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흔히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가의 대명사로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행태를 ‘마키아벨리즘’이라고 규정하는 등 ‘마키아벨리’와 연관시켜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정치사상가로 만든 그의 대표작 『군주론』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이 ‘군주란 불가피한 경우에 권모술수와 악행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권고하는 등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이 역설적으로 『군주론』을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개척한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책은 철저히 현실에 입각한 관계의 전형을 보여 주며, 권력을 둘러싼 투쟁의 속성을 꿰뚫고 있고, 여기에 개입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본성을 냉철하게 분석해 냄으로써 정치철학의 명저(名著)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군주론』은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가에 헌정된 책이다. 애당초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올리려 했으나,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1513년 신성 로마 제국의 행정관이 되어 피렌체를 떠났기 때문에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봉정하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로 분열된 채 이웃 국가의 침략에 시달렸는데, 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었던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이탈리아가 하나로 통일되어 외세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으며 탁월한 군주가 나타나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총 26개의 장으로 구성된 『군주론』에서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역사적 사례를 풍부하게 곁들여 조언하고 있다. 특히,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인 아버지의 지원 아래 이탈리아 로마냐를 지배하고자 했던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전제군주로 보고, 그를 롤 모델로 삼아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꾸었다. 또한 당시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밀라노와 나폴리 왕국을 정복하는 등 무리하게 이탈리아를 원정했다가 끝내 실패한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황제, 로마의 율리우스 2세 등 역사적 인물을 지켜보면서 세속에서 실현될 수 없는 도덕과 종교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국가 중심의 실제적 정치론을 역설함으로써 조국의 통일과 중흥에 기여하고자 했다.
2019년 올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탄생한 지 5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5세기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그의 눈은 숱한 국제 분쟁, 정치적 암투를 비롯하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인간사의 본질을 여전히 간파하고 있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정작 마키아벨리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군주론’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가장 먼저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간교함’을 연상할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군주란 모름지기 “함정을 피하려면 여우처럼 처신할 필요가 있고, 이리를 쫓으려면 사자처럼 처신할 필요가 있습니다(제18장 [3])”라고 말한 대목 때문이다. 이 책을 약 40년간 개역한 원로학자 신복룡 교수는 이 명제가 이 책을 지배하는 핵심어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후세의 학자들과 독자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인용한 것뿐이란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가 주창한 여러 가지 현실 인식을 주목한다면 행태주의 정치학의 서장에 그를 두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지만, 그가 현실을 주목한 거울은 역사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굳이 그의 학문 세계를 설명하자면, 마키아벨리는 역사주의에 배치할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신복룡 교수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기존 해석과 다른데, “인간의 내면적 성찰보다 선악을 넘어 밖으로 표출된 인간 행위에만 주목한다면 마키아벨리가 보여 준 정치인의 처신은 분명 행태주의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의도가 그러한 뜻으로 해석되는 지금의 정치학에 다소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인다. 『군주론』을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 대한 이해나 주석 없이 본문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신복룡 교수는, 마키아벨리가 진실로 메디치가에게 권면하고자 했던 것은 로마 제국을 이끌던 명인 재사들의 용맹함을 그 시대에 되살려 교황권의 종속을 벗고 흩어진 조국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염원의 과정에서 구상한 이상향이었다고 피력한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는 고대 로마 제국을 이끌던 영걸들의 우국심을 지도자의 덕성으로 해석하는 정신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고 해석했다.
원로학자 신복룡 교수의 40여 년 개역의 결정판
『군주론』의 특성을 살려 국내 최초 ‘서간체’ 형식으로 번역
마키아벨리 연구의 대가 앨런 H. 길버트의 「해제」 수록
『군주론』 전면개정판은 신복룡 교수가 1980년 초판 출간 이후 약 40년간 꾸준히 개역한 결과의 최종판이라 할 수 있다. 신복룡 교수는 이 책을 처음 번역할 때, 마키아벨리가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가에 봉정했다는 특성을 살려 국내 최초로 ‘서간체’ 형식의 문장을 사용하였다. 또한 삼십대에 처음 이 책을 번역한 그는 팔순을 앞둔 지금까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문장을 여러 번 다듬었고, 주석을 계속 정리하여 달았다. 그러나 「해제」를 붙이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했는데, 행여나 자신의 글이 현학(衒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 연구의 대가인 앨런 H. 길버트(1888~1987)의 글로 이 책의 「해제」를 대신했는데, 길버트는 목사이자 미국 코널대학교와 듀크대학교의 교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연구에 주력했으며, 『군주론』을 비롯한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과 서간집 등을 주석한 학자이다. 길버트 교수는 「해제」에서, 공화주의자였지만 이탈리아의 중흥을 위해 군주정을 옹호할 수밖에 없었던 마키아벨리의 고뇌, 정치가이자 뛰어난 작가였던 마키아벨리의 인간성, 그 무렵에 이탈리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담담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이번 전면개정판에서는 신복룡 교수가 40여 년간 아껴두었던 ‘나의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한 이야기를 「옮긴이 서문」에 자세하게 밝히는 등 다음 세대를 위해 보다 친절하고 섬세하게 신경 썼다.
전통 있는 ‘을유사상고전’의 화려한 부활
단단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새로운 편집⦁도판 50여 점 수록
『군주론』은 ‘을유사상고전’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아직 『군주론』을 읽지 않은 젊은 독자층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시대 흐름에 맞게 문장을 다듬고, 해설을 친절하게 보충했으며,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도판 50여 점을 수록하였다.
을유문화사는 앞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삶에 빛이 되어 주는 사상 고전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편집하고, 오랫동안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만큼 단단하고 아름답게 디자인하여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이탈리아 피렌체의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라틴어를 익히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29세에 피렌체 시의회의 서기관이 되었으며, 이후 정치가로서 피렌체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한편으로 유력한 정치인들에게 접근하여 입신양명을 꾀하고 자신의 저술을 알리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이러한 신분 상승 욕구에도 불구하고 세속에서 큰 영화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는 공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방대한 양의 독서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리비우스 역사 논고, 전술론, 만드라골라, 피렌체사(史)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