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재기」는 히구치 이치요가 죽기 10개월 전에 완성한 것으로,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직 에도 시대적인 활기가 남아 있는 요시와라 유곽을 배경으로 한 소년 소녀의 성장 이야기다.
소학교에 다니는 주인공 미도리는 요시와라의 최고급 유녀의 동생으로, 가족들과 함께 지방에서 올라와 요시와라에 인접한 기방의 숙소에 산다. 부모는 유곽의 일을 돕고 있으며, 미도리도 장래에 언니 못지않은 유녀가 되도록 공주처럼 키워진다. 요시와라의 향락적인 분위기에 들떠서 밝고 쾌활하게 자란 미도리는 돈도 잘 썼기 때문에 ‘큰길파’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초키치를 중심으로 하는 ‘골목파’ 아이들은 이들 큰길파와 늘 대립했다. 골목파는 큰길파에 지지 않으려고 용화사 주지의 아들인 신뇨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여 8월 축제 때 큰길파의 행사장에서 난동을 부렸다. 그것을 말리는 미도리에게 초키치는 “언니 뒤나 이을 비렁뱅이 년” 하고는 흙 묻은 짚신을 던졌다. 이 사건 이후 미도리는 그간 남 몰래 연정을 품고 있던 신뇨를 원망하게 되지만, 역시 언니가 최고의 유녀라는 사실에서 상처 받은 자존심을 달랜다. 그 후로 미도리는 학교에도 안 가고 집에서만 지내다가 11월 축제에 유녀처럼 머리를 올린 뒤로는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갑자기 어두워진다. 때마침 신뇨도 승려가 되기 위해 마을을 떠나는데, 떠나기 전 미도리네 집 문간에 남몰래 수선화를 놓고 간다.
이치요는 ‘예비 유녀’ 미도리가 요시와라의 구성원이 되어 가는 과정을 축으로, 자본주의의 파고 속에서 사회의 저변에서 살기를 강요당한, 근대의 소외자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림으로써 에도와 메이지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이것은 종래의 여성 표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중류 계급에서 빈곤층으로 급전직하하여 정혼자에게 파혼을 당하고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니고 힘든 노동을 경험하면서 얻은 이치요의 삶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함께 실린 「섣달그믐」은 부모 없이 가난한 삼촌 집에서 자라다가 부잣집 하녀가 된 오미네가 궁핍함에 쩔쩔매는 삼촌을 돕기 위해 주인의 돈에 손을 대고 마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극적 반전이 묘미다.
「탁류」에서는 사창가에서 일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의식이 강한 오리키를 중심으로 하층 여성들의 삶을 사실성 있게 그렸다.
「십삼야」에서는 오세키라는 여인을 통해 메이지 시대 여성의 이혼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었다.
남편의 학대에 더는 견디지 못해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오세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에게 참고 살 것을 눈물로 호소한다. 결국 오세키는 남편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뜻밖의 일을 만나는데…….
「갈림길」에서는 고독한 고아로서 우산 만드는 일을 하는 난쟁이 기치와, 첩이 되어서라도 미천한 신분을 벗어나려는 오쿄 간의 깊은 정과 이별을 애잔하게 그렸다.
「나 때문에」에서는 소시민적인 남편 요시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떠나는 아내 미오의 이야기와, 그들의 딸인 미치코의 우울증 등이 이중적 구조를 이루며 전개된다.
본 번역은 가장 신뢰할 만한 선집으로 꼽히는 신일본고전문학대계(新日本古典文學大系) 메이지(明治) 편 『히구치 이치요집(樋口一葉)』(東京: 岩波書店, 2001)을 대본으로 했다.
저자
히구치 이치요
본명은 히구치 나쓰(?口奈津)다. 일본 근대의 서막이 열린 1876년 도쿄의 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적인 재능을 보여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고전을 가르치고 습작하게 했던 하기노야라는 가숙에 들어갔다. 나쓰의 아버지는 본래 농민이었지만 에도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무사 계급이 되고자 했고, 마침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 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막부가 붕괴하자 그 역시 무사에서 부르주아 시민으로 거듭나야만 했다. 이에 운반청부업조합을 세워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로 끝났고, 결국 번민으로 죽어 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16세의 나이에 호주가 된 그녀는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정혼자와도 파혼을 당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써서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아사히신문에 소설을 쓰고 있던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이 무렵부터 나쓰는 달마대사가 타고 강을 건넜던 일엽편주에 빗대어 ‘이치요’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20세 때 처녀작인 「밤 벚꽃」에 이어 「매목」을 발표했지만 큰 수입은 못 되었고, 전당포를 드나들었다. 돈이 바닥나자 그녀는 어머니와 변두리 상점가에 잡화점을 열었다. 그러나 잡화 가게도 얼마 뒤 접고는 혼고 마루야마 후쿠야마 정(丸山福山町)으로 이사했는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23세 때 『문학계』에 「키 재기」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문예구락부』에 「탁류」, 「십삼야」 등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갈림길」, 「나 때문에」 등을 발표했으며, 「키 재기」 또한 완성함으로써 문단의 총아로 부상했다. 당시 특권 계급의 여류 소설가들은 상류 사교계 등의 협소한 세계를 소재로 취하거나 대단원으로서의 결혼을 플롯으로 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치요의 소설은 이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고뇌를 언어화했다. 대표작인 「키 재기」에서는 요시와라의 구시대적 활기와 메이지적인 어둠, 사치와 빈곤, 해학과 슬픔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성장을 그렸다.
그러나 젊음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이치요는 1896년 과로로 인한 폐결핵 악화로 24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대조적으로 이치요는 사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부터 당대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때부터 일본 근대 문학의 정전 목록에 올라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역자
임경화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에서 일본의 전통 단형시에 관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신라의 발견](공저, 2008)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어라는 사상](공역, 2006), [여성 표현의 일본 근대사](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