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차이콥스키를 비롯한
근현대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호프만의 걸작
E. T. A. 호프만은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같은 문인들뿐만 아니라 로베르트 슈만을 비롯한 음악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작가로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그는 괴테나 실러 같은 고전주의자들과 달리 이성의 합리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상상력, 꿈과 환상의 세계를 탁월한 문체로 표현했다. 당시 유럽의 낭만주의 작가들은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호프만은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신이 활동하던 독일을 넘어 전 유럽에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에서는 호프만을 환상과 그로테스크의 대가로 여겼으며, 러시아에서는 그의 심리 묘사 기법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작품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인형」을 바탕으로 차이콥스키가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한 것은 당시 호프만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밤 풍경』은 호프만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원래는 같은 제목으로 2권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1816년에 출간된 첫 책에는 호프만 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작품인 「모래 사나이」를 비롯해 「이그나츠 데너」, 「G시의 예수회 교회」, 「상투스」까지 총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듬해인 1817년 봄에 출간된 두 번째 책에서는 다층적인 세계관을 보여 주는 걸작 「적막한 집」 외에 「장자 상속」, 「서원」, 「돌 심장」까지 역시 첫 책과 같은 네 편이 실려 있다. 그간 국내에는 호프만의 대표작인 「모래 사나이」를 포함해 여러 중단편이 역자의 임의대로 묶여 선집 형태로만 출간되었다. 생전에 작가가 정리한 원서 그대로 『밤 풍경』 전편을 번역해서 수록한 것은 본서가 유일하다.
이 책의 제목인 ‘밤 풍경’은 호프만의 문학 세계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핵심 키워드다. 그의 작품에서 밤 풍경의 의미는 배경, 소재, 서술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발현된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는 배경으로서의 ‘어둠’에 주목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밤의 영역’에 속하는 소재들이 있다. 강도 패거리, 살인과 다른 범죄들, 우연하고 무서운 사고들, 운명적 사건, 복수 행위 등 공포 소설의 요소들이 그것이다.
아울러 이런 끔찍한 사건들의 배후로서 인간을 위협하며 정신적·심리적으로 파멸시키는 ‘어두운 힘’, 즉 이성의 힘으로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통찰되지 않는 영역도 묘사된다. 소설 속에서 인물은 그러한 힘들과의 대결에서 위협당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명명한 ‘섬뜩한 것’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밤 풍경』의 이야기들에서는 기이한 현상들이 자연 과학, 심리학, 의학 등에 의해 부분적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작가나 서술자는 어떤 분명한 해명의 단서도 제시하지 않아 불안감이 증폭된다.
이러한 그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환상적인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본성과 오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꿈틀대던 19세기의 밤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과 환상소설의 대가 호프만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신비한 중・단편
『밤 풍경』에서 첫 번째로 실린 작품인 「모래 사나이」는 해당 작품집을 통해 작가가 보이고자 했던 문학 세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소설로 평가받는다. 「모래 사나이」는 편지로 시작되는 다소 특이한 구성을 선보이는데, 이를 통해 여러 시점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다시점(多視點)’이 이뤄진다. 이것은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눈’과도 연계되는 설정인데, 작품 속에서 유모 할멈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래 사나이는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모래를 뿌려 피투성이가 된 눈을 앗아 가는 인물이다.
모래 사나이에 관한 동화, 아버지와 의문투성이 남자인 코펠리우스의 비밀스러운 실험, 소설에 등장하는 안경과 망원경 같은 소도구도 모두 ‘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래 사나이」에서 주인공인 나타나엘은 끊임없이 모래 사나이에게 눈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안구 상실의 공포를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학적 관점에서 ‘거세 콤플렉스’로 설명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모래 사나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로서 호프만의 다층적인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주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밤 풍경』의 두 번째 책 가운데 첫 작품에 해당하는 「적막한 집」은 여러모로 「모래 사나이」와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상상력의 재능을 타고난 인간(시인)에게 하나의 고정 관념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전개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탈리아 상인에게 구매한 시각 기구(망원경, 거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그것을 통해 여자의 형체를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게 된다. 「모래 사나이」의 나타나엘뿐만 아니라 「적막한 집」의 주인공인 테오도어도 여자의 생기 있는 두 눈에 매혹당해 이성을 잃고 빠져든다. 시각적인 도구가 결국 환상을 일으키는 장치가 되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매력에 빠져들어 이성을 잃고 광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반면 두 작품의 결말은 사뭇 다른 것도 흥미롭다. 「모래 사나이」의 나타나엘은 광기에 내몰려 파멸하는 데 비해, 「적막한 집」의 테오도어는 치유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인물이 지닌 성격과 능력에서 기인한다. 테오도어는 나타나엘과 달리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에 부합하지 않은 제삼자의 해석을 수용함으로써 구원받게 된다.
이 외에도 『밤 풍경』에는 후기 낭만주의의 한 갈래로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는 ‘공포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여러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세기 예술계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인 거장 호프만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중단편집은 독자들에게 유럽 낭만주의의 환상적이고 신비한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