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도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디지털 유인원까지,
‘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
이제 인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디지털 동반자’와 함께할 것이다
요즘 우리는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산물을 사용한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24시간 인터넷과 연결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유례없는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발명품은 우리가 책을 읽는 방법, 수업을 듣는 방법, 택시를 부르는 방법, 여행을 예약하는 방법, 식료품과 잡화를 배달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인간의 의사 결정을 인공 지능 알고리즘이 대체하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이용하는 사람이 어떤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할지를 추측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나 소셜 미디어의 뉴스 우선순위 선정도 이미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대부분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디지털 기술로 인해 우리의 생활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25년 전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한 개인, 우리, 나아가 인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관련 기술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유인원』은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가 스마트 기기의 출현으로 겪는 사회적 변화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예측하며, 마법 같은 신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현실감 있게 보여 준다.
잡지 『와이어드(wired)』는 2018년에 15인의 사상가와 저술가에게 ‘2050년 즈음 인간의 생활 방식을 가장 크게 바꿀 혁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여기에 이 책의 저자인 나이절 섀드볼트는 ‘개인 맞춤형 디지털 동반자’라고 답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AI 친구들은 우리와 놀아 주고, 우리의 선생님이 되고, 우리가 기억하고 쇼핑하고 거래하는 것을 돕고, 우리를 위로하고 부추길 것이다. 그들은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에 들어와 믿을 수 있는 정보원이 되고, 지식과 어쩌면 지혜의 출처가 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디지털 동반자’와 함께할 것이다.
인간은 스마트 기기의 출현으로 ‘디지털 유인원’이 되었다
이런 기대 섞인 전망과는 달리 한편에서는 로봇과 인공 지능 같은 마법의 기계가 너무 빠르게 진화해 인간을 앞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다. 이 책은 ‘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막연한 의문에 대해 디지털 유인원의 새로운 세계가 현재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미래에는 어떻게 운영될지 등을 사실과 허구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그런 의문에 동반되는 불안과 공포, 혼란과 오해를 떨쳐 낸다. 그리고 지금 당장 우리가 고민하고 시도하고 선택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특히 경제학, 심리학, 철학, 공학, 그리고 선사시대를 포함한 인류 역사의 사회학적 맥락 속에서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고찰하면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저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원인이 그 훨씬 이전부터 초기 인류가 ‘도구’를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불을 포함한 도구는 초기 인류의 뇌와 행동, 사회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었다. 인류가 도구를 만드는 동안 도구도 인류를 만들어 낸 것이다. ‘디지털 유인원’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이는 이 책의 모델은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1967년)다. 전제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유인원과 비슷한 종이라는 것이다. 우리 안의 유인원은 여전히 배우자를 선택하고, 음식을 찾고, 잡담을 나누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전쟁을 하고,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지만, 지금은 이 모두에 디지털 기술의 산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패턴은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 ‘디지털 유인원’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행해 주는 마법의 도구를 손에 쥔 것일까?
세계적인 인공 지능 과학자와 이론경제학자가 전망하는
21세기 ‘디지털 유인원’의 미래
저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초복잡·초고속 세계에서 개인이 자기 자신의 데이터와 사이버 인생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즉 정부와 거대 기술 기업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어진 현실이다. 디지털 유인원의 정글에 사는 거대한 짐승(정부, 거대 기술 기업)은 초고성능 기계를 사용해 작은 동물(개인)의 뒤를 몰래 밟고 있다. 정부는 개인에 대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보유해 시민을 감시할 수 있는데다 디지털 자유를 창조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법적 틀을 가지고 있다.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은 데이터를 독점하며 개인의 선호를 파악해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업은 해외 법인에 재산을 은닉하며 시민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고, 정부와 대기업이 소유한 지적 기계의 글로벌 인프라는 거의 전부를 몇몇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관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우리 대부분이 그 소수 집단으로부터 기계에 대한 통제권을 영영 빼앗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경계하며 그것이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인류가 능히 그 위협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기계와 인간이 결합할 때 발휘되는 긍정적인 측면을 소개한다. 첫째는 성공적인 집단 지성 사례인 위키피디아, 참여형 무료 지도 서비스 오픈스트리트맵 등 인류의 집단적 지혜를 조합하고 확장하는 사회적 기계다. 둘째는 노인 돌봄이나 자율 주행 자동차 운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인공 지능 플랫폼을 활용한 로봇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적인 데이터 공개로 인해 혁신적인 새로운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고,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적인 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은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적인 제약을 제거할 수도 있다. 이것은 변화가 아니라 진보로, 새로운 도구 덕분에 인간은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과학은 곧 현실이다. 세계적인 인공 지능 과학자인 나이절 섀드볼트와 사회 정책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론경제학자인 로저 햄프슨은 단순히 기술·과학적 변화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이끌어 가야 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수많은 혁신가가 제안한 다양한 해법에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우리가 이 새로운 도구를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다면 인류는 다시 한 번 경이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나이절 섀드볼트
나이절 섀드볼트는 인공 지능 분야에서 주목받는 영국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다. 섀드볼트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와 함께 오픈 데이터 연구소(Open Data Institute, ODI)를 설립하였다.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지저스 칼리지 학장, 동 대학 컴퓨터과학부의 연구 교수직을 맡고 있다. 인지심리학, 컴퓨터 신경과학, 인공 지능, 시멘틱 웹(semantic web) 등 다양한 주제로 500편이 넘는 학술 논문을 썼다. 과학과 공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저자
로저 햄프슨
로저 햄프슨은 이론경제학자이자 사회 정책 분야 정부 관료로, 2016년 초까지 16년간 영국 레드브리지 자치구의 수석 장관을 맡았다. 레드브리지는 서비스 공급, 시민 참여, 데이터 공개와 관련한 웹 기반 혁신으로 명성이 높은 지역이다. 햄프슨은 사회 복지가 강조되는 혼합 경제로의 혁신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켄트대학교에서 연구원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광고의 경제학, 지역사회의 복지, 사회 서비스에 관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 왔다.
역자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호모 데우스』, 『인공생명의 탄생』, 『도덕의 궤적』, 『우리 몸 연대기』, 『인류세의 모험』, 『과학과 종교』, 『1만 년의 폭발』, 『다윈 평전』,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