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년 동안 여름을 기다리던 행성,
화성을 사랑한 과학자의 아름다운 고백
이 책은 NASA의 화성 탐사 계획에 실제로 참여했던 저자가 화성을 사랑한 다른 이들과의 연대 속에 자신의 삶을 녹여 써 내려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화성에 관심을 갖고 천문학 분야에 투신한 여성 과학자의 인생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NASA 연구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이야기하며, 그와 동시에 천체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찰하던 갈릴레이부터 화성 탐사선인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의 활동까지 이어지는 화성 탐사의 연대기를 서술한다. 한 사람의 일대기와 화성 탐사의 역사가 나란히 병치해서 진행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한 행성의 탐사에 얽힌 역사와 그 탐사에 참여한 한 인간의 삶을 자연스럽게 겹쳐 바라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저자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묘사가 빛을 발한다.
저자는 대학생 때 화산 탐사를 갔다가 그곳 바위 밑에서 자라던 작은 양치식물의 덩굴손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다.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못할 것 같은 황량한 화산 지대에서 작고 연약하지만 강렬한 녹색 빛을 띠며 꿋꿋하게 살아남아 있던 이 작은 생명은 저자를 어린 시절 자신과 언니의 비밀 아지트였던 숲으로 데려간다. 저자는 푸르른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복잡한 패턴의 잎사귀를 가진 양치식물이 가득했던 그곳의 아름다운 정경을 떠올리고, 뚜렷한 이유는 댈 수 없지만 그 순간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힌다.
또한 그녀는 사막에서 홀로 밤을 보내던 날에는 갈릴레이와 초기 천문학자들이 틀림없이 느꼈을, 컴퓨터 시대에는 잃어버린 감정도 느낀다. 당시 행성 과학은 아마추어의 영역이었고, 우주 시대가 열리기 전 천문학에 발을 들인 모든 사람은 밤하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 초기 행성학자들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깨어 있던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생각과 과학 말고는 함께하는 것 없이 홀로 거대한 물리적 세계에 뒤덮여 있던 존재들이었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그들은 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의 오직 한 점만을 계속 바라보았던 것이다.
오늘날 탐사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화성의 기후가 어떤지, 지형지물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실내에서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화성이 지닌 신비로운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지구와 반대로 화성의 하늘이 노을 색깔로 물들어 있고, 노을은 지구의 하늘 색깔을 연상시키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대 뱃사람을 유혹했던 사이렌처럼 화성이 자신을 끊임없이 부르고 있다고 고백한다.
NASA의 여성 과학자가 에세이처럼 풀어 쓴
화성에 관한 탐구와 도전의 일대기
저자는 우주 시대 태동기부터 시작된 인류의 화성을 향한 탐구와 도전을 흥미로운 일화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지구와 가까운 행성인 화성은 오래전부터 인류가 관찰해 오며 상상을 펼치던 공간이었다. 지금 우리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화성이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영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는 화성의 특이한 운동 때문이다. 과거 사람들은 매일 밤 다른 별들과 비교해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던 화성이 2~3년에 10주 정도씩은 갑자기 뒤로 돌아 황도 12궁과 반대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정상적’인 코스로 돌아오기까지 약 6~8일 동안 서쪽으로 이동하는 등 다른 별과 달리 자유롭게 움직여 일종의 ‘방황’을 한다고 여겼다.
천체 망원경이 개발되면서 화성은 인류에 한층 더 가까운 장소가 된 동시에 더욱 신비로운 무대가 되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조반니 스키아파렐리가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측하던 중에 기하학적인 선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퍼시벌 로엘은 이 ‘운하’를 인공적인 구조물로 주장하고 세상에 널리 알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관측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공적인 운하나 화성인에 대한 가능성은 사라져 갔다.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화성에서 생명체를 찾는 도전 대상은 커다란 정주 동물이 아닌, 작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바뀌었다. 지구상에서도 도저히 생명체가 살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 여러 미생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가운데 하나인 칼 세이건은 기자들에게 화성 탐사선이 생명체를 찾지 못해 실패하는 동안에도 화성의 생명이 착륙선 외장에 도장된 지르코늄을 남몰래 아작아작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생명체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화성은 인류의 정주 가능성이 가장 높은 행성 가운데 하나다. 그러다 보니 강대국들은 너나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화성 탐사에 뛰어 들었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경쟁을 벌였던 소련의 흐루쇼프는 화성을 향한 자신의 야심 찬 우주 탐사 프로젝트가 멋진 성과를 보여 줄 것으로 기대했다가 실패하자 UN 회의장에서 서성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화가 나서 신발을 벗어 다른 회원국 사절을 향해 휘둘렀다는 뒷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오늘날에도 화성은 ‘스페이스 X’의 화성 탐사 계획이나 미국과 중국 등 여러 강대국이 탐사선을 보내 연구하는 행성으로 끊임없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화성은 우리에게 여전히 도전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장소다. 하지만 이런 거시적 관점에서만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화성을 사랑한 저자의 이야기가 조곤조곤 담겨 있는 이 책은 저 붉은 행성이 여전히 우리에게 상상과 동경의 장소로 남아 있음을 일깨운다.
※ 일러두기
화성은 별이 아닌 행성으로 지칭해야 하지만, 이 책이 지닌 에세이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제목에 한해서 문학적 표현인 ‘별’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