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의 떠오르는 작가 테레지아 모라의 첫 작품집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 수상 작품 수록
『이상한 물질』은 테레지아 모라의 첫 작품집으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장려상을 받았으며 여기에 실린 단편 「오필리아의 경우」로 1999년에 독일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을 수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테레지아 모라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보이며 뷔르트 문학상, 베를린 문학 작업실의 오픈 마이크 문학상, 라이프치히 도서전 시전상, 독일서적상, 브레멘 문학상, 졸로투르너 문학상, 문학의 집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현대 독일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상한 물질』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변경의 고향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이 주를 이룬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성년으로 입문하기 전 단계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섬세하고 차분한 시각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공통적으로 국경 지대의 시골이다. 다만 시골이라 해도 도시의 대척점에서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길을 잃기 쉬운 늪지대가 있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변두리 모습으로, 낙후되고 답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결손 가족이나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 월경자, 집시, 이방인 등으로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작품집의 제목인 ‘이상한 물질’이 은유하듯이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 기존의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아 주류 사회로부터 이상한 물질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작품들에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이른바 문제적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인 「이상한 물질」에서는 주정뱅이에 무능력한 아버지 때문에 애어른이 되어 버린 남동생과 배우를 모집하는 오디션에서 화학 원소 주기율표를 외우는 누나가 등장해서 신산한 삶의 풍경을 보여 준다. 「오필리아의 경우」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 여주인공까지 여성 3대가 등장하는데 이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수영 교사가 등장한다. 「틈새」의 경우 처제와 바람이 난 아버지가 등장하고, 「호수」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제빵사지만 가족을 위해 빵을 구워 돈 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안정된 물질과는 반대 극에 서 있는 이상한 물질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은 타자성과 변방성, 주변성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 의미를 새로이 성찰하게 만드는 군상들이다.
서글픈 변방의 유년 시절과 주인공의 성장을
느릿느릿한 어조로 아름답게 그린 작품
『이상한 물질』의 또 다른 특징은 표현 기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서의 책 소개에서도 나오듯 테레지아 모라의 소설은 “서늘하고, 파고들어 가며, 감동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이상한 물질』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체로 1인칭으로 진행되어 독자들이 서술자의 시각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소설의 또 다른 특징으로 언어의 단순함과 반복을 들 수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이상한 물질」의 여주인공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분명하게 발음하자, 단어 하나하나. 감정을 세게 불어넣지 말자. 삼키지도 말자. 뭉개지도 말자”는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도 모두 통용되는 글쓰기의 원칙처럼 보인다. 그리고 1인칭 여성 화자 특유의 섬세한 묘사들이 작품 전반에 자주 보인다. 여성 화자의 발언은 ‘예쁜 오빠’나 ‘예쁜 남동생’과 같은 표현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남자 형제들을 지칭할 때 ‘잘생긴’이 아닌 ‘예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또한 『이상한 물질』에서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가 다른 남성 화자의 목소리보다 더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남성이 자주 등장하며 이를 담담히 묘사함으로써 페미니즘 소설처럼 읽히는 면도 있다. 「이상한 물질」에서는 무능력한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남동생이 등장해 누나의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거나 충고하는 식으로 억압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뷔페」에서는 오빠와 가족들, 동네 사람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주인공인 누이동생을 바보라고 부른다. 「오필리아의 경우」에서는 성추행을 일삼는 수영 교사가 등장한다. 이처럼 주인공을 둘러싼 남성 인물들이나 주변 환경은 하나같이 주인공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물리적 폭력이나 혹은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어른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으며 의젓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시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도 이 작품집만의 특징이다. 몽환적이면서도 동시에 지독히 현실적인 변방의 풍경을 스산하지만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집은 독자들에게 ‘테레지아 모라’라는 낯설지만 독특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잘 보여 준다.
저자
테레지아 모라
1971년 헝가리에서 독일 소수 민족으로 태어나 헝가리어와 독일어를 모두 사용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베를린으로 이주했으며 훔볼트대학에서 헝가리어문학과 연극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 영화와 텔레비전 시나리오 작가 수업을 받았다. 1998년 전업 작가로 데뷔했으며 시나리오 「갈증」으로 베를린 문학작품상 수상했다. 1999년에는 『이상한 물질』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본 작품집에 수록된 「오필리아의 경우」로 잉게보르크 바흐만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표제작인 「이상한 물질」은 테레지아 모라의 작품집 색깔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으로 변방의 세계와 소외된 인물 군상이 생생히 드러나 있는 수작이다. 「이상한 물질」 외에도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두 세계에 걸쳐 살아가는 사람들의 핍진한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집시, 혼혈아처럼 소외된 변방의 인물들이 작품 속에 다수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류 사회를 비판하고 우리 주변에 만연한 폭력적 상황을 고발한다. 이 작품집의 또 다른 특징은 절제된 묘사와 언어의 반복이다. 이를 통해 다분히 시적이며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테레지아 모라는 『이상한 물질』 이후에 뷔르트 문학상, 오픈 마이크 문학상,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장려상 등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연극 시나리오 「방법은 그랬지」, 청취극 「미스 준 러비」, 장편소설 『괴물』 등을 발표했다. 2013년 프랑크푸르트대학 문학 객원 교수가 되었으며 지금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역자
최윤영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 사실주의 소설, 현대 소설, 이민 문학과 비교 문학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 『사실주의 소설의 침묵하는 주인공들』, 『한국문화를 쓴다』, 『서양문화를 쓴다』, 『카프카 유대인 몸』, 『민족의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갈등』 등이 있으며 역서로 『에다』(공역), 『개인의 발견』, 『목욕탕』, 『영혼 없는 작가』, 『훔볼트의 대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