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꿈에서 현실로 그 이행을 노래한 긴 애가(哀歌) 정통 세계문학을 지향하는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스물다섯 번째 책은 ‘러시아의 모든 것’이라 불리는 푸슈킨의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슈킨이 9년에 걸쳐 완성한, 총 5천 5백 여 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쓴 소설이다. ‘시’답게 고정된 형식과 운율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극상의 기교를 발휘한 작품이며, ‘소설’답게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과 당대 러시아 사회와 사상을 묘사하는 걸작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푸슈킨은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예브게니 오네긴』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 칭하였다.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는 페테르부르그에서 온 청년 예브게니 오네긴을 연모한다. 그녀가 읽었던 책들의 여주인공처럼, 타티아나는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며칠 뒤 오네긴이 찾아와 마치 아이를 타이르듯이 자신은 ‘행복을 위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역자인 김진영 교수(연세대 노문과)는 이 작품의 실마리를 ‘지나가 버리는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십수년에 걸친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푸슈킨이 최종적으로 삭제한 부분을 주에 첨부하였고,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고유 명사들에 해설을 붙인 찾아보기도 수록하여, 일반 독자와 연구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예브게니 오네긴』이 언급하는 작가만도 80여 명에 이르며, 그 외 등장하는 책과 인물, 고유 명사 등은 수도 없이 많다. 19세기 전반의 문화 엘리트 계층을 겨냥했던 것들이 오늘의 우리에겐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한 경우에는 영 익숙지 못한 개념이나 단어를 우리 식으로 바꾸기도 했고, 나머지는 모두 찾아보기 섹션에 간략한 설명을 달아 놓았다. 읽으면서 낯선 고유 명사는 책 뒤에서 가나다 순서로 찾아보면 된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잘 읽으려면 상세한 해설이 따라야만 한다. 사회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인데, 그것은 우리뿐 아니라 러시아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예브게니 오네긴 사전이 거듭 출간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세 항목의 주석 달기는 출판사의 방침에 어긋나는 데다가, 또 빽빽한 주석이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생략했다. 간혹 이해가 안 가더라도 일단 막힘없이 죽 읽어 나가는 편이 좋다. 굳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정보 창을 위시해 푸슈킨이나 러시아 문화 관련 서적을 참조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출발된 러시아 마니아가 단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행운이다. (31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