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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이즈

The Last Days of Roger Federer

제프 다이어

468쪽, 130*200mm, 23,000원

2025년 06월 25일

ISBN. 978-89-324-7562-2

이 도서의 판매처

어떤 걸작은 오직 저물어 가는 인생의 결과로 탄생한다

제프 다이어만의 방식으로 써 내려간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스스로 인생의 말년에, 혹은 최소한 작가로서의 말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제프 다이어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커리어의 끝에 접어든 천재들이 내놓은 성과들에 주목한다. 여기서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이어 특유의 재능 중 하나인 폭넓은 지식이다. 베토벤과 밥 딜런부터 앰비언트와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이 소개되는가 하면, 회화와 사진에서는 윌리엄 터너와 조르조 데 키리코, 에드워드 웨스턴 등이 등장한다. 다이어의 전문 분야인 문학 쪽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작가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라스트 데이즈는 이 수많은 인물과 일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공통된 흐름 속에 정렬해 놓는다. 그 흐름의 외면은 다이어 자신의 삶, 곧 저물어 가는 삶이 내보이는 피로와 쓸쓸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년을 이렇게 감상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작가는 아마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의 저자 미셸 슈나이더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니체는 이 집의 2층 방에 누워 지냈는데, 방문자들은 위층에서 새어 나오는 울부짖음을 듣곤 했다. 그 비명소리는 정신적 고통을 표출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살아 있기에 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생물학적 사실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비명에는 어떠한 고통스러운 기억도, 소멸해 버린 통찰력도, 심지어 망가진 정신의 잔재조차도 담겨 있지 않았다. (...) 18888, 니체는 어느 길게 쓴 편지에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태어난다는 추신을 달았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은 아직 관념적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사후의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섬뜩한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삶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불멸을 위해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살아 있는 동안 수차례 죽어야 한다.”’

-본문 101쪽 중에서

그러나 다이어는 이 꺼져 가는 불꽃들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에너지들을 함께 증언한다. 그가 인용한 바대로 물질을 빛과 교환하는순간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황혼녘의 녹색 광선처럼 오직 꺼져 가는 중에만 출현하는 이 신비로운 창조력은 라스트 데이즈를 다양한 색채로 수놓는다. 젊은 시절에 비해 몰락하다시피 한 목소리를 갖고서 음악가의 삶을 이어 가는 밥 딜런의 신비로운 매력, 자기 작품이 완성인지 미완성인지 확신하지 못했던 말년의 윌리엄 터너가 선보인 걸작들, 부상을 거듭하며 그저 그런 경기를 이어 가는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의 감동적인 움직임. 하지만 이런 말년의 양식은 육체적 노화와는 별개의 특성이다. 다이어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자기 커리어의 종말을 바라보았던 인물들도 소개한다. 잭 케루악, 필립 라킨, 비에른 보리…….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뒤에 남겨 둔 채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이 은퇴들은 작은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관념적으로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사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멸하고 헤어지는 시간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  

따라서 다이어가 말하는 말년의 삶은 세간의 통념과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회한과 노화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노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 이 지점에서 라스트 데이즈는 작가로서의 은퇴를 눈앞에 둔 다이어 자신에 관한 고백과 겹쳐진다. 테니스광인 그는 온갖 관절과 근육 문제로 경기를 점점 뛰지 못하게 되고, 공연이나 페스티벌에 가서 노는 일은 점점 힘들어진다. 젊을 때 읽어야 했던 책은 이제 손에 쥐어 봐야 의미가 없고(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똑같은 농담을 던져도 사람들의 반응은 젊었을 때에 비해 점점 냉소적으로 변한다. 책 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삶에도 녹색 광선이 비추어질까? 아니면 그 빛은 이미 오래전에 스쳐 갔었고, 앞으로는 영영 황혼만이 계속되는 것일까? 세상 모든 인간과 같이 자신의 미래가 어느 쪽에 속할지 알지 못하는 다이어는 노쇠해 가는 자기 육신 속에 그 수수께끼를 봉인해 놓는다. 비밀은 때가 되면 열릴 것이다. 그는 미래라는 수수께끼를 담은 상자를, 즉 자신의 육신을 억지로 여는 대신에 조용히 받아들이며, 이때 그의 지식과 삶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를 통해 다이어가 에세이의 가장 드높은 목표를 성취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을 몸소 증언하는 라스트 데이즈는 무언가를 읽고 사유하는 일이 얼마나 풍요로운 작업인지 알려 줄 것이다.

 

없음

저자

제프 다이어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국의 대표 작가. 사진, 재즈, 여행 등 한 작가가 다뤘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소재를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에 담아내며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보인다. 전 세계 독자들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1992년 『그러나 아름다운』으로 서머싯 몸상, 2004년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로 W. H. 스미스 최우수여행도서상, 2006년 『지속의 순간들』로 국제사진센터 인피니티상, 2011년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Otherwise Known as the Human Condition』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지큐GQ』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로 뽑혔다.
의외로 그는 사진을 찍지도 않고, 심지어 카메라도 없는 상태에서 사진에 관한 글을 써 왔다. 그 결과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 존 버거 등 사진 비평으로 널리 알려진 대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