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여성학 바이블
보부아르 연구자의 완역, ‘국내 첫 독점 출간’
『제2의 성』은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알려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대표작으로, 국내에는 을유문화사에서 1973년에 처음 소개하였다. 그로부터 50여 년 만에 다시 을유문화사에서 프랑스 저작권사와 공식 계약하고 변화한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번역을 선보인다. 이번 번역은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보부아르의 철학 사상과 문학 작품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보부아르 전문 연구자인 이정순 선생이 맡아 3년 넘게 공을 들였다.
20세기 페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현대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저널리스트, 극작가, 참여 지식인, 급진적 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릴 만큼 많은 작품과 활동을 남겼다. 그러나 보부아르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은 단연코 『제2의 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949년 출간 당시 프랑스의 가부장 사회에 폭탄을 던진 것과 같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여성을 남성 주체의 ‘타자’로서 종속적인 상황에 놓이도록 한 여성성 및 모성, 사랑, 성차 등에 대한 신화의 허구성을 예리하게 파헤치면서 양성 간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보부아르는 좌우를 막론하고 보수적인 남성 지식인들의 거센 반발과 비난을 받았다. 특히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 알베르 카뮈 등 일부 남성 지식인들은 보부아르에게 지독한 여성 혐오적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에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옹호와 『제2의 성』에서 자신들의 이야기와 진실을 발견한 수많은 여성 독자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이후 전 세계 여성들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제2물결 페미니즘의 기폭제가 되었다.
『제2의 성』은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원시 사회부터 현대까지 여성의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사회, 정치, 신화,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남성이 부여한 여성 역할이나 이미지를 역사, 사회학, 철학, 인류학, 생물학,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탐구한, 그야말로 여성 조건에 관한 과학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서라 할 수 있다. 보부아르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이 실존적 조건을 자각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며, 세대별 여성들의 다양한 체험 사례와 보부아르의 문학적 표현으로 따뜻하고 섬세한 위로와 공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당시 학계 연구자들에게도 영감을 주면서 현대 페미니즘과 젠더 연구에 초석이 되었고, 오늘날 여성학에서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자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에게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여성의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페미니즘 고전
여성에 관해 역사·문학·사회학·철학·생물학·정신분석학적으로 방대하게 고찰
『제2의 성』은 젠더 관계에서 상호주체성이라는 인간관계가 어떻게 왜곡되어 작동하는지 파헤치고, 여성이 타자의 상황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어떻게 주체이자 본질로 되돌아갈 수 있는지 그 조건과 가능성을 밝힌다. 또한 여자에게 타자로 살도록 강요하는 남성 중심의 세계를 단죄함과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완성하여 스스로 자기 존재를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는 여성 주체에 대해서도 윤리적 엄격성을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1권 「사실과 신화」에서는 역사적 사실들과 신화들을 연구 분석하여 여성이 인류 초기에 어떻게 타자가 되고, 여성의 타자 상태는 인류사 내내 어떻게 전개 및 유지되었는지 규명한다. 보부아르는 여자의 열등함은 열등하게 되는 조건에 놓인 여자의 상황이라고 본다. 따라서 생물학적 조건으로 ‘여성성’을 정당화하는 생물학과 정신분석학의 결정론적인 관점을 제1권의 제1부 ‘운명’에서 비판한다. 제2부 ‘역사’에서는 여자의 예속이 기술과 사유재산으로 설명될 것이라는 유물사관의 주장을 거부하고, 제3부 ‘신화’에서는 남자가 규정한 신화들을 다양한 현실과 문학 속에서 살펴보고 비평한다. 여기에서는 신화 분석과 함께 보부아르의 작가적 직관과 통찰, 비유와 풍자, 감성과 서정성 등 문학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제2권 「체험」에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타자로서의 여성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여성의 생생한 체험과 방대한 연구 자료를 통해 분석한다. 제1부 ‘형성’에서는 유년기부터 성 입문의 과정까지 여성이 겪는 경험들과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여성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 제2부 ‘상황’에서는 결혼 제도를 통해 여자가 놓인 종속성을 비판하고, 그 구체적인 양태를 서술한다. 가부장 사회는 여자에게 오로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만을 할당한다. 사회는 가사와 모성을 미화하고 찬양하며 여성이 집안일과 출산, 육아에 전념토록 유도한다. 요컨대 결혼한 여자의 삶은 외부 세계와 분리된 채 전적으로 남편을 통해서만 사회와 소통하는 의존적이고 소외된 경우가 많다. 또한 보부아르는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며 여자를 모성에 가둬 놓는 당시 프랑스 가부장 사회의 위선을 통렬히 비판한다. 객체로 고착되고 내재 속에 갇혀 있기를 요구당하는 성인 여자들의 다양한 상황과 노년기도 다룬다. 제3부 ‘정당화’에서는 세 유형의 여성 사례 즉, ‘나르시시즘의 여자’, ‘사랑에 빠진 여자’, ‘신비주의 여자’를 통해 타자로서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는 세계에서 여성의 자기실현의 시도가 어떻게 실패로 끝나는지 보여 준다. 제4부 ‘해방을 향해’에서는 사회적·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자들이 완전한 주체로서 자기를 실현하는 길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면밀히 짚어 보고, 집단적 변화 없이는 진정한 해방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실존적 조건을 자각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남자들도 타자이자 객체화된 여자의 시선에 자기를 이상화시키는 자기소외의 꿈과 그 꿈을 가능케 한 특권을 떨쳐 내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여자들이 초월성을 회복해 남녀가 함께 자유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호소한다.
오늘날 젊은 남녀 세대에게 큰 울림과 영감을 주는 고전
새로운 번역, 단단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전면 개정
친절한 해설과 꼼꼼한 역주, 도판 50여 점 수록
『제2의 성』이 지난 1973년에 을유문화사를 통해 국내 처음 소개된 이후 약 50년 만에 이를 새롭게 전면 개정하면서 오역은 물론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나 『제2의 성』의 철학적 토대인 실존주의나 현상학과 동떨어진 용어 등 그동안 안고 있었던 번역의 문제점을 바로잡았다. 예를 들면 féminité, virilité는 ‘여성다움’, ‘남성다움’에서 ‘여성성’, ‘남성성’으로 대부분 통일했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여권 신장론자’, ‘여성 해방론자’로 번역된 féministe는 ‘페미니스트’ 혹은 ‘여성주의자’로, ‘여권 확장 반대론자’는 ‘안티페미니스트’ 혹은 ‘반여성주의자’로 바꾸었다. ‘성욕’이나 ‘성’으로 오역된 ‘sexualité’는 ‘섹슈얼리티’로 옮겼고, 실존주의와 현상학 용어인 mauvaise foi와 intentionnalité는 ‘자기기만’과 ‘지향성’으로 정정했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70년이 더 지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큰 울림과 영감을 선사하는 『제2의 성』은 오늘날 한국의 젊은 남녀 세대들에게도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되레 더욱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는 수많은 남녀 쟁점 앞에서 보부아르의 날카로운 분석과 방대한 연구 자료는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격한 공감과 뜨거운 위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을유문화사의 2021년판에서는 보부아르의 사상과 그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보부아르 연구자인 이정순 선생이 자세히 분석한 「해제」를 새롭게 추가했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생애와 페미니즘 활동, 그의 저작물과 사후 기념 국제학술대회 소식까지 「시몬 드 보부아르 연보」에 꼼꼼하게 정리했다. 또한 오늘날 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으로 옮긴이의 설명을 친절하게 달았고, 곁에 두고 오래 읽을 수 있도록 사철제본과 PUR제본을 혼합하는 등 편집 및 디자인, 제본 방식 등 외형에도 신경을 써서 아름답고 단단하게 변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