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석주가 그려 내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몽상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화두인 시대다.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에서 처음 쓰인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감정처럼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의미한다. 작금의 사람들은 공허한 행복이 아니라 손에 쥐고 실감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다.
시인 장석주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의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한여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시원한 수박을 꺼내 베어 무는 것. 입술과 혀를 적시고 목구멍으로 흘러가는 수박이 주는 행복으로 그는 무더위와 함께 찾아온 팍팍하고 밋밋한 시간을 건너간다. 이렇듯 어떤 행복은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작고 소소하지만, 우리 각자의 삶을 잘 살아 내게 하는 동력이 되어 준다. 그 기쁨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장석주는 눈 밝게 그 작은 조각을 발견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행복은 먹고, 걷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일상적인 행동을 아우른다. 그토록 사소한 행위가 삶을 ‘행복의 파랑’으로 물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자신만의 ‘행복의 기술’을 찾아 실행한다. 침묵하기, 걷기, 혼자 시간 보내기, 단순하게 살기, 비우기, 종이책 읽기 등 살며 터득해 온 방법을 되짚고,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펼쳐 놓음으로써 행복의 형상을 그려 나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묻는다.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은 늘 작고 단순한 것 속에 있다
행복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장석주는 자신이 겪었던 불행 또한 거리낌 없이 꺼내어 보여 준다. 사업이 무너지고, 교도소에 가고, 부모도 사랑도 잃고, 자식과 헤어지는 불행의 이야기가 도처에 숨 쉬고 있다. 그러나 그 불행 앞에는 필연적으로 행복이 존재했다. 사람들과 깊이 관계하며, 사업은 번창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축하를 받던 날들이 있었다. 이로써 독자는 알게 된다. 행복과 불행이 서로 끈끈하게 묶여 있다는 사실을. 행복과 불행은 서로를 전제로 하며, 멀리에서 다가올 서로의 예고편과도 같다는 사실을.
장석주가 가감 없이 써 내려간 자기 인생의 부침(浮沈)은 삶이 돌고 돌아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구심력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결국 인생은 일희일비의 연속이다. 행복과 불행 사이의 진자 운동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만 한다.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려 집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 아는 일이다. 행복이란 반드시 제 삶을 톺아보고 받아들이며 보듬는 시간, 자신만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그 답은 다름 아닌 지난날의 나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내밀하게 자신을 관찰하고 지켜봐 온 사람은 ‘나’뿐이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에게 행복을 묻자. 무엇이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지 꼽아 보자. 어쩌면 당신은 이미 작디작은 행복의 조각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불행을 딛고, 내일의 행복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제 당신은 행복을 마주하기 위해 고개만 들면 된다.
“이 여름이 시간의 소실점 저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행복은 하모니카 연주와 찐 옥수수와 면 셔츠를 좋아하는 이들의 것!”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행복은 바로 계절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장석주는 유독 계절의 변화에 예민한 감각을 품고 산다. 계절을 잘 아는 일은 곧 행복해지는 일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이 만들어 둔 소리와 냄새, 모양과 색깔, 질감과 온도 그 모든 것에 오감을 연다. 계절의 섭리를 따른다.
여름이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옥수수를 쪄 먹고, 가을이면 노랗게 잘 익은 모과가 나무에서 떨어져 구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겨울이면 칼바람 부는 눈길을 산책하며, 봄이면 제 손으로 심은 모란과 작약에 움이 트는 것을 관찰한다. 그리고 다시, 여름을 건너가기 위해 차디찬 수박과 과즙이 넘치는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다. 그때 불행은 잠시 저 먼 곳으로 모습을 감추고, 행복은 마침내 발견된다. 삶은 거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저자
장석주
시인,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
서재와 정원 그리고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며 햇빛과 의자를, 대숲과 바람을, 고전과 음악을, 침묵과 고요를 사랑한다. 스무 살에 문단에 나온 이후 출판 기획 편집, 대학 강의, 방송 진행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파주에 살면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지내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부침의 시간을 견디며 응축해 온 행복에 대한 경험과 시선을 그러모아 이 책을 엮었다. 행복은 사소한 것 속에서 느끼고 향유하는 능력에 깃드는 무엇이라 믿는다.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오랫동안』, 『몽해항로』 등의 시집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철학자의 사물들』, 『마흔의 서재』,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의 산문집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