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대표작 두 편 - 고전성을 강조한 번역 정통 세계문학을 지향하는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스물네 번째 책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 작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과 『전원 교향곡』이다. 우리나라에서 『좁은 문』처럼 많이 읽힌 지드의 작품도 없겠지만 『좁은 문』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지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서울대 불문과의 이동렬 교수가 번역했으며, 두 작품이 ‘프랑스 문학 전통과 닿아 있는 고전적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정평 있는 플레이아드 판을 토대로 '지드의 최상의 자아가 녹아 있는' 작품 원문의 감동을 성실하게 재현하려 애썼다.
『좁은 문』은 1909년에 『신프랑스지』에 발표되어 그 전까지 소수에게만 인정받던 지드를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다.
제롬은 외사촌 누이 알리사를 사랑한다. 알리사는 제롬을 몹시 사랑하면서도 결혼에 대해서는 회피와 주저를 나타내 보인다. 알리사는 지상의 인간적인 행복과 영혼의 종교적 구원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마침내는 현실적인 사랑과 행복을 단념하고 종교적 덕성 속으로 피신한다. 그녀는 제롬이 사랑하는 모든 면모를 애써 자신에게서 지우면서 제롬을 멀리한다. 오랜 동안의 헤어짐이 있은 후 그들은 정든 정원에서 매우 신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감동적인 재회를 하나, 알리사의 성스러운 결심은 끝내 현실적인 사랑에 저항한다. 이 마지막 상봉이 있은 직후 알리사는 집을 떠나 파리에 있는 요양원에서 죽는다.
알리사는 문학이 창조해 낸 아름답고 신비스런 여인상의 하나로, 『좁은 문』은 무엇보다도 신비스런 사랑의 아름다운 시적 기록이다. 이 작품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읽히는 것은 주로 작품의 이러한 측면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드는 간결하고 명쾌하며 절제 있는 고전적인 아름다운 문체로서 이 사랑의 시를 기록하고 있다. 『좁은 문』은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작가를 유명하게 만든 출세작이라는 의미나, 그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즐겨 읽히는 작품이라는 의미 등 문학사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용과 형식의 가장 조화로운 일치를 보여줌으로써 프랑스 고전주의를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에서도 『좁은 문』은 지드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요컨대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 『좁은 문』은 지드의 ‘최상의 자아’가 녹아 있는 작품인 것이다.
『전원 교향곡』은 우리의 관습적 분류에서 중편소설 정도에 해당할 짤막한 길이의 작품이다. 지드는 이 작품을 1918년에 썼지만 일찍이 1893년부터 이 작품의 주제를 자기 친구에게 얘기한 바 있어서, 이 작품을 집필하기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을 기다렸던 셈이다. 이 작품은 1916년 경 지드가 겪었던 종교적 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스위스 산간 마을의 한 목사가 의지할 곳 없는 장님 소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아내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쌍한 소녀를 자식들 이상으로 정성껏 돌본다. 목사의 열성적인 교육의 결과로 말도 할 줄 모르던 소녀는 애초의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 빠른 정신적, 지적 성장을 하게 된다. 은인인 목사를 향한 제르트뤼드의 감사의 마음은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한편 목사도 자신의 피후견인에 대한 애정이 이성(異性)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 가는 것을 깨닫는다. 눈 수술이 성공하여 시력을 되찾은 제르트뤼드는 세상의 현실이 실명 상태에서 상상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목사 부인의 슬픈 표정에서 자기가 목사의 가정에 불행을 야기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사랑한 것은 목사가 아니라 목사의 아들인 젊은 자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엄청난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제르트뤼드는 강물에 뛰어든다. 그녀는 죽기 전에 강에서 건져 올려지지만, 모든 것을 목사에게 고백한 후 숨을 거둔다.
스위스 산간 마을을 배경으로 신비스런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이 소설은 관점에 따라서 슬픈 사랑의 전말로 읽힐 수도 있으며, 인간 심리의 정밀한 분석으로 읽힐 수도 있고, 한 중년 남자의 내성(內省)의 기록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관점을 취하든 간에 『전원 교향곡』을 아름다운 문학 작품으로 읽게 만드는 힘은 무엇보다도 그 형식적 특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결하고 명쾌하며 절제된 문체가 이 작품의 단순한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글로 『전원 교향곡』은 감식력 있는 독자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절제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이 짤막한 작품은 17세기의 『클레브 공작부인』 이래 계속되어 온 프랑스 고전주의 소설의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20세기의 두드러진 고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는 1869년 파리에서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건강도 좋지 않고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 그는 집에서 독서를 하며 지냈다. 집안의 엄격한 프로테스탄트 윤리 교육은 지드의 정신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 그의 작품에는 청교도적 순결에 대한 갈구와 아울러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난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삶에의 갈망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나이 15세 때 3년 연상의 외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어머니의 반대와 마들렌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좁은 문』의 결말과는 달리 지드는 1895년에 그녀와 결혼할 수 있었으며, 1938년에 그녀와 사별할 때까지 평생의 반려로 지냈다. 이 결혼 생활은 육체관계가 배제된 정신적인 사랑만으로 일관된 생활이었다고 지드는 고백하고 있다.
1893년에 떠난 2년간의 아프리카 여행은 지드에게 육체적, 도덕적인 모든 금기로부터의 해방감이라는 경이적인 체험을 선사하였다. 이후 지드는 자신의 이러한 면을 숨기거나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충격으로 많은 작가들이 가톨릭에 귀의하고 있을 때 지드는 정직한 고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24년 친구들의 경악과 만류를 무릅쓰고 지드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책을 출판하여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식민지의 비참함을 묘사한 『콩고 기행』(1925) 후 점차 사회 현실에 눈을 뜬 지드는 공산주의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세계평화회의에 참석하고 소련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자신이 체험한 환멸을 정직하게 기술한 『소련 기행』(1936)은 좌파의 증오와 공격을 불러일으키며 지드를 다시 고립시켰다. 1939년 친독파(親獨派)가 장악한 『신프랑스지』에서도 물러난 지드는 1945년까지 튀니스와 알제에서 힘든 피난 생활을 했다.
1947년에 지드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이어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과거의 갖가지 비방과 중상에서 벗어나 전 세계 문학계의 존경과 찬사를 누릴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삶이었으나, 더할 나위 없이 용감하고 감동적인 성실성의 증언인 지드의 긴 생애는 1951년에 막을 내렸다.
역자
이동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몽펠리에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스탕달 소설 연구』, 『문학과 사회 묘사』, 『프루스트와 현대 프랑스 소설』, 『빛의 세기, 이성의 문학』 등이 있고 역서로 『고리오 영감』, 『적과 흑』, 『좁은 문·전원 교향곡』, 『여자의 일생』, 『어둠 속의 사건』, 『소설과 사회』, 『말도로르의 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