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영화, 스타일로 대중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보헤미안 같은 사랑의 여정
프랑스가 사랑한 천재 작곡가이자 샹송의 대부, 세르주 갱스부르와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 제인 버킨.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청년들의 자유와 해방의 아이콘이었던 갱스부르-버킨의 사랑을 조명한 이 책은 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부모이기도 한, 그 유명한 연인의 삶과 예술을 다루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내밀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된 바 없었던 세르주 갱스부르의 삶을 제인 버킨과의 관계 속에서 깊이 있게 다룬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몽드』 출신 기자이자 대중음악 칼럼니스트인 저자 베로니크 모르테뉴는 이들의 만남부터 헤어짐 그리고 그 이후까지,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터뷰와 증언, 기록들을 통해 이들이 겪어 낸 사랑의 숨겨진 면면들을 생생히 드러낸다.
작곡자와 해석자의 만남, 이토록 아름다운 커플
“갱스부르는 우리의 보들레르이며, 우리의 아폴리네르입니다.
그는 음악의 위상을 예술의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미테랑 前 프랑스 대통령)
1969년 2월, 갱스부르와 버킨이 협업한 싱글 앨범 《Je t’aime... moi non plus(사랑해… 아니, 난)》이 발표되었을 때, 영국 BBC 방송과 바티칸에서는 이 노래의 방송금지 처분을 내렸고, 이 노래를 발매한 음반사 필립스의 조르주 마이어스타인 메그레 사장은 수갑을 차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수록된 정식 앨범 《제인 버킨/세르주 갱스부르》는 1986년까지 400만 장이 팔리는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도발적인 블루스는 1968년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이후 만들어 낸 첫 곡으로, 관능적이고 실험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프렌치 팝의 명곡이 되었다.
갱스부르는 버킨과 함께했던 시기에 《제인 버킨/세르주 갱스부르》, 《멜로디 넬슨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콜라보 앨범 외에도 《디두다》, 《롤리타 고 홈》, 《베이비 홀로 바빌론에서》 등 제인 버킨만을 위한 단독 앨범들을 다수 작곡해 주었다. “이 앨범들을 통해 세르주는 그가 가진 여성성을 내가 대신 노래하게 했던 거예요”라고 했던 버킨의 말대로, 그녀는 갱스부르의 숨겨진 ‘여성성’을 그녀의 목소리로 구현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의 대중에게도 갱스부르의 존재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 2017년, 버킨은 갱스부르와 헤어진 지 37년 만에 그의 곡들을 재편곡한 앨범 《버킨/갱스부르: 심포니》를 발매함으로써, 갱스부르와의 변함없는 우정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이러한 이들의 관계에 대해, 갱스부르가 작곡한 또 다른 명곡 <라 자바네즈>를 부른 쥘리에트 그레코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작곡가와 해석자의 만남, 이토록 아름다운 커플을 우리는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갱스부르와 버킨이 함께한 사랑과 욕망의 소용돌이
“사랑은 캘리그래피 예술 같은 것”
갱스부르는 버킨과 함께 음악 작업뿐 아니라 영화 작업도 함께하였는데, 그중 세계적인 성공을 기록한 노래 <사랑해… 아니, 난>과 동명 제목의 영화를 1976년에 직접 제작‧연출하여, 이들이 지향했던 사랑의 형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갱스부르는 “사랑은 굵기, 가늘기, 육체를 지닌 문자와도 같아서 서로를 어루만지고 날을 세우며 부딪치기도 한다. 저항하고 두들겨 패고 할퀴었다가도 어느새 누그러져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갱스부르-버킨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프랑스 개봉 당시 평단의 혹평과 흥행 참패라는 결과를 맞았으나, 프랑수아 트뤼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프랑스 영화사에 남겨질 작품”이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대의 도덕성과 상투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갱스부르-버킨
“가벼운 충격을 주려고 쓴 노래가 아니에요. 혁명이었죠”
알코올 중독, 독설, 근친상간, 변태, 스캔들 메이커 같은 갱스부르의 파격적인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이 책은 갱스부르가 스스로 우울하고 괴팍한 ‘갱스바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활동했던 시기에 이 또 다른 자아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추적하면서, 제인 버킨이 그런 그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살핀다. 그 과정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어두운 사랑의 미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여정을 좇으며 이들이 느꼈던 환희와 증오 그리고 경탄과 경멸 사이를 오가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진정으로 주목하는 것은 갱스부르가 괴팍한 갱스바르로 변모하기 전, 버킨과 함께 서로의 최고의 모습을 공유하며 이루어 낸 눈부신 순간들이다.
“제인과 세르주가 서로에게 자석처럼 이끌린 이유는 당시의 시대적 코드를 거스르며 도덕적인 것과 상투적인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되, 깃발을 들며 선동에 나서지 않고 지극히 가벼운 방법으로 실천한다는 공통점 때문일지도 모른다.”(본문 126쪽)
즉, 갱스부르는 버킨을 만나고부터 사회적 굴레로부터 그들 자신을 해방시키고 대중들을 도덕적 상투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가능성과 영감을 얻은 셈이었다. 그 일환으로 1971년에 갱스부르는 버킨과의 함께 <라 데카당스>를 발표하였고, 이 노래를 두고 버킨은 “그야말로 관능, 에로티시즘의 극단이었다”고 말하며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 평하기도 했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퇴폐와 예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갱스부르-버킨의 합작품으로 남아 있다.
연인, 상대의 그림자를 지고 가다가 빛을 쬐어주는 사람
“그는 저에게 평생 친구였고, 그는 영원할 것입니다”(제인 버킨)
“제인 버킨은 세상을 돌며 그가 남기고 간 노래를 부르며, 프랑스 대중음악계에 남은 그의 공적과 이름을 끝없이 환기시키고 있다. 제인 덕분에 세르주의 삶과 음악은 오늘도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로 탄생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왜 이 두 사람을 두고 영혼의 연인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역자 후기’ 중)
파리의 밤을 수놓았던 뮤즈, 버킨과 갱스부르. 서로가 서로에게 선과 악이자 흑과 백 그리고 앞과 뒤가 되어 서로의 그림자를 비춰 주는 빛이 되었던 두 사람. 버킨-갱스부르의 이야기는 사랑과 혁명, 성적 해방과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 반전 운동, 샴페인과 보드카, 블러디 메리 칵테일, 스윙잉 런던, 트위기, 롤링 스톤스, 비틀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제임스 딘, 알랭 드롱,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즈 사강, 브리지트 바르도 등 프랑스를 휩쓸었던 대중문화의 구석구석까지 한 시대의 뜨거웠던 열기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