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_26
그라알 이야기
Le Roman de Perceval ou le Conte du Graal
외지고 거친 숲에서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년 페르스발은 어느 날 숲 속에서 무장한 기사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소년은 그들의 번쩍이는 쇠사슬 갑옷과 빛나는 투구를 보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아더 왕이 그들을 기사로 임명하고 모든 무구를 내려 주었다는 것을 듣는다. 이에 아더 왕의 기사가 되기 위해 극구 만류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 아더 왕을 만나고, 일련의 모험을 거쳐 아름다운 연인을 얻게 된 젊은이는 결혼에 앞서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를 찾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젊은이는 낯선 성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창과 그라알을 앞세운 행렬을 본다. 휘황한 불빛보다 더 찬란한 광휘를 발하는 신비한 그릇, 그라알. ‘거기에는 대체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어디로 가져가는 것일까?’ 또한 ‘창에서는 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일까?’ 젊은이는 궁금해하면서도 끝내 묻지 못하고 만다. 얼마 뒤 추한 몰골의 한 아가씨가 나타나 행운이 왔을 때 잡지 못한 젊은이에게 불행을 예고하는데……. 한편 아더 왕의 또 다른 기사인 고뱅은 배역죄로 고발을 당하고는 무고한 죄를 씻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한 준수한 젊은이의 권유로 어느 성에 이른 고뱅은 그곳에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단 둘이 있게 된다. 그러나 고뱅을 알아보는 한 사람이 나타나 둘의 모습을 보고는 저주를 퍼붓는다. 이어 도시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고뱅을 잡으려고 하고, 고뱅은 일대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고뱅에게 저주를 퍼붓던 자가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뱅이 ‘항상 피가 흐르는 창’을 찾아 왕에게 갖다 드리든지, 아니면 계속 전하의 포로로 있든지. 이에 고뱅은 있는 힘을 다해 피 흘리는 창을 찾아보겠다고 맹세하고는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그라알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페르스발의 이야기가, 후반부는 고뱅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전반부와 후반부는 서로 관련이 없이 전개되며, 더군다나 후반부는 그라알과 무관하게 전개되어 어쩔 수 없이 미완성 초고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작품 전체에 대한 독해는 미진한 채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후속작들을 탄생시켰다. 하나는 이 신비한 그릇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와 관련하여, 또 다른 하나는 주인공들의 모험이 어떻게 결론이 나는지와 관련하여 후세 작가들은 거듭 이야기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수께끼 같은 이 『그라알 이야기』는 소진되지 않는 의미의 원천이 되었다.
저자
크레티앵 드 트루아
12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프랑스 작가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작품 내의 몇몇 단서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인데, 그는 아마도 샹파뉴 지방의 트루아 출신으로, 1135∼1140년에 태어나 1160∼1172년 사이에 마리 드 샹파뉴의 궁정에서 활동했으며 1191년경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아더 왕 이야기를 소설로 쓴 첫 세대 작가로서,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에렉과 에니드(Erec et Enide)』, 『클리제스(Cligès)』, 『수레의 기사 랑슬로(Lancelot ou Le Chevalier de la charrette)』, 『사자의 기사 이뱅(Yvain ou Le Chevalier au lion)』,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겨진 『그라알 이야기(Conte du Graal)』가 전해진다. 이런 작품들에서 그는 당대의 궁정풍 이데올로기와 기사 개인의 내적 추구를 형상화했으며, 나아가 『그라알 이야기』를 통해 그 너머의 모색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리하여 『그라알 이야기』 이후 약 반세기 동안 수많은 그라알 소설들이 나오면서 아더 왕 이야기는 그라알을 중심으로 재편성되어 발전했다.
역자
최애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중세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등에서 가르쳤고, 『연옥의 탄생』(자크 르 고프 지음), 『중세의 지식인들』(자크 르 고프 지음),『중세의 결혼』(조르주 뒤비 지음), 『중세를 찾아서』(자크 르 고프 외 지음), 『12세기의 여인들』(조르주 뒤비 지음) 등 서양 중세사 관련 책을 다수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는 서양 여성 인물 탐구 『길 밖에서』, 『길을 찾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