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자기만의 시각과 논리로 현실의 불합리를 잡아내고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삶의 의미와 여유를 찾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전(古典). 고전은 그 시대의 정신을 대표하면서 일정 시간적 ․ 지리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공인된 것으로, 보다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혜안을 마련해 준다. 따라서 진정한 삶에 관한 사색적 물음과 그 답을 찾아보아야 할 지금 우리에게 <도연초>와 <호조키>는 현재의 시각으로 다시 번역되고 읽혀져야 할 대표적인 일본 수필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도연초>는 ‘무료하고 쓸쓸(徒然)하여 쓴 수필(草)’이라는 뜻이지만, 제목과는 달리 처세와 인생에 관한 교훈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진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표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갔다.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꼭 실리는 고전작품 중 하나인 <도연초>는 그만큼 이 작품이 일본 문학사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아울러 <도연초>에서 저자가 말하는 영지(英智)를 일본 고전 문학의 전통으로 지켜 나가려는 의지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 최초로 번역 ․ 소개되는 <호조키>는 <도연초>에 곁들여져 간혹 부록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도연초>와 쌍벽을 이루는 일본 수필 문학의 특색 있는 작품이다. <호조키>는 당대의 정치적 혼란과 천재지변까지 겪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후반부에는 세상살이의 무상함과 그 속에서 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의지가 담겨, 난세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삶의 지혜를 던져주고 있다.
<도연초>는 243단의 짧은 문장 속에, 처세훈 32%, 학문의 고증이나 고사(故事) 25%, 취미 10%, 여성이나 남녀 이야기 4%, 무상(無常)이나 출가 권유 8%, 유머 6%, 진기한 이야기가 5%를 차지하고 있다. 속세를 떠나 출가한 저자의 이력에 영향을 받아, 불교적 무상관의 색채가 진하고 염세적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이것은 현세를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노장사상, 여러 방면의 전문가가 체득한 지혜를 높이 평가하고 글속에 녹여내면서, 특정 종교의 옹호보다는 인간의 가치 향상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했다는 데 이 작품의 특징을 들 수 있다.
흔히 <호조키>와 <도연초>를 같은 부류의 은자문학(隱者文學)으로 분류하나, 두 책을 읽는 맛은 사뭇 다르다. <도연초>에는, 이 세상과 우리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한 도사 같은 늙은이가 있고, <호조키>에는 깨달음이나 달관과는 거리가 먼 한 우직한 늙은이가, 산 속 초막에서 늙어 죽도록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원망어린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호조키>의 묘미는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데 있다.
역자는 단순한 작품 번역에 그치지 않고, 각 단마다 독자들에게 생소한 일본 고전의 시대 배경을 설명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소개함으로써, 일본 고전 문학의 미의식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