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자에 담긴 고전의 지혜와
일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작은 성찰들
『논어』, 『맹자』, 『중용』 등의 사서삼경에서부터 『노자』, 『장자』 등에 이르는 동양의 주옥같은 고전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여러 사상서 속에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회자된 사자성어들이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이처럼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지혜의 보고인 사자성어들이 따듯하고 소소한 일상과 어울려 소개된다. 발아래부터 머리 위,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우리의 삶 속에서 사자성어와 연관된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발밑을 잘 살펴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는 어떠한가를 면밀히 알아보라는 뜻의 조고각하(照顧脚下), 돌로 옥을 갈고 다듬을 수 있듯이 이 세상에 하찮은 존재란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 소중하게 쓰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같은 사자성어 속에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대비하게 만드는 삶의 자세가 담겨 있다.
평생 동양 고전을 공부해 왔다는 저자는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되살아난 기억들이 생활의 작은 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벼락같은 깨달음이나 흐뭇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노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때 떠오른 대부분의 기억들이 사자성어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자성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속에 숨은 본뜻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자성어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얻은 경험들이 압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자성어와 함께 실린 이 책의 일화들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돼지와 물고기도 감응할 정도로 두터운 믿음이라는 뜻의 신급돈어(信及豚魚)에서는 과연 사람 사이의 믿음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중기의 문인 김득신과 박장원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절친한 사이였는데 한번은 김득신이 친상을 당하게 된다. 때마침 박장원은 지방의 관찰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김득신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게 된다. 박장원은 김득신에게 지금 당장은 도울 수 없지만 나중에 2년 뒤에 치를 장례에서는 제사 음식 전체를 자신이 마련해서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난다. 마침내 약속했던 날짜가 왔지만 박장원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득신은 박장원을 믿고 아무런 제사 준비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한밤중에 박장원이 보낸 사람이 나타난다. 오는 길에 장맛비를 만나 늦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일화에서 두 사람의 믿음은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의심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탄탄한 것이다. 쉽게 약속하고, 그만큼 쉽게 약속을 저버리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사자성어의 뜻과 어울리는 여러 재미난 고전 문헌이나 일화 등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
어제를 다시 보고, 오늘을 반성하며
내일을 전망하게 만드는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들
저자가 사자성어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서 지도자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만한 구절이 많은 것도 이 책만의 특징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도자란 단순히 좁은 의미에서 이야기하는 정치 지도자만이 아니다. 선배, 직장 상사, 손위 동서처럼 보다 넓은 의미의 권력 관계에서 상대방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를 지칭한다. 이들 지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여러 사자성어 가운데 하나가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뜻의 사목지신(徙木之信)이다. 이 사자성어는 권위를 세우는 데 있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 책의 제목이 유래된 사자성어인 약팽소선(若烹小鮮)은 『노자』에 나오는 말로 작은 생선을 구울 때 이리저리 뒤집으면 생선이 으깨어지고 맛이 없어지듯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억지로 일을 진행시키지 말고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듯이 처리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리더에게는 청빈한 삶이 필요하다는 뜻의 청빈자락(淸貧自樂), 무릇 지도자라면 쓸 만한 사람은 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은 공경해야 한다는 뜻의 용용지지(庸庸祗祗) 등의 사자성어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공통되는 삶의 도리와 자세를 이야기하는 사자성어들이 담겨 있다. 사자성어에 녹아 있는 옛 성현의 가르침은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지침으로 삶 속에 발현되었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풍요롭게 해 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자성어가 단순히 현학적이고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말잔치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언제든 답을 제시하고 깨우쳐 주는 값진 격언이라는 사실을 생생한 경험과 함께 들려준다.
저자
김풍기
강원도 강릉 인근의 산골에서 태어났다. 강원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좋은 스승과 선배, 벗들을 만났다. 한국 고전문학과 한시를 통해서 다양한 사유의 흐름을 접했고, 몇 권의 책을 썼다. 새로운 고전의 탄생이라든지 문화사적 패러다임의 전환, 문화 원형의 근원 탐색, 근대 이전 사람들의 일상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일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하는 중이다. 현재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 전기 문학론 연구』, 『한국 고전시가 교육의 역사적 지평』, 『옛시 읽기의 즐거움』, 『시마詩魔: 저주받은 시인들의 벗』,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강원 한시의 이해』, 『삼라만상을 열치다』,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옛시에 매혹되다』, 『독서광 허균: 17세기 조선문화사의 한 국면』, 『선가귀감: 조선 불교의 탄생』, 『한시의 품격』 등이 있고, 역서로는 『옥루몽』,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