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는
중국 설화의 대표 걸작
『목련구모권선희문(目連救母勸善戲文)』은 동아시아 세계관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목련구모 설화의 핵심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세속, 서천, 천상, 지옥이라는 다층적인 무대를 구성하고 있는 대작이다. 생전에 벌인 악행으로 인해 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하려고 아들인 목련이 불법을 닦아 모두를 구하게 된다는 목련구모 설화는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에서 짧게 목련구모 설화가 묘사된 이후 당송(唐宋) 시대에 크게 보강되어 「대목건련명간구모변문(大目犍連冥間救母變文)」, 『불설대목련경(佛說大目連經)』, 「목련구모잡극(目連救母雜劇)」 등을 비롯한 텍스트들이 창작되었고, 원명 시대에는 여러 편의 보권(寶卷)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더욱 다양하게 확장되고 변이되면서 중요한 문화 현상을 형성했다. 정지진이 지은 『목련구모권선희문』은 이러한 여러 판본을 집대성했다고 할 만한 작품으로 해당 설화의 완성판이자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노래와 대사가 모두 섞여 있는 중국 고전 희곡의 특징을 잘 보여 주면서도 분량 면에서도 명대 희곡 중에서 가장 긴 작품에 해당한다.
기존의 설화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새로운 인물을 추가해 여러 세부 서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극의 전개 과정에서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면서 유기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승과 천상을 막론하고 대거 추가된 인물들은 명대 사회의 생활상과 전통적 통치 집단의 위계질서가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고, 유·불·도 삼교 합일의 가치 체계가 선명하게 드러나 동아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서구인과는 다른 동양인만의 독특한 내세관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동아시아판 단테의 『신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승과 저승, 서천과 천상을 넘나드는
환상 문학의 정수
『목련구모권선희문』에는 당대의 욕망을 긍정하는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세태에 비추어 보아도 통용될 만큼 선구적인 관점을 보인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러한 성격은 당시 은자(돈)를 추구하는 풍조에 대한 묘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승에서 귀사가 죄를 지은 나복의 어머니 유씨를 데려가며 돈 ‘전(錢)’ 자는 앞 ‘전(前)’이라는 뜻으로 돈이 있으면 남들 앞에 있을 수 있고 없으면 뒤에 떨어져 있게 된다고 묘사하는 부분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울러 귀사는 ‘전’이라는 글자가 쇠 금(金) 하나에 창 과(戈) 두 개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이롭다는 뜻의 황금과 해친다는 뜻의 창이 합쳐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돈이 지닌 양면성을 설명한다. 이처럼 종교를 바탕으로 한 여느 작품들이 물질을 추구하는 욕망에 비판적인 데 반해, 『목련구모권선희문』은 단순히 도덕론을 설파하는 것에서 벗어나 좀 더 다각적으로 사색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주인공이 세속에 있을 때는 돈에 대한 사람들의 지나친 열망을 비판하지만, 정작 저승으로 무대가 바뀐 뒤에는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은 금이 쌓여 있는 금전산을, 착한 일을 조금 한 사람은 은전산을 지나가지만,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돈을 쓸 수 없는 파전산을 지나간다는 이야기로 바뀐다. 이처럼 재물을 추구하는 것을 무조건 죄로 추정하지 않는 모순적 의식은 당시 사회에서 부와 상업 윤리가 갖는 의미가 커졌음을 반영한다.
작품에 다채로운 지옥이 등장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단테가 『신곡』에서 여러 지옥을 돌아다닌 것처럼 『목련구모권선희문』에서는 화염산이나 범이 위협하는 호표관 같은 장소가 등장한다. 또한 단테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가 도움을 준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관음이 등장해 주인공의 여정을 돕는다.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사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주인공이 불교에 귀의해서 자신과 어머니를 구하고 나중에는 도교를 대표하는 신선이 된다는 설정은 이 작품이 지닌 작품의 복합적인 요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효와 불효, 선업과 악업의 단순한 이분적 구성에서 벗어나 당대 관념을 대표하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점에서 『목련구모권선희문』은 당시 주류와 비주류의 사상을 모두 아우르는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만의 복합적인 관념 세계를 잘 직조해 하나의 대서사시로 만든 이 작품은 고전이 왜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지를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