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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308쪽, 140*205, 15,000원

2020년 02월 20일

ISBN. 978-89-324-7421-2

이 도서의 판매처

 


 

 

벽은 하나로 연속되어 있는 세계를

이쪽저쪽으로 나눈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인류 건축사의 대업으로 손꼽히는 만리장성이나 로마 석축 기술의 집약체인 하드리아누스 장벽 같은 고대의 벽부터 오늘날의 난민 장벽이나 가상의 공간에 세워진 사이버 장벽까지, 인류는 줄기차게 벽을 쌓고 또 무너뜨리면서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왔다. 이 책은 2010년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수상자인 함규진이 세계사의 물결을 가른 열두 장벽의 이야기를 통해 벽의 이쪽저쪽을 조망하고, 더 나아가 벽이 만들어 낸 거대한 이분법을 넘어 독자로 하여금 더 깊고 넓게 역사를 사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리 눈앞에 우뚝 선 물리적 실체이자 심리적 장막인 벽의 세계를 탐험한 독자들은 책장을 덮을 때 끝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쌓아 올릴 것인가? 아니면 무너뜨릴 것인가?” 우리가 비로소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할 때 역사의 작은 흐름을 바꿔 나갈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때로는 숭고할 정도로 감동적이고

때로는 역겨울 정도로 파렴치한 벽의 세계사

 

바리케이드가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세기 프랑스의 파리코뮌 투쟁이다. 파리코뮌의 바리케이드는 권력자가 피지배자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치는 장벽이 아니라, 학대받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기댔던 장벽이다. 민중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장벽이 끝내 무너질 때까지 목숨을 바쳐 저항했다. 물론 그들 안에도 인간의 나약한 본성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역사에서 숭고함을 느낄 정도로 감동적인 면모를 본다. 또 동로마제국의 굳건한 방패였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지키던 시민들도 위대한 희생과 저항의 역사를 써 나갔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삼중으로 마련된 튼튼한 물리적 장벽이기도 했지만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던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의 의지이기도 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비록 오스만제국의 공세에 결국 무너졌지만 동로마 천 년 제국의 신화를 지키던 위대한 방패였다. 이렇듯 벽의 역사는 때때로 우리에게 믿기지 않는 감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런 역사보다는 부정적으로 기억될 벽의 역사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벽은 저항과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 ‘우리그들을 가르는 가장 확실하고 폭력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의 만행으로 끊임없는 박해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은 끝내 폴란드의 바르샤바 게토를 비롯한 여러 개의 게토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 게토에서 근근이 목숨을 이어 나갔고, 게토에서 지내다 홀로코스트 열차에 탑승하고 만 유대인도 그 수를 셀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간직한 유대인은 21세기에 들어 자신들이 당한 바를 그대로 실천하기에 이른다.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자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 그 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분리 장벽 속에 가두고 말았다. 나치의 만행을 그대로 베낀 듯한 이들의 행동은 지금도 끔찍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렇듯 돌고 도는 벽의 역사는 우리에게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적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벽은 역사를 이해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편이다. 실제로 벽을 구성하는 것은 재료인 흙이나 벽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정치적, 문화적 배경과 그것과 한데 어우러진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세계를 둘로 나누지만

결국 두 세계를 모두 사로잡는 벽의 아이러니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벽들을 세웠다가 무너뜨리곤 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과 학살, 저항과 희생, 두려움과 배제의 역사 속에는 이러한 벽들의 존재가 아로새겨져 있다. 벽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뚜렷한 심리적 장막, 더 나아가 상흔을 만들어 낸다.

가령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버린 군사분계선이 끼치는 보이지 않는 피해는 바로 냉전 문화다. ‘열전과 달리 냉전 중에는 당장 적과의 피 튀기는 싸움이 없다. 대신 평화로운 듯한 일상에는 언제나 불안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으며, 그런 불안과 공포는 내부의 적을 찾아 헤매게 한다. 그래서 조금만 다르틀리다며 빨갱이나 적폐라고 서로를 헐뜯는다. 오랫동안 북풍에 적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존립해 온 권위주의 세력이나 민주화 운동 진영 모두 이런 냉전 문화에 젖어 있다. 늘 긴장이 깔려 있지만 겉보기로는 평온이 지속되는 냉전의 장벽은 이렇듯 아군을 분열시킨다. ‘남남 갈등’, ‘보혁 대립’, ‘남혐 여혐이 모두 군사분계선과 이를 둘러싼 비무장지대 248킬로미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벽은 우리를 영원히 이분법의 속박에 갇히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벽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역사적 상황에서 널리 통용되어 오던 이분법을 넘어 또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벽에 가로막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을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손끝에 달려 있음을 이 책은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열두 장벽으로

역사를 조망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사람은 장벽을 쌓기 시작하고는 고대부터 인류가 쌓아 올린 장벽 이야기를 다룬다. 수수께끼의 대장벽인 만리장성’,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었던 하드리아누스 장벽’, 공동체를 지키는 시민의 위대한 힘을 보여 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등장한다.

2근대의 장벽, 분리와 결속의 이름으로에서는 근대 시기, 인간과 자연을 갈라 버린 대표적 장벽인 오스트레일리아 토끼 장벽과 신념을 위한 투쟁과 희생의 역사로 영원히 기억될 파리코뮌 장벽을 살펴본다.

3세계 대전과 냉전, 둘로 쪼개진 세상에서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분법의 산물인 장벽들을 살펴본다. 전쟁에서 방어라는 전략만 고수했던 대표적 예인 프랑스의 마지노선’,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과 배제의 실체인 게토 장벽’, 동독과 서독을 가로지르며 냉전의 상징물이 된 베를린 장벽’, 한반도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며 두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한반도 군사분계선을 다루고 있다.

4무너진 마음, 견고한 장벽이 되다에서는 혐오와 배제가 상수가 되어 버린 현대에 꿋꿋이 버티고 있는 장벽들을 살펴본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 쌓아 올린 21세기판 게토인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세워지고 있는 난민 장벽’, 물리적 세계를 넘어 가상 세계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사이버 장벽을 다룬다.

또한 이외에도 고르간 장벽, 세르비우스 성벽, 딩고 장벽, 키예프 유로마이단 바리케이드, 대서양 장벽, 페루 리마 장벽, 무역 장벽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장벽 이야기가 책장 굽이굽이에 펼쳐져 있다.

 

 

 

 

 

 

저자

함규진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고 정치외교학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왕의 밥상』, 『왕이 못 된 세자들』,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다시 쓰는 간신 열전』, 『역사법정』, 『세상을 움직인 명문vs명문』이 있고, 논문에는 「예의 정치적 의미」, 「유교 문화와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 「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 등이 있다.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록펠러 가의 사람들』, 『마키아벨리』, 『팔레스타인』, 『죽음의 밥상』, 『유동하는 공포』 등 번역서도 다수 있다. KBS <월드투데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JTBC <썰전> 등에 역사와 시사에 관한 패널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