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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_25

예브게니 오네긴

Evgenii Onegin

알렉산드르 푸슈킨 , 김진영

348쪽, B6, 12,000원

2009년 11월 10일

ISBN. 978-89-324-0355-7

이 도서의 판매처

낭만적 꿈에서 현실로 그 이행을 노래한 긴 애가(哀歌) 정통 세계문학을 지향하는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스물다섯 번째 책은 ‘러시아의 모든 것’이라 불리는 푸슈킨의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슈킨이 9년에 걸쳐 완성한, 총 5천 5백 여 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쓴 소설이다. ‘시’답게 고정된 형식과 운율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극상의 기교를 발휘한 작품이며, ‘소설’답게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과 당대 러시아 사회와 사상을 묘사하는 걸작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푸슈킨은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예브게니 오네긴』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 칭하였다.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는 페테르부르그에서 온 청년 예브게니 오네긴을 연모한다. 그녀가 읽었던 책들의 여주인공처럼, 타티아나는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며칠 뒤 오네긴이 찾아와 마치 아이를 타이르듯이 자신은 ‘행복을 위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역자인 김진영 교수(연세대 노문과)는 이 작품의 실마리를 ‘지나가 버리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십수년에 걸친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푸슈킨이 최종적으로 삭제한 부분을 주에 첨부하였고,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고유 명사들에 해설을 붙인 찾아보기도 수록하여, 일반 독자와 연구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예브게니 오네긴이 언급하는 작가만도 80여 명에 이르며, 그 외 등장하는 책과 인물, 고유 명사 등은 수도 없이 많다. 19세기 전반의 문화 엘리트 계층을 겨냥했던 것들이 오늘의 우리에겐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한 경우에는 영 익숙지 못한 개념이나 단어를 우리 식으로 바꾸기도 했고, 나머지는 모두 찾아보기 섹션에 간략한 설명을 달아 놓았다. 읽으면서 낯선 고유 명사는 책 뒤에서 가나다 순서로 찾아보면 된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잘 읽으려면 상세한 해설이 따라야만 한다. 사회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인데, 그것은 우리뿐 아니라 러시아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예브게니 오네긴 사전이 거듭 출간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세 항목의 주석 달기는 출판사의 방침에 어긋나는 데다가, 또 빽빽한 주석이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생략했다. 간혹 이해가 안 가더라도 일단 막힘없이 죽 읽어 나가는 편이 좋다. 굳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정보 창을 위시해 푸슈킨이나 러시아 문화 관련 서적을 참조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출발된 러시아 마니아가 단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행운이다. (319페이지)

 

제1장 [우울증]
제2장 [시인]
제3장 [귀족 아가씨]
제4장 [시골]
제5장 [명명일]
제6장 [결투]
제7장 [모스크바]
제8장 [상류 사회]


해설: 『예브게니 오네긴』과 푸슈킨
참고 문헌
판본 소개
알렉산드르 푸슈킨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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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알렉산드르 푸슈킨

푸슈킨은 1799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몰락한 귀족이었으나, 프랑스 고전 문학으로 채워진 서고는 조숙한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키워 주었다. 어린 푸슈킨은 페테르부르그 근교 차르스코예 셀로의 황실 리세에서 교육을 받았다. 여덟 살 때 처음 프랑스어로 시를 쓰기 시작한 푸슈킨의 공식적인 문단 데뷔는 열다섯 살 되던 해인 1814년이었다. 이듬해 원로 시인 데르자빈이 참석한 자리에서 낭독된 시 「차르스코예 셀로의 회상」은 그를 러시아 문학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해 주었다. 이어 1820년에 발표된 첫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 역시 선배 시인 주콥스키의 극찬을 받았다.
리세를 졸업한 뒤 1817년부터 1820년까지 외무성에서 근무하다가, 체제 저항적 시들이 문제가 되어 러시아 남쪽으로 유배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전근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귀양이었고, 푸슈킨은 1827년까지 페테르부르그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유배 기간은 시인으로서 생산적인 기간이었을 뿐 아니라 서구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숙기에 돌입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쓰고 『예브게니 오네긴』을 시작하여 제6장까지 진행했다. 1826년 출판된 그의 첫 시선집은 두 달 만에 품절되는 인기를 얻기도 했다.
푸슈킨은 위험인물로 간주되었으므로 페테르부르그에 돌아온 다음에도 황제의 검열 없이는 그 어떤 작품 발표도 할 수 없었고 여행도 불가능했다(푸슈킨은 죽을 때까지 러시아 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빚에 시달렸다. 1830년 미인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했으나 아내와 관련된 소문은 그에게 정신적인 타격을 주었다.
푸슈킨은 아내의 연인으로 여겨진 프랑스인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결투에서 부상한 뒤 이틀 만인 1837년 1월 29일 사망했다. 시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인파가 집 앞에 모여드는 바람에, 주콥스키는 시시각각 푸슈킨의 상태를 적어 문밖에 고시해야 했다. 그의 서재에는 총 3,560여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그 책들에 눈길을 멈추었던 시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안녕, 친구들!”이었다.

역자

김진영

Wheaton College 러시아 어문학과를 졸업하고 Yale University 슬라브 어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Making Another's Voice Mine: Pushkin and the Poetics of Translation (1992). 1991년 이후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푸슈킨과 19-20세기 러시아 문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저서로 『푸슈킨: 러시아 낭만주의를 읽는 열 가지 방법』(2009년 학술원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이 있으며, 번역서로 『코레야, 1903년 가을: 세로셰프스키의 대한제국 견문록』(공역), 『땅위의 돌들』(러시아 현대시선집), Tak malo vremeni dlia liubvi (정현종 러시아어 번역 시선집) 등이 있다. 다음 프로젝트로 러시아 문학과 한국 문학의 비교 연구를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