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50여 년이 지나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10선에 선정된 회고록
비극적인 여성 작가의 삶.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조명받는 이 주제를 다룬 책은 그만큼 치열한 경쟁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는 실비아 플라스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유명한 작가의 삶을 그리거나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을수록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공식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 ‘코펜하겐 3부작’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태풍처럼 그 틀을 부수었다. 덴마크 바깥에는 반세기 가까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가 무려 50여 년 전에 쓴 회고록이 독자와 비평가의 압도적인 찬사를 얻은 것이다.
정의正義에서 벗어남으로써
정의定義에서 탈출하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작가의 유년기부터 서른 남짓까지를 회고하는 이 3부작은 엘레나 페란테를 연상시키는 설정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끝은 노스탤지어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흔히 애수와 소회로 채워지는 회고록을 특별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비결은 바로 냉정함이다. 그는 어느 타인보다 더 냉정하게, 마치 환부를 관찰하는 의사처럼 스스로의 결점들을 관찰했고, 그 관찰 결과에 아무런 판단도 덧붙이지 않았다. 합리화도, 자책도, 원망도 없다. 심지어 디틀레우센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문하지 않는다. 회고를 통한 감정적인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작가의 고백이 독자의 공감이나 연민으로 이어지는 회고록 장르의 심리적 전통을 파괴해 버렸다. 실로 전위적인 결과였다.
1985년에 『어린 시절』과 『청춘』을 통해 처음으로 디틀레우센을 접한 미국 여성주의 문학계는 두 작품의 이러한 특징을 격찬했다. 디틀레우센이 ‘불의를 깨닫고 정의를 추구(해야)하는 여성’이라는 정치적 프레임마저 벗어던지고 오류와 불안에 기꺼이 노출된 여성-인간을 출현시켰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정의와 윤리로부터 스스로의 욕망을 따라 이탈하는 것, 이는 파멸을 부르는 불의이면서 더 높은 단계의 해방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 여성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틸리 올슨은 디틀레우센의 회고록에 실린 이런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그를 당대에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숙제처럼 다가온다.
또한 이 냉정함과 초연함은 특별한 종류의 온기도 가져다준다. 자기 연민이 없는 디틀레우센은 자신의 불행을 외부에 투사하지 않고, 따라서 적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조국을 점령한 독일군 병사들조차 미워하지 않는다. 시대와 운명이 그들을 거기로 이끌었을 뿐이고,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모든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불공평한 의무와 욕망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깨달았던 디틀레우센은 타인의 과오와 오류를 자신의 그것처럼 조용히 바라본다. 손쉽게 내 편과 상대편을 가르지 않고 온 인간이 근본적으로 같은 결핍을 지닌 동족임을 이해한 것이다. 회고록 사상 가장 냉철한 관찰자의 내면에 담긴 이 역설적인 따뜻함은 오래도록 잊기 어려운 감흥을 선사할 것이다.
시인이 산문을 쓸 때의 두 가지 능력
아름답게 늘이기, 그리고 압축하기
3부작의 첫 책인 『어린 시절』은 앞서 언급했듯 유년기의 애수를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면에서 엘레나 페란테를 연상시킨다. 특히 몽상에 자주 잠겼던 어린 시절을 그리는 디틀레우센의 묘사는 시인을 꿈꾸는 아이의 마음을 따라 길고 아름답게 이어진다. 그러나 디틀레우센은 그와 상반되는 방식도 곧잘 사용한다. 어떤 상황을 덩어리처럼 압축해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방식은 때로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고, 때로는 완전히 지친 것처럼 무겁고 무감각하다. 이렇게 작품 속의 시간 감각은 작가의 내적 체험과 비슷하게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사건들 사이에 독특한 리듬감이 발생한다. 시인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디틀레우센의 개성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아름다운 문장, 독특한 리듬감을 지닌 『어린 시절』은 ‘코펜하겐 3부작’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의 지지를 얻었다. 이 작품만을 따로 떼어 아련한 드라마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다. 독자는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아련하고 단정한 슬픔 속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거기서 자라난 어둠이 만개하는 모습까지 지켜볼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건 『어린 시절』은 기억에 남을 만한 작은 상처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