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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문고_

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엄지영

360쪽, 115*190mm, 15,000원

2022년 12월 25일

ISBN. 978-89-324-6135-9

이 도서의 판매처

어떤 리얼리즘은 악몽보다 깊은 곳에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은 실제로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멕시코에서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베라크루스주의 한 마을에서 마녀로 불리던 자가 살해당하고, 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사연이 하나씩 풀려 나가며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 한편, 빈곤 속에서 살아온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들은 지나치게 열렬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미워한다. 그리고 그 무차별적인 사랑과 증오를 즉각 행동으로 옮긴다. 빈곤이 매 초마다 사람들의 영혼을 끌어내리는 그곳에서 가만히 생각하거나 망설이는 일은 사치일뿐더러, 가끔은 위험한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020년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태풍의 계절』은 그해 후보작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빈곤이 불러 온 절망적인 현실과 거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폭력을 그대로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몇몇 독자는 이 작품이 온갖 폭력과 혐오로 장식한 ‘빈곤 포르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짧고 강렬한 것은 실제로 이 소설의 배경인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살았던 독자가 쓴 리뷰였다. “나는 그곳에 살았었고, 이 소설에 묘사된 폭력은 전혀 과장돼 있지 않다.”

몽환적인 문체와 냉철한 르포르타주 정신의 조합

사람들은 빈곤이 불안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불안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 또 그 깊은 곳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지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빈곤은 소재의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문학적인’ 소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널리스트 출신인 멜초르는 『태풍의 계절』을 쓰면서 베라크루스의 오늘날을 그대로 보여 주겠다는 목표를 고수했고,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소설을 선보이기 위해 복고적인 모험을 선택했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멜초르는 『태풍의 계절』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가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멕시코 문학의 수호신인 후안 룰포의 흔적 역시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몽환적인 묘사와 노골적인 구어체가 마치 본래부터 하나의 스타일이었던 양 섞여 있고, 최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각 장은 거의 한 문단으로 이어져 있고, 그 안에서는 독백과 대화와 서술이 엉겨 붙어 있다. 이렇게 휩쓸려 밀려가는 텍스트의 압력은 무척 강해서, 때로는 독자마저 그 흐름에 빨려들 정도다(자신이 왜 이 작품을 손에서 놓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해외 독자의 리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멜초르는 문체가 아닌 플롯에 있어서는 선배들의 ‘마술적’인 환상성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이 작품이 추구하는 냉철한 사실성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멜초르가 플롯을 작성하면서 염두에 둔 작품들은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비롯한 르포르타주들이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멜초르는 꼼꼼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여러 인물의 알리바이를 연결하는 작업에 익숙했고, 『태풍의 계절』에서 그 특기를 십분 발휘한다. 중심이 되는 사건을 향해 섬세하게 시간을 되돌리며 그 사건을 둘러싼 작중 인물들의 기억과 알리바이를 하나씩 덧붙이는 것이다.

범죄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이 섬세한 ‘알리바이 게임’은 작품에 강렬한 감정을 불어넣는다. 서로 얽혀 있는 등장인물들이 알지 못하는 것, 즉 서로에 관한 진심과 각자의 말할 수 없는 사정을 오직 독자만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안타까움이 그들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외 없이 악행을 저지른 그들은 처음에는 독자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안타까움을 통해 어느새 한 명의 인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그토록 혐오스러운 세계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작품 속 악당-인간들을 통해 많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내 연대와 유대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나는 어떤 인간까지를 인간답다고 간주하는가.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인간을 구별 짓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얼마나 합당한가. 암실문고가 선사하는 이 세 번째 어둠, 빈곤과 폭력을 비추는 어둠은 그 어려운 질문들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I
II
III
IV
V
VI
VII
VIII
감사의 말

저자

페르난다 멜초르

1982년 멕시코 베라크루스에서 태어났다. 베라크루스대학에서 저널리즘 학위를 취득한 뒤 저널리즘 기사와 단편 소설을 여러 곳에 기고했다. 이내 뛰어난 필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국내 언론은 물론 『뉴요커』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해외 매체에도 기사와 에세이를 실었다. 2013년에 그간의 저널리즘 산문을 모은 책 『이것은 마이애미가 아니다Aquí no es Miami』와 첫 소설 『가짜 토끼Falsa liebre』를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 데뷔했다. 2017년에는 베라크루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 사건 등 여러 실화에 영감을 받아 쓴 『태풍의 계절Temporada de huracanes』을 발표했다. 그해 멕시코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은 이 작품은 독일 문화의 집이 수여한 국제 문학상과 안나 제거스상을 수상했고, 맨부커상 국제 부문과 더블린 국제 문학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21년에는 『파라다이스Paradais』를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 작가는 멕시코 문학의 가장 강력한 미래로 여겨지고 있다.

역자

엄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알베르또 푸겟의 『말라 온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우리였던 그림자』, 그 외 공살루 M. 타바리스의 『작가들이 사는 동네』, 『예루살렘』,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 돌로레스 레돈도의 『테베의 태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영혼의 미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