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아날로그 오디오 라이프
팬데믹으로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과거 LP를 직접 경험한 세대뿐 아니라 레트로 유행을 이끄는 MZ세대 사이에서 턴테이블과 LP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작년 온라인에서 턴테이블 매출이 전년 대비 30퍼센트나 증가하고, LP 판매량은 무려 70퍼센트 이상 뛰었다는 기사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2020년 상반기, LP가 CD보다 많이 판매됐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주로 바깥으로 향했던 취미 생활과 소비의 패턴이 마침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한동안 위축됐던 소비 시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하이엔드로 나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오디오 등 고급 취향을 향유하는 일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아날로그 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 일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는 추세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거꾸로 아날로그를 찾는다. LP의 인기에 힘입어 옛날 가수들의 앨범이 LP로 다시 나오고, 요즘 가수들도 LP로 음반을 내는 게 유행이다. 한정판의 경우 완판되는 일이 빈번하며, 중고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LP를 구입한 이들이 향하는 다음 단계가 바로 오디오다.
『오디오・라이프・디자인』은 이처럼 아날로그 취향을 가진 모든 이를 만족시켜 줄 만한 책이다. 오디오파일이나, 오디오 세계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변호사 일까지 그만두며 오디오 숍을 차린 저자의 해박하고 친절한 안내에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훌륭한 음질로 재생해 줄 장비를 탐색 중인 독자라면 브라운, JBL, 마란츠, FM 어쿠스틱스, 골드문트 등 이 책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오디오 브랜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디자인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마치 하나의 오브제처럼 우뚝 선 스피커, 샴페인 컬러의 금속 마감된 앰프, 섬세하게 설계된 진공관을 보며 짜릿한 전율을 느낄 것이다.
오디오는 빛, 버튼, 다이얼의 총체
포노그래프부터 마크 레빈슨까지 145년간 이어진 혁신의 예술
저자 기디언 슈워츠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글을 시작한다. “오디오란 단순히 소리를 재생하는 장치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가 소환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다. 잘 알려졌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1980년 애플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거액을 거머쥔 뒤 조지 나카시마, 포르쉐 911, BMW 바이크 등 당대 최고의 명품을 섭렵하며 감각을 키운 인물이다. 아이폰이 탄생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82년 『타임』지의 한 기자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잡스의 자택에서 그를 촬영했는데, 그 사진 속에서 잡스는 최고급 오디오 기기와 레코드만 덩그러니 놓인 방의 나무 바닥에 앉아 있다. 당시 잡스의 오디오는 당대 최고의 기술을 담아낸, 극히 소량만 생산되는 제품이었다. 탄생부터 현재까지, 오디오는 예술가가 의도하는 소리를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기기를 단지 소리를 재생해 주는 장치라는 실용적 관점으로만 보아야 할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오디오는 니나 시몬의 애잔한 목소리, 데드마우스의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이츠하크 펄먼의 절묘한 바이올린 음색을 전달하기 위해 작동하는 빛, 버튼, 다이얼의 총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슈워츠는 오디오가 지나온 발자취를 따라간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포노그래프부터 이를 개량해 음반 배급의 기초를 완성한 에밀 베를리너, 삼극관과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벨 연구소, 이들과 음반 음질을 개선한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오디오 디자인의 아이콘 브라운의 디터 람스와 뱅앤올룹슨의 야콥 옌센, 창업자 제임스 B. 랜싱의 자살 이후 산업 디자이너 아널드 울프를 CEO로 기용하며 승승장구한 JBL, 과감하게 유닛을 전全 방향에 배치한 보스, 하이엔드 오디오 시대를 개막한 마크 레빈슨까지. 이 책은 편견과 한계를 극복한 오디오 혁신가를 촘촘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술적 감각을 일깨우는 훌륭한 레퍼런스
『오디오・라이프・디자인』은 오디오와 디자인에 대한 훌륭한 레퍼런스가 되어 준다. 책에는 1800년대의 광고 포스터, 20세기 초반 뱅앤올룹슨의 초창기 직원들이 회사의 첫 번째 작업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 벽면 가득 오디오 시스템과 LP판으로 가득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저택 사진, 1950년대 루디 반 겔더의 스튜디오 사진을 시작으로, 오디오 산업의 유토피아를 이끈 1950년대부터 새로운 아날로그 혁명이 불고 있는 현재까지 다양한 오디오 브랜드의 앰프, 튜너, 카트리지, 스피커, 턴테이블 등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사진 자료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20년 이상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한 『오디오 매거진』의 이현준 대표가 원서의 감동을 우리말로 충실히 옮겼다.
“아날로그의 부활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날로그와 관련 기기(대표적으로 LP)의 감각적인 퀄리티와 만질 수 있는 예술 형태를 소구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저자 슈워츠의 말대로 결국 우리는 예술적으로 감각되는 물성을 욕망하는 존재다. 많은 것들이 압축되고 때로는 제거되는 디지털 시대에 하이파이는 현재 진행형으로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