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_140
두이노의 비가
Duineser Elegien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선보이는
독일 최고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필생의 역작
덧없이 사라질 대상들을 끌어안는 릴케의 대표작
“여기(『두이노의 비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 자체에서 많은 것을 해명해 볼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비가에 대한 올바른 해설을 내놓아도 괜찮은 사람인가요? 그것들은 한없이 나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릴케의 시를 번역하기도 한 비톨트 훌레비츠라는 폴란드 작가는 릴케에게 『두이노의 비가』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 후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시인 본인조차 자신을 한없이 넘어서고 있다고 표현한 『두이노의 비가』는 릴케가 장장 10년에 걸쳐 완성한, 시작詩作의 종지부를 찍는 대표작과 같은 작품이다.
‘두이노’는 릴케가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부인의 초청으로 방문한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대저택 이름이다. 시인은 이곳에서 손님으로 머무는 동안 1912년 1월 말부터 2월 초에 걸쳐 「제1비가」와 「제2비가」를 완성했으며, 그 밖에도 「제3비가」, 「제6비가」, 「제9비가」, 「제10비가」의 일부가 될 시행 일부를 작성했다. 이 비가들이 ‘두이노’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는 장소의 영향도 있지만, 시인 자신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오래되고 견고했던 두이노 성이 전쟁으로 파괴된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그 몰락한 집의 이름을 저 문학권의 연관 관계 안으로 영원히 끌어들이겠다는 결심”이 이러한 명칭을 낳았다.
시인의 말처럼 ‘두이노’라는 장소는 비록 사라졌을지언정, 그 이름만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릴케의 작품 속에서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덧없이 사라질 대상들을 깊은 사랑으로 감싸안아 시적 형상으로 변용시킴으로써 그 무상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두이노의 비가』자체의 주제가 릴케 자신의 시집 명칭에서 그대로 실현된 셈이라고 이 책의 옮긴이는 설명한다.
깊이 있는 시어와 보편적 주제로 현대 고전이 된
『두이노의 비가』, 그리고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릴케는 훌레비츠에게 보낸 같은 답장에서 전쟁으로 중단된 ‘비가’의 작업을 재개하려고 했을 때 “불과 며칠 사이에 (내 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가 폭풍처럼,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듯 먼저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두이노의 비가』가 릴케의 말마따나 10년의 세월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시라면,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약 3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1, 2부로 나뉘어 총 55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두이노의 비가』에서 ‘천사’가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이상적 상태이자 절대적 존재를 표상한다면,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노래의 신 오르페우스가 시인의 길을 제시한다. 릴케는 죽어서도 자연 속에 노래로 편재하는 오르페우스를, 삶과 죽음이 본질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신화적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런 점에서 두 시는 서로 관통하는 주제로 엮여 있으며 릴케에 따르면『두이노의 비가』가 “현존재(인간의 부정적 실존 조건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이상적 존재 상태’)의 규범”을 세운다면,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그러한 규범을 개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유럽 문화권에서 현대 고전이 된 이 두 장편 연작시는 깊이 있는 시어와 보편적 주제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의 본질’, ‘죽음을 통한 삶의 의미’ 같은 주제에서 릴케의 영향을 받은 바 있고,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같은 작품에서도 릴케의 철학적, 형이상학적 시 세계와 공명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의 현대미술가인 안젤름 키퍼 역시 릴케의 신화적 상징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선보이는 이번 판본은 독일에서 릴케의 후기 시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안문영 충남대 명예교수가 이 대작을 첫 번역한 이후 30여 년 만에 수정 및 보완 작업을 한 것으로,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고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안간힘을 쓴 결과물이다.
저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세기 최고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현대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릴케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섬세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 사랑, 고독, 신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파헤친 작품을 남겼으며, 독일 서정시를 완성시켰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기도시집』『형상시집』『로댕론』『신시집』『말테의 수기』『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외에 다수의 시, 단편소설, 희곡, 예술론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썼다.
역자
안문영
서강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릴케의 후기 시에 나타난 역설의 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독문학번역연구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한국괴테학회장, 한국훔볼트회장, 국제독어독문학연감(JIG)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말테의 수기』, 『보릅스베데의 풍경화가들』, 『릴케의 편지』를 번역했고,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자들의 대화에 나타난 전일주의사상」, 「구체시의 시론적 의미」, 「생선의 언어─현대시에 나타난 언어 회의」, 「실험과 탐험─한국 독문학자의 시각에서 본 독일 자연과학자(알렉산더 폰 훔볼트)」, 「한국 현대문학에 나타난 무속적 모티프」, 「판소리 적벽가의 중국 역사 수용 양상」 등 현대 독일문학과 한독 문화 교류에 관한 다수의 독문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