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공상임
공자의 64대손인 공상임은 청 순치제(順治帝) 5년(1648) 곡부(曲阜)에서 태어났다. 곡부는 옛 노나라의 수도로, 공자와 관련한 유적이 많은 곳이다. 공상임은 성년이 될 때까지 곡부에 머물며 글공부를 하다가 31세에 향시에 응시했지만 낙제했다. 이후 고향 근처의 석문산에 초막을 짓고 은거하면서 『도화선』 초고를 완성했다.
37세인 1684년, 강희제(康熙帝)가 곡부에 들렀는데, 이때 공상임은 황제에게 유가 경전을 강의하고 문묘를 안내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국자감 박사에 전격적으로 발탁된 공상임은 얼마 뒤에는 회안부와 양주부 일대의 치수 사업을 담당했다. 회안부와 양주부에 머무는 동안 공상임은 백성들의 고통을 몸소 체험했고, 또 명(明)의 유민들과 사귀면서 명 왕조의 흥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모았다. 그리하여 40세인 1687년에 『도화선』을 개고했다. 북경으로 돌아온 공상임은 몇몇 한직을 옮겨 다녔고, 쉰두 살인 1699년에 『도화선』을 다시 고쳐 최종판을 완성했다. 약 10년 단위로 개고 작업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도화선』은 당시 북경 일대를 뒤흔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공상임은 일생의 대부분을 청나라가 본격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한 강희제 치세기에 살았지만, 유가적 정통 왕조인 명나라의 신하임을 자임한 부친의 영향으로 전 왕조에 대해 회한과 애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인 『도화선』은 바로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서거와 남명 왕조 초기 복왕(福王) 정권의 흥망을 다룬 역사극으로, 명에 대한 애도의 뜻이 담겨 있다. 이것은 공상임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상임이 남긴 그 밖의 작품으로는 고채(顧彩)와 함께 쓴 전기(傳奇) 『소홀뢰(小忽雷)』와 시사집(詩詞集) 『호해집(湖海集)』, 『안당고(岸堂稿)』 등이 있고, 문집으로 『석문산집(石門山集)』이 있다. 한편 공상임은 고증에도 밝아 이후 형성되는 유명한 고증학 집단인 건가학파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강희 57년(1718)에 일흔한 살을 일기로 생을 마쳤다.
역자
이정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에 중국 산둥대학(山東大學)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특별 연구원으로 있었다. 서울대학교, 서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한밭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대구한의대학교 중어중국학부 조교수로 있다. 옮긴 책으로 『근대 중국의 언어와 역사』, 『중국 고대 극장의 역사』(공역)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백박 잡극 연구」, 「고사계강창 연구」, 「도화선의 이념적 지향」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