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현대인의
동반자 위상을 차지한 명상
새해를 맞아 새롭게 결심을 세우려는 이들이 많다. 아마도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 기르기’와 같은 목표가 압도적일 듯하다. 작년 한 해 서점계를 강타한 베스트셀러 중 하나도 집중력에 관한 책이었고, 꼭 그런 지표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현대인이라면 본인의 생활 패턴을 점검해 보고 반성문을 적어 내려가듯 ‘폰 적게 보기’, ‘폰 대신 독서하기’와 같은 결심 한두 개쯤은 끼워 넣을 것이다.
집중력 저하뿐 아니라 도파민 중독도 우리를 힘들 게 하는 건 매한가지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어느새 드라마나 영화도 1.5배속으로 시청하고, 그것도 길다 싶으면 전체 내용을 짧게 요약한 압축본을 찾아본다. 더 자극적인 이미지나 영상을 찾아 빠르게 스크롤하는 엄지손가락은 마치 더 맛있는 사냥감을 찾아 나선 굶주린 맹수의 눈빛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모두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각자의 머리에 심어 둔 채 살아간다.
시한폭탄의 시침이 끝에 다다를 즈음 저마다 자신에게 제동을 걸어 줄 브레이크를 찾아 나선다. 거기서 우리는 ‘명상’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한다. 더 이상 신비롭거나 이국적인 그 무엇이 아닌, 국적을 불문하고 이제는 현대인의 동반자라는 위상을 차지한 이 생각하기의 한 방식은 앞서 말한 모든 것과 대척점에 있다. 가만히 오래 들여다봐야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도 봐야 한다. 명상의 순간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림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명상의 개념을 바라보다
“명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과 비물질 사이 빈 곳에 위치하는 내면의 운동이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개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예술 작품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여기 독자로 하여금 좀 더 수월하게 명상의 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예술 작품을 정성껏 모아 온 이가 있다. 사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서 이러한 ‘매개’들로 인한 명상을 경험한다. 누군가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몰입의 상태를 체험한다.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순간 명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미술관에 찾아가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도 일종의 명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원제: Méditer à travers l’art)』은 이 미술관을 통째로 옮겨 와 그림을 통해 명상의 개념을 생생하고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려고 하는 최초의 시도다.
명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귀스타브 쿠르베의 자화상, 일명 〈절망하는 사람〉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는 나쁜 신호가 아니다. 저자 수아지크 미슐로는 여기서 숲 명상의 승려 아잔 차의 말을 빌려 온다. “명상 수행 중 어느 시점에 이르면 (…) 당신의 정신 상태는 비명을 지르고 (...) 통제 불가능한 수용소가 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미친 게 아니다. 당신의 상태는 늘 이랬다. 다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 이런 발견이야말로 당신이 진정한 명상의 단계에 들어서서 발전 직전에 있음을 알리는 청신호다.”
1950년 뉴욕 롱아일랜드 작업실에서 바닥에 놓인 캔버스 천에 물감을 마구 흩뿌리는 잭슨 폴록의 사진 속에서 저자는 자아를 주장하거나 현실을 장악한다기보다 작품과 대화를 시도하고 겸손한 자세로 놓아주는 예술가만의 미학이 있다고 보았다. 그림을 그리려 하기보다 그림이 그려지도록 내버려 두는 예술가는 “다만 저절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거나 자기 안에서 어떤 일이 스스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남겨 두려고 하는” 명상가를 닮았다.
이처럼 이 책은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명상의 개념과 모습을 100여 편의 작품으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마음 세계로의 산책이자 여행으로의 초대
저자 미슐로는 현재 프랑스에서 마음챙김에 근거한 인지 치료(MBCT)와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BSR)을 강의하는 명상 전문가다. 하지만 처음부터 명상의 길에 들어섰던 건 아니다. 대학에서 미술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를 공부하다 우연히 명상을 접하고 그 길로 푹 빠져 버렸다. 3년여의 안거 수행을 포함해 사찰에서 7년의 시간을 보내고 그때의 경험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고 싶어 마음챙김 명상 강연자로 나섰다. 대학에서 미술사 등의 예술을 공부한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독특한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 바로 명상에 예술을, 예술에 명상을 접목하고자 한 것이다. 예술과 명상을 두루 접했던 저자가 보기에 그림 속에는 명상의 세계를 설명해 주는 보물이 넘쳐흘렀다. 책에는 이러한 고전 회화나 사진, 건축이나 거리 예술, 16세기 또는 21세기의 시각 자료들이 저자 개인의 경험과 감각, 문장 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저자는 이 책이 명상 전문 예술서가 아님을 강조한다. “마음챙김에 대한 이론서를 읽는 것보다 꽃이나 예술 작품 등을 골똘히 바라보는 것으로 명상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마음 세계로의 산책이자 여행으로의 초대”로서 이 책을 독자에게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