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음악의 흐름을 뒤집은 혁명가이자
잊히지 않기 위해 평생 몸부림쳤던 한 인간
노벨상 재단은 매해가 끝날 무렵 한해를 마무리하는 공연을 연다. 2020년에 펼쳐진 기념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였다. 주최측은 고전주의 최고의 피아노 협주곡에 맞먹는 20세기의 혁명적인 성과로 《불새》를 선택해 새롭게 태어나는 미래를 묘사한 것이다. 그만큼 스트라빈스키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작곡가다.
마침 2021년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타계한 지 50년째가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음반사와 악단이 그의 음악을 더욱 널리 알릴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스트라빈스키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중이다. 작곡된 지 오십 년에서 백 년이 지난 그의 음악이 지닌 신선한 충격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스트라빈스키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작곡가로 자리잡았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중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발레곡 《페트루시카》를 편곡한 피아노 소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 독주곡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트루시카》는 마찬가지로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낭만주의 음악과는 크게 다르다. 러시아의 전통을 접목시킨 《페트루시카》의 독특한 선율과 변칙적인 리듬감은 작곡된 지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이 당시 작곡된 발레곡 《봄의 제전》은 야성을 일깨우는 독특한 리듬과 그에 맞춰 펼쳐지는 화려한 안무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이 곡의 초연을 관람하던 드뷔시는 그 독창성에 압도당해 자신이 뒤처졌다는 자괴감에 빠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 스트라빈스키는 겨우 서른 살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달아 작곡한 《불새》와 《페트루시카》와 《봄의 제전》으로 음악계에 혁명을 일으킨 뒤에도 반세기 넘게 작곡을 계속했고, 당대 문화계의 중심에 있었으며, 수없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천재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존경과 부를 누렸다.
스트라빈스키가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곡 외에 다른 능력도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작곡 방식을 고수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타일을 바꾸었고, 음악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스스로 계보도를 작성해 홍보했다. 또한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는 금방 손을 잡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냉정하게 인연을 끊었다. 그는 상대가 아무리 유명하거나 위대하다 해도 미련을 갖지 않았고, 반대로 상대가 아무리 애처롭다 해도 동정을 베풀지 않았다. 스트라빈스키는 명성이 무언가의(예컨대 ‘천재성’의) 대가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설의 무용수 니진스키나 천재 시인 딜런 토머스처럼 덧없이 스러진 천재들을 누구보다 많이 보아 왔던 그에게, 삶이란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상대 중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성과를 이룬 과거의 자신도 포함돼 있었다.
국적, 고향, 심지어 자신의 예술 스타일까지
어떤 것에도 미련을 갖지 않았던 방랑자
스트라빈스키의 삶은 끝없는 여정이었다. 이 여정에는 두 가지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욕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결이었다.
무명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던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최고의 흥행사인 댜길레프에게 발탁되면서 파리로 활동지를 옮겼다. 그곳에 도착한 그에게 길에서 처음으로 말을 건 사람은 무려 ‘앙팡 테리블’ 장 콕토였다. 이처럼 당시의 파리는 역사에 남을 예술가들이 드글대는 곳이었다. 드뷔시와 라벨은 그곳에서 프랑스 음악 최고의 순간을 갱신했고, 피카소와 마티스는 서로 끝없이 부딪히며 미술의 한계를 확장했으며, 코코 샤넬은 혼자서 여성 패션의 개념 자체를 뒤집고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예술’의 영향을 받았고, 이를 통해 러시아에 뿌리를 둔(그리고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 준) 자신의 원시주의 음악에서 벗어나 다음 시기로 나아갔다.
결국 그는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었다. 프랑스가 자신의 예술을 더 잘 이해해 주기도 했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고국에 남겨 둔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참화를 피해 스위스로 건너간 그는 20세기 중반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국적을 옮겼다. 전쟁 이후 경제와 문화 양면에서 급성장한 미국이 클래식 음악 산업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역사의 흐름은 늘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어 냈고, 스트라빈스키는 그곳을 찾아가 새로운 집으로 삼았다. 세계 대전으로 인해 망명한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스트라빈스키에게 고향은 별 의미가 없었다. 수많은 우정도, 지나간 영광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신의 작곡 스타일까지 변화시켰다. 그는 더 좋은 결과물만 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차용했으며, 그중에는 음렬주의처럼 과거의 자신이 싫어했던 스타일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지나간 것이라면 자기 자신조차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이어질 명성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스트라빈스키의 삶과 유산을 다루는
국내 최고의 전기
국내에서 손꼽히는 클래식 음악 전문가인 저자는 이처럼 독특한 열성을 지닌 스트라빈스키의 생애를 착실히 묘사한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이 출간된 뒤에 새로이 발견한 사실과 논쟁을 추가했다. 저자는 인기 소설가인 줄리언 반스가 쓴 소설 『시대의 소음』이 쇼스타코비치를 영웅화하기 위해 스트라빈스키를 폄하했음을 지적하며,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는 최신 스트라빈스키 공연 영상들을 선별해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화가 샤갈과 스트라빈스키의 공통점을 다룬 부분처럼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저자 특유의 통찰도 인상적이다. 착실한 전기적 요소와 음악 전문가의 통찰력을 겸비한 이 책을 통해 독자는 21세기 들어 더욱 빛을 발하는 스트라빈스키의 진면목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