포하게 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예조에서 《소학》 《오륜가(五倫歌)》와 함께 간행하였다. 《율곡전서(栗谷全書)》에도 실려 있다.

해주에서 학도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교육에 대해 정리한 것으로서, 저자가 국왕의 학문을 위해 저술한 《성학집요(聖學輯要)》, 관학(官學) 교육을 위해 저술한 《학교모범(學校模範)》에 대응하는 책이다.

조선 전기를 이끌어온 훈구파가 남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문물과 제도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 비하여, 16세기 이후의 사림은 종래의 학문이 시가와 문장[詞章]을 중시하고 근본이 되는 경학(經學)과 이학(理學)을 소홀히 하여 학자들이 학문의 방향을 알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먼저 자신을 수양[修己]하여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중종때의 사림이 어린이에게 일상생활을 가르치기 위한 《소학》에 성리학의 요체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하면서 그 책을 대대적으로 보급하고 깊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학문의 방법과 내용을 일신하여 그들 중심의 사회질서를 새로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소학》 외에도 《동몽수지(童蒙須知)》를 비롯한 여러 아동 교육서가 번역되고 널리 보급되었으며, 나아가 박세무(朴世茂)의 《동몽선습》이나 유희춘(柳希春)의 《속몽구(續蒙求)》와 같은 교육서들이 직접 편찬되었다.

이이는 성리학을 체질화한 사림파가 정권을 잡고 그들의 이념을 국정 전반에 본격적으로 적용해 나가던 선조 초년의 정치와 사상을 주도하던 인물로서, 이 책도 단순히 아동을 교육하기 위한 개인저술이 아니라 학문을 통해 사림파의 이념을 사회 저변에 확산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초기 사림 이래의 《소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결실을 맺은 저술이다. 1635년 이이를 문묘에 종사할 것을 건의한 유생들이 이 책을 《성학집요》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 꼽고 학자 일반의 일상생활에 극히 절실한 책이라고 높인 것은 위와 같은 까닭에서였다.

앞머리에 저자의 서문이 있고, 10개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마다 여러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학문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일상생활을 마땅하게 해나가는 것일 따름이라는 입장에서 저술되었다. 물론, 이 때의 일상생활은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러워야 하며, 신하는 충성되고, 부부는 유별해야 하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있고, 어린 자는 나이가 많은 자를 공경해야 하고, 붕우(朋友)된 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글을 읽어 이치를 연구하여[讀書窮理]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을 밝힌 다음에, 깊은 경지로 들어가 올바름을 얻고 밟아 실천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도(中道)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학도에게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모시고 남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바로 마음을 닦고 도를 향하는 기초를 세우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는 데 있으며, 동시에 저자로서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고자 하였다.

제1장 입지(立志)에서는 학문에 뜻을 둔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되기를 목표로 하여 물러서지 말고 나아가라고 하였으며, 제2장 혁구습(革舊習)에서는 학문 성취를 향해 용감히 나아가기 위해

‘마음과 뜻을 게을리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모방할 뿐 안일한 것을 생각하고 얽매임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것’ 등 구체적 조항 8개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제3장 지신(持身)에서는 충신(忠信) 등 몸을 지키는 방도를 제시하여 뜻을 어지럽히지 말고 학문의 기초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제4장 독서는 독서가 도에 들어가기 위한 궁리의 전제가 되며, 단정한 자세로 깊이 정독할 것을 가르치고 독서의 순서를 제시하였다. 즉, 먼저 《소학》을 읽어 부모 •형 •임금 •어른 •스승 •친우와의 도리를, 《대학》과 《대학혹문(大學惑問)》을 읽어 이치를 탐구하고 마음을 바로 하며 자기를 수양하고 남을 다스리는 도를, 《논어》를 읽어 인(仁)을 구하여 자기를 위하고 본원(本源)이 되는 것을 함양할 것을, 《맹자》를 읽어 의(義)와 이익을 밝게 분별하여 인욕(人慾)을 막고 천리(天理)를 보존할 것을, 《중용》을 읽어 성정(性情)의 덕이 미루어 극진하게 하는 공력과 바른 자리에 길러내는 오묘함을, 《시경》을 읽어 성정의 그릇됨과 올바름 및 선악에 대한 드러냄과 경계함을, 《예경》을 읽어 하늘의 도를 이치에 따라 적절하게 드러내는 것과 사람이 지켜야 할 법칙의 정해진 제도를, 《서경》을 읽어 중국 고대의 요순과 우왕 •탕왕 •문왕이 천하를 다스린 큰 줄기와 법을, 《역경》을 읽어 길흉 •존망 •진퇴 •소장(消長)의 조짐을, 《춘추》를 읽어 성인이 선(善)을 상주고 악을 벌하며 어떤 것은 누르고 어떤 것은 높여 뜻대로 다루는 글과 뜻을 체득하여 실천하라고 하였다. 위 책들을 반복 숙독한 다음에 《근사록(近思錄)》 《가례(家禮)》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자어류(朱子語類)》와 기타 성리설을 읽어 의리를 몸에 익히고, 여력이 있으면 역사서를 읽어 식견을 키우되 이단과 잡류의 책은 읽지 못하게 하였다. 여기서 정립된 독서 순서와 방법은 조선의 사림파가 그들의 사상체계를 세워 유교의 모든 경전과 성리서를 조망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학문적 성과이다. 제5장 사친(事親)에는 평상시의 부모 섬기기를 비롯하여 부모의 뜻이 의리에 어긋날 때 자식이 부드럽게 아뢰어 뜻을 바꾸게 하라는 것 등의 내용이, 제6장 상제(喪祭)와 제7장 제례(祭禮)에는 그것들을 주희의 《가례》에 따라서 할 것과 반드시 사당을 갖추라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 제8장 거가(居家)에는 부부간의 예를 비롯하여 집안을 다스리고 가산을 관리하는 방법이, 제9장 접인(接人)에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이, 제10장 처세(處世)에는 과거를 거쳐 벼슬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자세가 실려 있다.

이러한 구성과 내용은 학문에 뜻을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몸을 바로 세우고 사회에 나가 활동하도록 하는 성리학의 근본이념을 일상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를 파악하는 데 이기철학이 바탕이 되며, 부모 자식 간의 효가 사회질서의 근본이념을 이루고, 향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사족(士族)들이 사회를 주도하던 조선시대에는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였다. 그러나 사회 운영의 철학과 질서가 크게 바뀐 현대에는 그 내용들을 그대로 학문과 사회생활에 적용하기 어렵다.
해제...5
서문...13

1. 입지장...17
2. 혁구습장...31
3. 지신장...43
4. 독서장...63
5. 사친장...81
6. 상제장...97
7. 지례장...117
8. 거가장...133
9. 접인장...153
10. 처세장...171

부록
제의초
율곡 선생 행장기...227
연보...230

저자

이이

조선의 대표적 학자인 율곡(栗谷) 이이는 1536년(중종 31년) 강릉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사임당(師任堂) 신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이며, 1624년(인조 2년)에 문성(文成)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학문과 입신의 도를 배움에 있어 어머니 사임당 신씨 외에는 사사를 한 바 없으나, 독학과 수도로 심오한 학문의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영남학파의 거두인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며 기호학파(畿湖學派) 형성을 주도하여 조선 시대 성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러한 학문 경향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교육, 국방 등에 걸쳐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여 경세가로도 큰 업적을 남겼는데, 사창(社倉) 설치, 대동법 실시, 십만양병설 주장 등 그의 획기적인 사회 정책 선견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서로 『성학집요』, 『동호문답』, 『학교모범』, 『소학집주』, 『경연일기』, 『인심도심설』, 『성리학설』, 『율곡전서』 등이 있다.

역자

이민수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예동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사서연역회 편집위원과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집필위원을 역임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저서로 『아계선생약전』, 『윤봉길의사약전』, 『사서삼경입문』, 『논어해설』,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으며, 역서로 『동의수세보원』, 『명심보감』, 『공자가어』, 『삼국유사』, 『연려실기술』, 『양반전』, 『당의통략』, 『연암선집』, 『효경』, 『순오지』, 『천자문』, 『부모은중경』, 『목련경』, 『오륜행실도』, 『동국붕당원류』, 『주역』, 『관혼상제』, 『격몽요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