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빛 이야기
연료를 태우는 불부터 노란 전구, 형광등, LED 전구까지 기술 발전에 따라 조명도 발달해 왔다. 그런데 아파트 위주의 주거 환경과 빠른 산업화로 인한 효율 중시 풍토는 현재 우리 사회의 ‘부족한 빛 환경’을 만들어 냈다. 각각의 공간에 맞는 적절한 빛이 아닌,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조명을 배치해야 했기에 동일한 위치(공간의 중앙부)에 효율성 높은 형광등을 설치해 왔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에서는 형광등을 ‘작업등’의 용도로 인식해 병원, 학교 등에만 사용해 왔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한국 주거의 조명을 ‘병원 같은 조명’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문화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각 공간에 맞는 조명이나 자연의 빛과 색온도에 적응하는 사람의 몸을 생각한 빛 환경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빛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이고, 많은 사람이 빛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어떤 빛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 책은 찾기 힘들다. 빛이야말로 공간, 제품, 예술, 삶 등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 주변의 것들을 매개로 쉽고 재미있게 빛을 이야기한다.
눈에 인지되는 모든 것은 빛을 통해 이루어진다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암흑이 떠오르겠지만, 빛의 부재는 단순한 어둠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사물에 빛이 반사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빛이 끊임없이 반사되고 산란하며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중 눈으로 들어온 빛으로 우리는 글을 읽고, 사물을 보고, 세상을 인지한다.
이 책은 빛,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 그리고 사회로 범위를 넓혀 가며 빛을 다각도로 비춘다. 그리고 빛 공해, 생태계 파괴 등 인간이 만든 빛의 이면을 조명하며 우리가 어떤 빛을 만들어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란 건 그러하다. 본다는 것은 그렇게 상대적이며 매우 불완전하고 연약한 감각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래서 빛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도구가 되기도 한다.”
빛의 앞, 옆, 뒤 그리고 이면을 바라보다
1장 ‘빛에 대한 오해들’은 빛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을 보여 주는 ‘본다’는 현상부터 다룬다. 나와 대상 사이에 빛이 존재해야 볼 수 있다는 것부터 빛과 색, 투명도 등 여러 특징을 알려 주고, 직사광과 천공광으로 나뉘는 지구의 빛 환경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빛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2장은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눈부심 현상을 일으키는 대비와 시야, 공간에 따라 다른 조명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 등 사용하는 사람에게 편안한 빛 환경에 대해 말하며 우리가 사는 공간에 어떤 빛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하루 종일 누워 고개도 스스로 돌리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생아는 램프를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도 마찬가지다. 침대에 누우면 내 시야 정면에 위치하게 되는 방등은 침실에 설치된 조명임에도 불구하고 누워 있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하지 못한 조명 기구다. 이렇듯 좋은 빛 환경을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의 시선’이다.”
3장에서는 사무실을 비롯한 생활 공간의 빛/조명들을 더 좋은 빛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알려 준다. 특히 동서남북 창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생활이나 취향과 연결돼 있어 더 와 닿는다. 태양이 낮은 고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실내 깊숙한 곳까지 빛이 다다르면서 따뜻하고 아늑한 감성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서쪽 창, 부드럽고 균일한 빛이 일정하게 들어와 그림자에 민감한 화가들에게 좋은 작업 환경을 만들어 줘 ‘예술가의 창’으로 불린 북쪽 창, 아침의 태양이 식어 있는 집 안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동쪽 창 등 네 방향의 창이 가진 장점과 특징을 알려 준다. 그리고 들이치는 직사광 조절 방법,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색온도, 눈부심 유발 조건 등을 다루며 공간에 빛을 어떻게 들여야 할지 힌트를 준다.
4장 ‘빛과 사회’는 빛의 역사, 도시의 경관 조명, 빛 공해, 생태계 파괴 등 인간이 만든 빛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 주고 그 이면을 조명하며 우리가 어떤 빛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우리의 밤은 너무나 밝다. 덕분에 해가 지고도 인간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의 시계에 맞춰 몸이 휴식과 수면을 취해야 할 시간에 몸의 충전을 유보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조명은 인간의 건강만 해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척추동물의 약 30퍼센트, 무척추동물의 약 60퍼센트 이상이 야행성인데, 주로 달빛으로 방향을 탐지하는 벌레나 동물에게 인공조명은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로 수많은 곤충과 새들이 비행 중에 길을 잃고 헤맨다. 강한 인공조명에 노출돼 시각 능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상태에 이른 지금, 우리는 인공조명이 만든 이러한 결과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때를 직감한 아기 거북은 드디어 지표면으로 올라와 본능적으로 바다의 빛을 향해 내달린다. (…) 그렇게 아기 거북의 몸이 마르고 체력이 다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내달렸을 즈음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곳은 안타깝게도 바다와 정반대인 해안도로 가로등 아래였다. 지금도 수많은 아기 거북들은 바닷가의 리조트, 상업 시설, 간판 등이 비추는 빛에 속아 바다가 아닌 육지를 향해 기어간다. 기존에도 1퍼센트 정도로 낮은 거북이의 생존 확률은 인간이 밝힌 빛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낮아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빛은 무엇인가
“음질이나 음향을 배제하고 스피커의 형태와 재질, 브랜드만 따져서는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없습니다. 조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을 논하지 않고 조명의 형태나 재질만 생각한다면 좋은 빛을 가진 공간을 마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빛의 존재와 그 속에 사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우리의 공간과 삶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빛’과 그 빛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 이 책은 빛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보게 해 주고, 빛에 대한 교양 지식을 제공하는 빛(자연광, 인공조명) 입문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빛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시야가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