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아시아 정치 문화에 공존하는 일관성-개발독재에서 시민사회로
현재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의 연원은 깊다. 18~19세기 유럽에서, 근대적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기초하여 국가주의에 반대, 세계주의 지향의 시민사회가 자본주의, 민주주의, 근대사회 등으로 불리며 생겨났고, 현대에 이르러 동유럽, 미국, 아시아 세 지역의 화두가 됐다. 개발주의 국가와 시민 사회를 분석의 틀로 삼아 현대 아시아 정치를 이해한 이 책은,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에 대한 책을 낸 바 있는 이와사키 이쿠오의 저서로 '시민 사회 만능론'에 빠져 있는 듯한 많은 다른 시민사회론에 대비,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정도가 다른 것처럼,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 역시 다르다는 것을 각국의 정치 상황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며, 아시아를 맥락으로 지역 연구나 비교 연구를 수행하는 데에도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아시아형 개발국가의 원형으로 꼽히는 일본 체제의 본질 파악에도 도움을 준다.
권위주의 체제의 종언_아시아의 민주화 과정
이 책은 개발주의 국가가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정치 및 경제 과정에 등장했던 매우 강력한 '국가 현상' 이었다고 총괄하면서, 시민 사회의 성장에 중점을 두고, 개발주의 국가의 동요와 종언, 민주와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 책 전반에 걸친 논의의 초점은 이렇다. 아시아 각국은 근30년간에 걸쳐 개발주의 국가, 즉 권위주의 체제 종언에 의한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일련의 공통된 체제변혁을 겪는다. 국가가 사회를 억압,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체제인 강한 국가, 약한 사회 지향의 개발주의 국가가 전통 사회에 등장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오히려 이는 권위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고학력, 전문지식, 높은 수입을 보이는 중간층, 즉 자본가층을 양산하였다. 이들은 NGO 등의 주축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 결국 위축되었던 시민사회가 개발주의 국가의 정치와 행정의 독점을 깨뜨릴 정도로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아시아의 민주화는 크게 두 단계, 즉 1단계는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 2단계는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대만, 인도네시아 등의 민주화는 1단계에서, 2단계 '정착'이라는 과제로 진행 중이며, 싱가포르는 1단계를 끝내지 못한 상태이고, 아시아 전체로 보면 현재 민주화 제2단계가 공통의 과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민주주의를 모든 정치 행위자가 참가하는 정치 행동의 '규칙'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남은 중요한 과제다.
아시아 현대 정치사를 한눈에!
1970년대 아시아 정치를 이해하는 길잡이 격인 개발주의 국가, 혹은 권위주의 정치 체제는 국가 통합이라는 정당성에 기반하고 있다. 오랜 식민 시대를 종결하고 숙원이었던 독립을 쟁취한 직후 아시아 각국에 주어진 최대 난제는 국민 및 국가 통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정과 권위주의 체제가 등장했으며, 끼니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요구와 국제 관계의 필요상 '개발'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게 된 60년대 아시아 각국은, 효율적 추진을 위해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더불어 민간자본의 부재를 메울 국가 주도형 개발 형태를 정착시키게 된다. 이것이 곧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개발주의 국가' 체제다. 이는 1970년대 이후 아시아 정치 기조를 형성하게 된다.
유교 문화의 한국, 자바와 이슬람 문화의 인도네시아, 서구와 중국의 혼합 문화의 싱가포르 등 상이한 문화적 기반과, 단일 민족 사회인 한국과 대만, 복합 사회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기본 성격이 다른 사회 구조를 가진 이들 아시아 각국은 한국의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 체제, 대만의 국민당 일당 체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체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체제,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 체제로 국가 우위의 개발 시대를 열었다. 이는 이후 경제 성장으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간계층을 등장시켰고, 동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이들은 곧 시민사회의 근간을 이루며 권위주의 체제 비판 세력, 민주화의 추진 세력이 되어 갔다. 1970년대 민주화의 제 3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남유럽의 민주화가 아시아로 전파, 1980년대 후반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 차례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70년대를 특징지었던 '개발' 중심의 아시아 정치 기조가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키워드로 전환하게 된다.
여기에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의 폭락으로 시작된 아시아 경제 위기는 고도 성장을 구가해 온 아시아 경제를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이는 곧 정치 위기로 파급되어 장기 정권의 붕괴와 역사적 정권 교체 등 수많은 정치 드라마가 연출된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즉,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와 같은 개발주의 국가의 붕괴와 정치 변동은, 경제 성장에 따른 국민의 의식과 사회 구조의 변화, 그리고 경제 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되었고, 특히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체제가 붕괴하는 데는 권력자의 부패가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이와사키 이쿠오
1949년 나가노(長野) 출생. 릿쿄(立敎)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아시아경제연구소 지역연구 제1부 주임연구원 역임했으며, 현재 다쿠쇼쿠(拓殖) 대학 국제개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화교 자본의 정치 경제학>으로 제10회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_<현대 아시아 정치 경제학 입문>, <화교 자본의 정치 경제학>, <현대 아시아의 초상 15 리콴유> 외.
역자
최은봉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 영역은 비교 정치, 동북아시아 지역 연구, 일본 정치이다.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고, 일본 쓰쿠바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현대일본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사회역사학회 회장이다. 지은 책으로 『일본 정치론』, 『일본 행정론』, 『변동기 한일 정치의 변화』, 『일본 NGO 연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시민사회론』, 『NGO의 이해』, 『현대 일본의 체제 이행』, 『동아시아 국가와 시민사회』, 『일본의 헌법』, 『일본의 정치와 행정』, 『일본, 풍요 속의 빈곤』, 『모든 정치는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작된다』, 『포스트 산업사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