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묵자(墨子)』는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이 책은 『묵자』 교감본(校勘本)과 백화번역본(白話飜譯本) 등 지금까지 출간된 여러 판본을 비교·대조하여 기존 원전에서 빠진 글자나 구문, 오자 등을 최대한 바로잡은 완역판이다. 또한 어려운 한자나 단어에 일일이 주석을 달았으며, 주석을 달지 않은 경우에는 문장 속에서 그 뜻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번역했다. 묵자의 사상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해제와 각 장의 내용을 소개하는 편장 개요도 실려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묵가는 춘추 전국 시대에 유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 철학 사상이었다. 『한비자』에서 “세상에 잘 알려진 학파는 유가와 묵가다.”라고 할 만큼 유행했지만 신분의 귀천과 계급을 무시하는 등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어서 지배층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춘추 전국 시대가 끝나고 한나라가 들어서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묵가에 비해 보수적인 색체를 띠었던 유가를 자신들의 정치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묵학은 유학보다 더 선진적이고 개혁적인 학파였지만 오늘날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묵가의 철학은 평화를 숭상하는 ‘겸애(兼愛)’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묵자』에는 그 외에도 ‘묵자 십론(十論)’이라 불리는 여러 사상이 담겨 있다. 신분보다는 능력 위주로 관리를 뽑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거나 백성의 이익에 배치되는 재화와 노동력의 소비는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견해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묵자』가 실천적 사상임을 일깨워 주는 내용들이다.
유가가 중국의 정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동아시아는 유학이 주요 학문이 되고 상대적으로 묵학은 연구하거나 배우는 학자가 드물었다. 하지만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서구 학문만 중시되는 분위기가 지속되자 실용적이면서도 개혁적인 내용을 담은 『묵자』가 중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상으로 재평가받았다. 청조 말기 중국을 선도하던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인 양계초(梁啓超)는 일찍이 묵자를 “작은 예수이자 다른 방면에서는 큰 마르크스”라 칭했으며 루쉰(鲁迅)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실천이지 말이 아니다. 그 실천이 『묵자』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묵가의 위상이 변모하면서 오늘날 묵학은 여러모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공평함을 중시하고 운명론을 배격하며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 묵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서구에서 주목받는 동양 철학 가운데 하나다.
유가보다 더 개혁적이고 현실적이었던
묵가 사상의 진면목을 만나다
많은 사람이 묵자 하면 전쟁에 반대하고 서로 사랑할 것을 주장하는 평화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로만 평가한다. 하지만 사실 묵자는 내로라하는 개혁주의자이자 실천주의자였다. 묵자 철학이 지닌 개혁적인 성향은 그가 『묵자』 「비유(非儒)」 편에서 유가가 중요시한 예악(禮樂)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사람을 미혹하는 것으로 비판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묵자가 보기에 이런 번거로운 예법은 백성들의 삶을 고단하게 할 뿐 실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허례허식이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묵자』 「절장(節葬)」에서 값비싼 장례 의식은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묵자는 망자를 지나치게 예우하는 것은 사회의 재화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너무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당시 통치자들은 무덤을 화려하게 하고 많은 부장품을 시신과 함께 묻었고 순장이라는 악습마저 남아 있었다. 묵자는 이를 비판하며 좀 더 민생을 돌보는 실용적인 시점으로 장례 문화를 간소화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불필요한 국가의 지출이나 낭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묵자』 「절용(節用)」 편에서도 잘 드러난다.
『묵자』 완역판에는 그동안 묵자 철학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내용들도 담겨 있다. 묵가 사상 중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것 가운데 하나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비공(非攻)’이다. 묵가 학파는 무조건 전쟁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묵자』에는 전쟁에 대한 묵가 학파만의 다소 독특한 견해가 담겨 있다. 묵자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범하거나 대국이 소국을 속이는 불의의 전쟁을 ‘공(攻)’이라 칭했는데, 이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끝없는 재난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에 결연히 반대했다. 반면 포학하고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군주에 대한 토벌 전쟁, 이를테면 탕왕(湯王)의 걸왕(傑王) 정벌이나 무왕(武王)의 주왕(紂王) 정벌은 궁극적으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공과는 달랐다. 이러한 전쟁을 묵자는 ‘주(誅)’라 부르며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즉, 묵자는 무조건 전쟁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에 어떤 실익을 끼치느냐를 면밀히 따져 사회 전체를 위해 필요한 전쟁이라면 반대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운명론을 부정하는 ‘비명(非命)’이나 묵자와 다른 인물 간의 대화를 기록한 ‘경주(耕柱)’처럼 이념이나 사상 논쟁뿐만 아니라, 성을 공격해 오는 적을 어떻게 물리쳐야 할지를 상세히 기록한, 일종의 지침서인 ‘비아부(備蛾傅)’에 이르기까지 묵가 사상의 다양한 면이 담겨 있다.
전통 있는 ‘을유사상고전’의 화려한 부활
단단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여러 판본을 비교 대조한 완역⦁묵자 편장 개요 수록
『묵자』는 ‘을유사상고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아직 『묵자』를 읽지 않은 젊은 독자층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시대 흐름에 맞게 쉽게 번역했으며, 친절한 해설과 더불어 여러 판본을 비교해 최대한 묵가의 사상을 오롯이 전하고자 노력했다.
을유문화사는 앞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삶에 빛이 되어 주는 사상 고전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집하고, 오랫동안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만큼 단단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하여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저자
묵자
역자
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