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과 『음악 혐오』를 한데 모은 듯한,
파스칼 키냐르 소설 세계의 총화
『세상의 모든 아침』이나 『로마의 테라스』처럼 파스칼 키냐르가 쓴 시대극은 잠잠히 잦아든 영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불타 버린 들판에 새로 난 싹들 같다. 극적인 사건들이 몸과 마음을 다 태운 뒤에 그 자리에 새로 피어난 영혼들은 식물처럼 고요하고 그 풀을 먹고 사는 초식 동물처럼 예민하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언어보다 자연과 감각에서 오는 자극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다. 말이 아닌 소리를 더 사랑하고 글이 아닌 이미지를 더 깊이 받아들이는 인물들.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세상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 이들이 키냐르 소설 세계의 주축을 이룬다.
『사랑 바다』가 키냐르 소설 세계의 총화인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주축들을 반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7세기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 속에는 작가가 기존에 창조 혹은 재창조했던 인물들이 다시금 등장한다. 바로 『세상의 모든 아침』의 주인공 생트 콜롱브와 『로마의 테라스』의 주인공 조프루아 몸므다. 『사랑 바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랑베르 하튼은 이들로부터 이어지는 기존의 키냐르적 인물관을 계승한다. 그들은 권력과 불화하며 고독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없이 이어 나간다. 류트가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현실을 한탄하며 잠도 자지 않고 서른여섯 시간 동안 류트 즉흥 연주를 펼치는 늙은 명인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이 작곡한 모든 악보를 불태우는 작곡가. 그들은 음악이며 죽음이다.
그러나 『사랑 바다』에는 그와 대조되는 존재들도 등장한다. 육체성을 사랑하고 세상을 감각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흥미롭게도 이 계열을 대표하는 인물 두 명 중 한 명은 세상에 등을 돌린 작곡가 생트 콜롱브의 여성 제자 튈린이며, 나머지 한 명은 마찬가지로 세상을 등진 판화가 조프루아 몸므의 아내 마리다. 세상과 불화하는 두 남성과 이어진 이 두 여성은 육체와 정신 모두 강렬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수수께끼 같은 불행 속에서도 자기 삶을 온전히 소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튈린과 마리를 사랑하게 된 남자들은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계속 샘솟을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이들은 사랑이며 바다다. 특히 음악가로서 예술과 소멸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간 튈린은 키냐르의 ‘고독한 예술가’ 캐릭터와 ‘욕망하는’ 캐릭터가 한데 합쳐진 초유의 인물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키냐르의 소설 세계 전체를 한 몸에 체현한 자다.
그런가 하면 튈린과 닮은 남성 인물도 있다. 실존하는 작곡가인 야콥 프로베르거는 자신의 욕망을 열렬히 탐닉한다. 그런데 그의 제자인 여성 지빌라 공녀는 누구보다 금욕적인 삶을 산다. 기존의 키냐르풍 예술가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프로베르거와 지빌라’는 ‘생트 콜롱브와 튈린’과 정확히 반대로 전개되는 ‘거울 선율’이다. 서로를 비추는 이 거울 선율들은 바로크 푸가 음악처럼 아름다운 대조를 이룬다. 이 대조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며, 그 두 이미지는 하나의 형언할 수 없는 실체를 비추는 서로 다른 상일 뿐이다. 따라서 『사랑 바다』를 쓴 키냐르는 욕망하기와 욕망하지 않기의 구별을 지운다. 『사랑 바다』를 쓴 키냐르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라거나 도피하지 말고 욕망하라는 단순한 메시지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도피와 욕망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계 자체를 조망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은 정해져 있고, 생의 정답은 어디에도 없으며, 다들 타고난 운명을 받아 든 뒤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할 뿐이다.
17세기 예술가들의 기구한 삶을 통해 바라보는
이 덧없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관한 소설
이 모든 과정을 담은 『사랑 바다』의 구조 자체도 탄생과 죽음을 재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조차 할 수 없는데, 이는 의도적인 연출이다. 소설이 시작할 때, 이들은 마치 막 태어난 아이와 같다. 그들에 관한 정보가 조금씩 추가되며 각각의 캐릭터-인격을 구축해 나가고, 그렇게 그들을 둘러싼 삶의 윤곽을 대략 이해하게 될 때쯤 죽음이 다가온다. 소설 속 여러 인물의 죽음은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면서 영원히 이어지는 음악 같다. 물론 삶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과 삶이 서로를 마주 보며 끝없이 빚어 가는 이 이중주는 오래된 수수께끼처럼 아름답다. 이 불변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키냐르가 평생 탐구해 왔던 주제가 아닐까. 이전 어느 때보다 도피하기와 열망하기의 균형을 완벽히 맞춘 『사랑 바다』는 그 열정적인 탐구 활동이 다다른 작은 경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