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키상과 서점대상(『배를 엮다』)을 동시 수상한 최초의 작가
미우라 시온의“망상 작렬 폭소 에세이”
웬만한 만화보다 더 재미있다! ‘셀프 디스’ 인생,
미우라 시온의 시트콤 같은 코믹 라이프
시온이라는 작가의 필터에 걸리면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도 재미있고 기묘한 사건이 된다. 알고 보면 자타가 공인하는 방구석 만화광인 저자는 이 책에서 ‘덕후력’을 마음껏 뽐내며 학창시절부터 접해 온 만화와 그 안의 캐릭터들을 맛깔나게 삶 속으로 끄집어낸다. 게다가 취미는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라는 그녀는 시종일관 ‘셀프 디스’를 시전하며 망상에 빠진 자신의 모습으로 자조적인 웃음을 연발한다.
이런 미우라 시온의 두 가지 특징은 그녀의 일상과 결합되어 유쾌하고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로 터져 나온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와 술을 마시고 아침까지 웃고 떠들며 망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상, 사사로운 일상다반사를 자신만의 세계관에 대입해 보는 상상, 화려한 공연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고 감동하지만 막상 집에는 장 봐 온 엄마가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생활 소음이 가득한 현실에 풋 하고 웃음이 터진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 마치 그림으로 그려질 듯한 만화 같은 유쾌한 콩트가 된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밴드를 보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밴드란 무엇인지’, 공연을 보면 왜 애달파지는지 깊이 고민하기도 하고, 우리도 흔히 알 법한 일본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놓기도 하며, 작은 쥐의 죽음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논하기도 한다. 미우라 시온의 일상에서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턱턱 숨이 차오르는 장마에 들어가기 직전의 산뜻한 계절을 연상시키는 에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웃음을 유발하는 미우라 시온의 탁월한 망상은 그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박식함과 합체되면서 순간적으로 터지는 웃음폭탄이 된다. 많은 작가가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독특한 발상을 통해 글을 쓰고 있지만, 미우라 시온의 상상력은 애초에 그들과 결이 다르다. 그녀의 통찰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며, 사소한 행인들의 단 한마디 말과 행동에서 톡톡 튀는 이야기를 창조해 낸다. 평소 만화와 공연을 포함한 여러 문화를 접하면서 쌓은 식견과 소양,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타고난 능력이 문장 속에 발휘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그녀가 오늘날 권위를 인정받는 나오키상과 대중적 인기를 상징하는 서점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공감을 끌어내는 훌륭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된 밑거름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오사카 여행 다음날에는 우메다 지하도를 돌며 헌책방을 샅샅이 점검했다. 그리고 있는 돈을 털어서 대량의 옛날 소녀 만화를 싼값에 구매했다. 사고 나서야 이걸 지고 도쿄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무거워. 하지만 지갑은 가볍다.”
게다가 미우라 시온의 만화 사랑은 책 곳곳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 유유상종 친구와 함께 만화 캐릭터로 이상형 월드컵을 하면서 남자 취향을 통한 우정 테스트를 한다거나, 오사카 여행을 갔다가 헌책방에서 어깨가 빠져라 만화책을 구매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만화책 사러 오사카까지 갔었니?”라며 핀잔을 듣는 등의 이야기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덕후 특유의 끈질긴 근면함에 감탄이 나온다. 이런 점은 누구나 한 가지씩 푹 빠져 있는 무언가가 있는 현대인에게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신진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다독가로서 드러나는 재능을 엿보다
낙천적인 성격에 큰일이 닥쳐도 매사 여유롭게 받아넘기는 작가지만, 이 책에서는 지금 막 발을 뗀 앞날이 불투명한 신진 작가로서의 불안감도 엿보인다. 가령, 휴대전화 요금이 밀려서 독촉 전화를 받고 불안해하며 만화책을 읽는다거나 우연히 들른 책방 구석에 처박힌 자신의 책을 보고 잘 보이는 곳에 몰래 진열해 놓는다거나 떠돌이 점술가에게 자신이 잘나가는 작가가 되는지 묻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원래는 ‘인생극장’이었던 책 제목을 ‘시온의 책갈피’로 바꾼 일본 출판사의 높으신 분을 호기롭게 꼬집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의 패기만만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면은 책의 첫머리부터 감지된다. 자신의 책 추천사를 직접 쓰며 호기롭게 시작하기 때문이다. 추천사에는 괜히 정치니 환경 문제를 들먹이며 멋쩍음을 상쇄하려 하지만 신인답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책을 읽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배어 나온다. 갓 데뷔한 작가가 직접 추천사를 쓰다니 웃음이 나면서도 그 두둑한 배짱에 감탄이 나온다. 쓸데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 의도치 않게 작가가 자신만의 심연을 책 안에 과시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미우라 시온이 풀어내는 일상이 결코 시시하지만은 않다.
어제는 훌쩍 교토로 떠나고, 오늘은 방에 틀어박혀 공상에 빠지는 그녀의 평범하면서도 아스트랄한 삶이 섬세한 관찰력과 알싸한 상상들을 토핑 삼아 이리 튀고 저리 튄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트라이크 존을 미묘하게 벗어난’ 재미가 가득하다.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오전 11시에 마시는 맑고 쌉싸름한 녹차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하게 충족된다.
_김양수(만화가, 『생활의 참견』 작가)
저자
미우라 시온
197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격투하는 사람에게 동그라미를』을 발표,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2006년에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상을, 2012년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에서 문학적 권위와 대중적 인기를 대표하는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 2015년 『어느 집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로 오다사쿠노스케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검은 빛』,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흰 뱀이 잠드는 섬』,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등으로도 사랑을 받았다. 평소 고문학은 물론 로맨스소설, 만화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독서력을 자랑하는 활자중독자로서 『망상작렬』, 『산지로와 그리고 문을 나섰다』, 『서점에서 만나기』 등 독서일기를 비롯해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유쾌한 신변잡기를 담은 에세이 역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역자
전경아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요코하마 외국어학원 일본어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미움받을 용기』(1, 2), 『마음에 구멍이 뚫릴 때』, 『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 『마흔에게』, 『지속가능형 인간』, 『역사 문화 인문지식이 업그레이드되는 유쾌한 성경책』, 『지도로 보는 세계민족의 역사』, 『굿바이, 나른함』, 『간단 명쾌한 발달심리학』, 『비기너 심리학』, 『새콤달콤 심리학』, 『세계장편문학』, 『미스터리 세계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