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이는 요소에는 전쟁, 정치, 사상, 철학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돈’은 역사 전면엔 덜 등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대의명분이나 정치 철학 등으로 포장된 역사적 사건들 이면에는 언제나 ‘돈 문제’가 얽혀 있기 마련이었다. 이 책은 사실상 역사를 움직여 온 ‘돈’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해석한 독특한 책이다.
돈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릴 정도로 경제적 요인은 개인은 물론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고대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였던 포에니 전쟁은 흔히 군사력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하기 쉽다. 로마가 카르타고에 비해 우수한 병력과 훌륭한 지휘관을 많이 가졌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관점은 기존의 역사책에서 흔히 보이는 해석이다. 하지만 실제로 로마와 카르타고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원인은 긴 전쟁 기간 동안 쌓인 ‘빚’의 처리를 두고 보인 두 국가의 해결 방법 차이였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벌인 로마와 카르타고는 늘어난 전쟁 비용을 부담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결국 카르타고는 부족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속주의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증세는 속주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와 반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카르타고는 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기원전 249년, 카르타고는 드레파나 해전에서 처음으로 로마에 대승을 거두고도 제해권을 장악하기는커녕 오히려 해군을 감축시켰다. 늘어나는 전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증세 대신 국채 발행을 택한 로마는 ‘빌리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부유층의 반발을 억누르고 효과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해전에서 대패하고도 오히려 함대를 재건해 결국 1차 포에니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국가의 빚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카르타고는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그 승리를 이용하지 못한 반면, 카르타고보다 선진화된 ‘경제 개념’을 가지고 있던 로마는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덕분에 전투에서 패배했음에도 결국 전쟁의 승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채 발행이 모든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일까? 로마 제국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국채를 너무 남발해서 문제가 된 경우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를 거의 대부분 회복한 업적 덕분에 ‘대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러한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유스티니아누스는 역사상 아주 뛰어난 위인이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결코 대제라 칭할 수 없는 인물이다. 오히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가 자신의 저서인 『비잔틴 제국 비사』에서 칭한 것처럼 ‘하늘이 보낸 역병’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제국에 그다지 도움도 안 되는 불모지를 정복하는 동안 동로마 제국은 막대한 빚을 져야 했다. 결국 유스티니아누스는 ‘대제’라는 불멸의 칭호를 얻고 죽었지만 그의 후임 황제들은 황실의 국고에 금은보화 대신 갚아야 할 국채 증서만 가득 쌓여 있는 걸 보고 망연자실해야 했다.
장밋빛 환상이 빚어낸 풍요와 거품들
종이로 금을 만들고, 꽃 한 송이로 저택을 구입하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움직이기는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나 귀족 등이 경제 논리에 따라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면 일반 시민들은 정책 방향을 틀게 만드는 여러 경제적 사건과 연관되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먹고사는 문제는 개개인에게 일순위에 해당하는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과거 역사적으로 크게 문제를 일으켰던 경제 사건에 일반인들이 관계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튤립 버블과 미시시피 버블이다.
튤립 버블은 실론 섬 등을 정복한 뒤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면서 부국이 된 네덜란드에서 1630년대 불기 시작한 튤립 투기 열풍을 일컫는다. 당시 튤립은 유럽에 처음 소개되는 진귀한 꽃이어서 상당한 고가였다. 그러자 튤립 정원을 가꾸는 게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점점 더 좋은 품종의 희귀한 튤립을 찾기에 이르렀다. 한번 튤립에 명품 이미지가 생겨나자 잘 키운 튤립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졌고,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튤립 거래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급 품종의 튤립인 경우, 저택 한 채 값에 맞먹기도 했다. 결국 유럽의 어떤 왕족이나 귀족도 튤립을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치솟자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던 거품이 순식간에 터졌다. 저택 한 채 값이었던 튤립의 가격이 양파 가격 정도로 곤두박질쳤고, 그 결과 무수히 많은 파산자가 생겨났다.
튤립 버블이 개인의 투기와 욕망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면 미시시피 버블은 좀 더 복합적인, 국가에서 주도한 일종의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루이 14세 이후 왕위에 오른 루이 15세는 막대한 국가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이때 존 로라는 인물이 어린 루이 15세와 섭정이었던 필리프 공 앞에 나타나 “종이로 금을 만들면 된다”고 설득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던 필리프는 존 로의 요청대로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프랑스 식민지인 루이지애나의 독점 개발권을 허가한다. 이 독점 개발권을 가지고 존 로는 미시시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식민지를 개발할 것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인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프랑스의 국채를 미시시피 주식회사에 건네고 대신 주식회사의 주식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루이지애나는 기반 시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고, 당연히 어떠한 수익도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미시시피 주식회사에 제대로 된 실적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는 파산했고 투자자들 역시 투자금을 몽땅 날려야 했다.
이 밖에도 나폴레옹 황제를 탄생시킨 아시냐 지폐의 발행,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 경제적 배경,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등을 흥미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다루고 있다. 고대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에서부터 대공황과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 유로존에 대한 전망까지 경제적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모두 다룬 이 책은 역사적 사건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해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세계사를 보여 준다.
저자
안재성
언론인 생활 중 대부분을 경제 분야 기자로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경제와 금융 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여러 역사책을 들춰 보는 게 취미다. 혼자서 경제와 역사를 넘나들며 공부하던 중, 자본주의 성립 이전부터 이미 인간과 인간이 만든 조직은 이념보다는 돈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전쟁 등을 결정할 때도 ‘돈 문제’가 미치는 영항은 매우 컸다. 흔히 알려진 대의명분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거나 정부 정책의 큰 물줄기가 변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돈’의 개념도 인류의 역사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돈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는 「안재성의 ‘돈’ 이야기… 탐욕의 역사」와 「안재성의 金錢史(금전사)」를 「세계일보」에서 연재 중이다. 이번 책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그동안의 연구와 집필의 산물이 담겨 있다. 돈과 경제의 발전 및 변화 등을 여러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소개하는 한편, 풍요와 거품을 좇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경제와 역사 사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기사를 마감하고 나면 여전히 역사책과 경제 책을 넘나들며 흥미로운 글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