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_101
망자들
DIE TOTEN
헤르만 헤세 문학상, 스위스 도서상 수상작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최신작
★국내 초역
“동시대의 세계 문학이 낳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소설”
- 펠릭스 슈테판(비평가)
『망자들』은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예술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여러 의미에서 이미 죽은 적이 있는 자, 즉 ‘망자들’의 여정을 기묘하고 환상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크라흐트는 1930년대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독일과 일본을 오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무대 위에 신선하게 펼쳐 보이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특별한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소설은 1930년대, 비가 쏟아지는 도쿄에서 잘못을 저지른 한 일본 장교가 할복자살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교는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고, 붉은 선혈이 방을 가로지른다. 방 한구석의 구멍 뒤에서는 카메라가 돌아가며 그 장면을 촬영한다. 카메라로 촬영된 실제 죽음은 영화가 된다. 이렇듯 첫 대목에서 등장하는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을 담은 영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죽음’과 ‘예술’은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요한 모티프다. 소설의 주인공인 에밀 네겔리는 몇몇 작품에서 실패하긴 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스위스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독일과 일본의 영화 합작 사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네겔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인 고위 관료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일본으로 올 영화감독을 기다리는 와중에 네겔리의 애인인 이다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 세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처럼 『망자들』은 찰리 채플린의 일본 여행과 1930년대에 추진된 영화 합작 사업 등 실제 역사적 사건들과 사회이론가인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영화비평가인 로테 아이스너 등의 역사적 인물들을 곳곳에 등장시키며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는 허구와 실재의 간극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냄으로써 우리 뇌리에 인상 깊은 몽타주를 완성한다.
삶과 죽음의 장벽을 넘나드는 특별한 이들의 여정
『망자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죽은 자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살아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망자들은 단순히 죽은 사람들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직 죽지 않은 자, 앞으로 죽을 자라면, 이 소설의 망자들은 여러 의미에서 이미 죽은 적이 있는 자들로, 죽음을 앞에 둔 것이 아니라 뒤에 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윤회한다. 다만 이들의 윤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생명의 보편적 운명이 아니다. 크라흐트의 세계에서는 특별한 인간만이 윤회의 길을 걷고 이로 인해 그들은 ‘망자’라고 불린다. 윤회는 죽음을 겪은 뒤에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윤회하는 망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장벽을 넘은 자’다. 그들은 하나의 삶과 다른 삶 사이의 세계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다. 이 특별한 존재들은 소설 속에서 시간의 바깥에 놓인 세계를 방문하기도 하고, 작가의 세계를 침범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여러 차원을 가뿐하게 위반하는, 전혀 새로운 소설의 주인공이 탄생한다.
이처럼 독특한 인물뿐만 아니라 영화적 시선이 엿보인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네겔리의 카메라는 늘 그와 함께하며 그의 주변을 기록한다. 원래 카메라는 렌즈 같은 광학 장치를 통해 오직 물리적 실재 이미지만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네겔리의 카메라는 가시적 현실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일반적인 카메라가 아니다. 그가 보여 주는 카메라 시선은 현실을 고스란히 비추어 주는 거울처럼 투명하지 않다. 오히려 잡다한 물질적 현실을 순수하게 변모시킬 수 있는 시선, 그러한 변용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주어진 현실 너머의 차원을 포착할 수 있는 시선이다. 네겔리는 이렇게 창출된 간극에서 존재의 숨어 있는 근원적인 차원을 끌어낸다.
현실을 비껴간 사람들의 이야기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소설의 정점
소설 속의 망자에게 이 세상은 고향이 아니다. 망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다니는 존재이며 자신이 살아 있는 곳에서 언제나 방랑자의 자리에 있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 발을 반쯤만 걸친다. 현실에서 망자와 가장 유사한 대상이 바로 예술가다. 따라서 이 소설의 제목인 ‘망자들’은 예술가의 다른 이름이다. 예술가는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하면서도, 현실을 비껴가는 존재들이다. 그러한 비껴감 덕택에 예술가는 현실을 뛰어넘는 고유한 예술적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다만 예술적 창조를 위해 어느 정도의 무심함과 무책임이 허용될 수 있는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예술적 천재라는 관념이 오늘날에도 용인될 수 있는지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점점 더 문학과 현실 윤리의 구별이 어려워져 가는 오늘날 문학적 전위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것은 현실의 재현보다는 새로운 소설적 표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가 크라흐트에게 되돌려질 질문이다. 저자는 『망자들』을 통해 이러한 새로운 소설적 표현의 정점이 무엇인지를 답하고 있다.
줄거리
1930년대, 주인공 에밀 네겔리는 최근의 몇몇 작품에서 실패하긴 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스위스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독일과 일본의 영화 합작 사업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영화사의 제안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그는 영화 합작 사업을 추진하는 일본의 고위 관료 아마카스 마사히코를 만난다. 마사히코는 네겔리를 기다리는 와중에 일본에 있는 네겔리의 애인인 이다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 세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저자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1966년 스위스 자넨에서 태어나 스위스,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성장했다. 미국의 세라로런스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독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템포(Tempo)』의 편집자로 지내다가 1990년대 중반 『슈피겔(Spiegel)』의 인도 통신원이 되면서 방콕에 거주하며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했다. 이때의 여행기를 『벨트암존탁(Welt am Sonntag)』에 기고했다. 1995년 첫 소설 『파저란트(Faserland)』를 출간했으며 이후 『1979』, 『메탄(Metan)』,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Ich Werde Hier Sein Im Sonnenschein und Im Schatten)』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2012년에 발표한 소설 『제국(Imperium)』으로 그해 빌헬름 라베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영화 <핀스터월드(Finsterworld)> 시나리오로 독일 영화평론가상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 출간한 소설 『망자들』은 여러 평론가의 호평을 받으며 스위스 도서상, 헤르만 헤세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자
김태환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대학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푸른 장미를 찾아서?혼돈의 미학』, 『문학의 질서?현대 문학이론의 문제들』, 『미로의 구조?카프카 소설에서의 자아와 타자』 등이, 옮긴 책으로 페터 V. 지마의 『모던/포스트모던』, 한병철의 『피로사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선고 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