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영국의 영국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에는 왜 타국 문화재가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을까?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시장국은 문화재를 훔쳐간 것에 대해 사과는커녕 소유권까지 주장하는 걸까? 거기에 되레 자신들 덕분에 문화재가 보존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재는 과거의 유물로서뿐 아니라 한 국가와 민족의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구축하는 시각적 물질 유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제국의 시대가 끝난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과거 열강과 문화재를 빼앗긴 국가 사이에 문화재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집트·그리스·에티오피아·이란·인도·한국 같은 원산국(country of origin, 문화재의 원소유국)은 문화재 반환을 통해 아픔의 역사를 딛고 위대한 문명을 탄생시킨 뿌리 깊은 민족으로서 국가의 재건에 노력하는 한편,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과 같은 시장국(market country, 과거 제국으로 현재 약탈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으며, 유물 구매력·자본을 가진 국가)은 자신들의 약탈사(史)를 인정하지 않고 문화재에 대한 소유권의 정당함을 주장하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도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의 당사국으로서 오랫동안 이 문제에 참여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약탈 문화재가 국내로 반환된 사례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이유가 무얼까? 문화재 반환 논쟁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단지 빼앗기고 빼앗은 문제가 아닌 역사적 배경·사회적 의미·경제적 가치가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논의도 모두 문화재의 역사로 수합되고 있으니, 역사적 기원을 모르고 문화재 문제를 논하는 것은 기초 공사 없이 건물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문제가 왜 발생하였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세계사에 숨겨진 문화재 약탈의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강국의 논리를 세밀하게 파헤치다
이 책은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이 맞다 틀리다 하는 이분법적 구도나 감정적 호소가 아닌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에게 놓인 반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원산국의 약점과 시장국의 논리적 허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시장국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법률적·역사적·국제사회적·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재를 어떻게 향유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모색했다.
제1부에서는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살펴본다. 역사적 사례를 다양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서구 열강의 해외 문화재 수집 행위가 명백한 약탈이었음을 밝히고, 이 시기에 행해진 수집의 역사를 서구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의 연관 관계 속에서 재구성한다. 이 책은 약탈국에 대한 논의의 범위를 영국으로 한정한다. 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문화재 약탈 양상의 시대적 변화와 각각의 사례를 보다 심도 있게 고찰하기 위해서다. 영국은 과거 어떤 열강보다도 많은 식민지를 보유했던 만큼 오늘날에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해외 문화재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문화재 반환 문제와 얽혀 있다.
제2부에서는 제국 시대 이후를 이야기한다. 영국을 중심으로 오늘날 열강은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영국이 1945년 이후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로부터 제기된 문화재 반환 요청에 실제로 어떻게 대응했으며, 어떤 근거로 반환을 거부해 왔는지 검토한다. 특히 영국의 대응과 거부의 근거를 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특정 시기에 작성된 영국의 정부 문서를 제시한다. 저자는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영국외무연방부 문서와 영국도서관 등에서 조사한 자료를 인용한다. 외무부 자료는 대개 1970년대에서 1980년대의 것인데, 이는 국가정보 보호 절차에 따라 25~30년이 지난 후에야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살펴본 자료는 대개 2000년대 중후반에 일반에 공개된 것으로, 영국의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에 기초하여 실제로 영국이 내세운 근거와 거기에 내재된 반환 불가의 담론을 명확히 추출해 낸다. 또한 19~20세기 초 영국의 신문기사를 분석하여 당대 영국인들의 문화재에 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영국의 눈에 비친 동양 문명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촉구하고 문화재의 불법 거래를 금지하기 위해 유네스코를 주축으로 몇몇 주요 국제 협약들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반환 문제들이 국제법을 통해 해결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리가 아닌 역사적·도덕적 차원에서도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합의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기존의 법률이나 이념적 차이에 대한 인식을 넘어 문제의 역사적 근원이 현실적 쟁점과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지 분석했다.
약탈 문화재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
색다른 문제 제기와 현실적 해결책을 모색하다
명확한 역사적 사실과 그에 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재 반환 문제의 포괄적 이해는 문화재의 소유를 정당화하려는 시장국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반환을 주장하는 원산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협상 요소다. 맹목적 민족주의를 고운 시선으로만 보지 않는 요즘, 열강에 의해 문화재를 수탈당한 약소국으로서의 역사적 경험과 피해자라는 도덕적 우위만을 근거로 한 문화민족주의적 주장으로는 다양한 쟁점이 중첩된 문화재 반환 문제를 더는 유리하게 끌어갈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시장국은 복잡한 역사 관계 속에서 오늘날 문화재의 원소유주가 여러 국가로 나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화재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서 최선의 환경과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문화재를 원소재지로 복귀시키는 것보다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전시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볼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순수하게 선의만을 근거로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화재 반환을 원하는 원산국은 약소국에 주어지기 마련인 단순한 동정론에 머무르지 말고, 소유권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오로지 원산국에 반환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처럼 식민 지배와 수탈의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민은 빼앗긴 문화재를 돌려받는다는 것이 도덕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당연하며, 반환하지 않는 시장국이 나쁘고 옳지 못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반환하지 않는 국가는 옳지 않고, 반환받으려는 국가는 정의로움을 대변하고 있다는 식의 이분법적 구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문화재 반환의 어려움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 주려 했다. 무조건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 왜 반환받아야 하는지, 반환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
저자
김경민
연세대학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고, 동(同) 대학원에서 「제국주의와 고고학: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영국의 문화재 약탈과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고찰, 1790~1980」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고, 네이버캐스트의 ‘인물과 역사’에 다수의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해군사관학교에서 문화사와 전쟁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저서로 『세상을 바꾼 질문들』(2015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당선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