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피나 바우쉬 평전
“독일의 레이블, 아이콘, 마돈나”, “현대무용의 전설”, “세계 춤의 역사를 바꾼 천재 무용가” 등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르는 예술가가 있다. 살아생전 이미 신화였던 안무가, 피나 바우쉬다. 그녀는 춤·연기·노래·미술의 경계를 허문 탈 장르 양식 ‘탄츠테아터Tanztheater’를 확립해 현대무용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독일의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36년간 이끄는 동안 무용에 새로운 연극적 차원을 선사하며 변화와 혁신을 일으켰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979년 첫 내한 공연 이후 2005년에는 ‘서울’을 소재로 한 작품 <러프 컷>을 공개하기도 했다. 을유문화사는 2005년 국내 최초로 피나 바우쉬 평전을 출간한 바 있으며,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마리온 마이어의 책은 독일 현지에서 3판까지 출간되며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책에는 저자가 무용계 유명 인사들과 나눈 피나 바우쉬 관련 인터뷰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만든 작품 목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고, 100여 점의 풍성한 도판은 피나와 그녀의 무용단이 거쳐 온 위대한 순간들과 희로애락의 몸짓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한편 피나 바우쉬의 오랜 팬이자 전작에 이어 이번 책도 번역한 이준서 교수(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 대한 미학적 해설을 곁들여 책에 깊이를 더했다. 이 교수는 독일 현대 연극계의 대스타이자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선구자인 하이너 뮐러가 1981년 피나 바우쉬에게 헌사한 「신발에 피가 혹은 자유의 수수께끼」라는 에세이를 분석하면서, 이 안무가의 예술적 혁신이 어떠한 의의를 지니며 그 미학적 독특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본다.
여관집 딸이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기까지
피나 바우쉬는 1940년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졸링엔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식당이 딸린 여관을 운영했고, 삼남매 중 막내인 그녀는 부모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여관에 드나드는 손님들을 보면서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 속 우정이나 사랑, 토론 등에 매료되었다. 피나는 발레에 입문하여 일찍부터 재능을 드러냈고, 열네 살에 주니어 장학생으로 에센의 폴크방슐레(폴크방예술대학교) 무용과에 들어가, 예술의 협연이라는 학교의 이념에 따라 포괄적으로 사유하거나 무용·연극·음악을 융합하는 등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곳에서 피나 바우쉬는 현대무용의 개척자 쿠르트 요스를 만나는데 그는 훗날 그녀에게 제2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된다.
폴크방슐레에서 4년을 보낸 뒤에 당시 현대무용의 중심지였던 뉴욕의 줄리아드스쿨에 진학한 피나는 부업으로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일한 덕분에 폴 사나사르도, 도냐 퓨어와 친해지면서 뉴아메리칸발레에서 공연하며 경험을 쌓는다. 뉴욕에서의 체류 기간을 연장할 만큼 그녀는 이 도시를 좋아했지만, 1962년 에센의 초빙으로 짐을 꾸려야만 했다. 이후 폴크방슐레의 일원으로 요스의 <초록 탁자>에서 늙은 엄마 역으로 춤을 추고,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원정 공연을 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안무 부문에서 더 많이 활약하고, 벨러 버르토크의 음악에 맞춰 <단편>이라는 안무를 선보인다. 바로 이 시기에 그녀는 자기만의 무용언어를 개발한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 덕분에 1969년 경연대회에서 <시간의 바람 속에서>라는 작품으로 게어하르트 보너, 요한 크레스니크, 존 노이마이어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피나 바우쉬가 부퍼탈로 온 데에는 당시 부퍼탈러 뷔넨의 극장장이었던 아르노 뷔스텐회퍼의 역할이 컸다. 시립극장에서 일할 마음이 없었던 그녀에게 뷔스텐회퍼는 몇몇 안무를 요청했고, 그녀는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에 발레단장으로 부퍼탈러 뷔넨에 입성한다. 이후 초청공연의 성공과 페스티벌 초청 등으로 부퍼탈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피나 바우쉬는 초기 3년간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개념을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고민한다. 1974년 발레단장으로 선보인 첫 번째 작업 <프리츠>는 대중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비평가들에게 그녀 자신의 재능을 확실히 알렸다. 이후 선보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는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그녀의 첫 번째 성공작이 된다. 그리고 무용 레뷰 <내가 너를 죽여줄게>로 피나 바우쉬는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장르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
인간의 더 깊은 곳을 파헤치기 위한 몸짓들
피나 바우쉬의 관심은 언제나 ‘인간’에 있었다. 그녀는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더 흥미를 느꼈다. 끓어오를 듯 강렬한 사랑과 욕망, 극심한 불안과 공포, 처절한 상실과 고독, 가슴을 에는 슬픔과 고뇌 등의 정념이 그녀의 작품에서 늘 환기되는 이유다. 그녀에게 춤은 움직임만이 아닌 감정도 똑같이 포함되는 보다 넓은 개념이었다.
피나는 언제나 불안, 그리움, 절망, 행복 추구, 삶의 잔혹성, 무자비한 어른들의 세계와 대조되는 유년기의 무구함 같은 핵심적이고 인간적인 주제에 천착했다. 이를 위해 인간이 어떻게 언어 부재, 착취, 굴욕, 예속성을 경험하는가를 남성과 여성의 복잡한 커플 관계를 담은 장면들 속에 압축시켰다. 또한 장면의 모든 개별적인 배경에도 에피소드들은 인간 경험의 핵심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피나 바우쉬는 해부적인 시선으로 관계의 세계를 분석했고, 섬세한 유머를 사용했다. 사태를 놀랄 만큼 정직하고 희극적이게, 그리고 정확히 파악하여 연극적으로 압축할 줄 알았던 그녀는 결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법이 없었다. 관객이 각자 스스로 경험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우리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과 존재에 대해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옮긴이의 다음과 같은 평은 피나 바우쉬의 예술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녀의 무대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의 흔적들은 더 깊은 곳을 파헤치기 위한 진입로다. 예컨대 바우쉬가 끊임없이 성 대결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실 잘 보면, 그녀는 남성을 부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을뿐더러 남성만 부정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여성들 역시 남성적 폭력에 응하거나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다. 바우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부정성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그 아래 자리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동경에 대한 직시이며, 그것이 어떻게 폭력성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피나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건재하다. 그녀의 관심사가 언제나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을 직시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가장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출하고자 했던 피나 바우쉬의 여정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