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왜 그들을 승자로 택했는가?
단군 신화 속 곰족과 호랑이족의 분쟁부터 촛불 집회까지
파벌로 본 한국사
이 책은 도구의 재료를 통해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역사를 구분하는 3시대 구분법처럼 권력 투쟁의 방법에 따라 창검의 시대, 사약의 시대, 투표의 시대로 한국사 전체를 나눠 살펴보고 있다. 창검의 시대는 창검으로 대표되는 군사력으로 정권이 교체되던 시기로 고조선부터 조선 전기까지에 해당한다. 사약의 시대는 조선 중기부터 말기까지로 무력 투쟁보다는 사약으로 대변되는 합법적인 정치 투쟁으로 정적을 제거하던 시기이다. 투표의 시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로 SNS나 인터넷상의 여론전을 주무기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이다. 노사모, 일베, 가짜 뉴스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여론전을 잘 보여 준다.
저자는 권력 투쟁을 벌인 정치 파벌을 대표적으로 내세우며 각 시기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는 종교가 정치권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파벌은 신선교와 불교를 들 수 있다. 이 다툼에서는 불교가 승리를 거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같은 왕조들은 모두 신선교에서 불교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사찰에 마련된 산신각에서 보이는 산신 숭배 신앙처럼 신선교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반면 고려 시대 때는 문신과 무신이 양대 파벌이었다. 광종의 과거제 실시 이후 문신들이 권력을 잡는가 했지만 무신정변으로 인해 무신들이 이내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후 신진사대부들이 등장하면서 문신의 지배가 굳어지게 된다. 이후 조선 시대의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 사림파 내에서 갈라져 나온 붕당 정치, 붕당 정치를 수습한 탕평 정치와 그 결과물로 등장하게 된 세도정치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각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 파벌들 간에 어떠한 투쟁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우리 역사가 어떻게 변천해 갔는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정치 투쟁사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비선 실세들도 다루어 당시의 정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김유신을 역사 무대에 등장시키고 세 명이나 되는 왕을 배후에서 조종했던 미실, 조선 왕조 말기 여러 고관대작들이 누님 혹은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던 무녀 진령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로, 왕세자와 도승지, 영의정의 권력을 합쳐 놓았다 할 만큼 대단한 힘을 과시했던 김현철 등의 비선 실세를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상식을 깨트리는
흥미진진한 한국의 정치 권력사
저자는 한국의 정치 권력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면서도 정사에 입각해서 딱딱하게 서술하지만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을 깨트리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중간중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사약이라고 하면 먹는 즉시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연려실기술』의 기록을 보면 임형수라는 인물은 사약이 든 독주를 열여섯 잔이나 먹고도 죽질 않아 결국 교살당해야 했다. 그 밖에도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소호금천씨’의 행방을 쫓아 흉노족의 일부가 가야와 신라의 왕족으로 참여해 우리 고대사에서 정치 파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나 독립운동을 벌였던 삼한 최고의 명문가인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일화, 6월 항쟁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레이건 전 대통령의 친서 수령을 거부하자 청와대 우편함에 넣든지 아니면 대통령 집무실 문틈으로 밀어 넣으라고 미국 대사에 조언을 했다는 일화 등이 흥미롭게 소개된다.
또한 이 책은 한국의 정치 권력사를 한 권에 다 담고 있다. 단군 신화에서 보이는 최초의 권력 투쟁인 곰족과 호랑이족의 분쟁에서부터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시대는 물론 한국 근현대사에서 큰 사건인 3·15 부정 선고와 4·19 혁명, 5·16 쿠데타,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6월 항쟁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군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알자회, 6월 항쟁 막후에서 활약한 제임스 릴리 전 미국 대사 같은 뒷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정치야 말로 가장 발전한 분야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잘못 갖고 있는 편견은 오늘날 정치 분야만큼 발전이 더디고 비능률적이며 성숙하지 못한 분야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창검의 시대나 사약의 시대에서 정치 투쟁에서 패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선거에서 지거나 정치권력을 빼앗겼다고 해서 목숨을 잃거나 유배를 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얼마든지 다음 선거에서 재기를 노릴 수도 있다. 저자는 과거 창검의 시대나 사약의 시대를 살았던 정치인이 오늘날의 정치 형태를 본다면 이처럼 발전적으로 정치 투쟁이 벌어질 수도 있느냐며 놀라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가장 발전했다고 여겨지는 경제 분야야 말로 오너 일가에 의해 전횡이 이뤄지고 경영권 승계도 당연시되는 가장 왕조 국가다운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우리의 편견과 달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정치가 가장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저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정치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근거를 들어가며 제시한다.
물론 정치 분야가 선진적이라고 해서 합리적으로만 운영되지는 않는다. 저자가 각 장의 시대 상황을 보여 주는 예시로 들고 있는 비선 실세들의 행태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신라의 팜므 파탈이라 불릴 만한 미실의 경우 후궁으로서 세 명이나 되는 왕을 섬기면서 막강한 배후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미실은 심지어 동륜 태자를 암살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정도로 권세가 막강했다. 조선 시대 때 왕자에게나 붙는 ‘군(君)’이라는 칭호를 받은 유일한 무당인 진령군 역시 비선 실세의 힘을 보여 준다. 임오군란 때 피신한 명성황후에게 찾아가 궁궐로 복귀하는 날짜를 정확히 예언하여 신임을 얻은 진령군은 이후 인사권에도 관여할 정도로 승승장구한다. 고관대작들마저 진령군을 어머니 혹은 누님이라 부르며 따를 정도였다. 유교 국가에서 선비들이 천한 존재로 무시했던 무당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다. 최근에 우리가 경험한 촛불 집회와 맞물려 씁쓸한 데자뷰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
김종성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월간 『말』에서 동북아 전문 기자,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근대사연구소 방문 학자로 활동했으며,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유산 채널』(구 『헤리티지 채널』)의 자문위원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문화유산 채널』에 명사 칼럼을, 『민족 21』과 웅진 씽크빅의 『생각쟁이』에 역사 기고문을 연재했으며 2007년부터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 읽기〉를 연재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인들에게 한국사를,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외부 강사로 삼성 신입 사원들에게 역사를 강의했다. 기독교방송 CBS의 〈김미화의 여러분〉의 역사 코너에 출연했고, 2012년부터 교통방송 TBS의 〈송정애의 좋은 사람들〉(구 〈오지혜의 좋은 사람들〉)의 역사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신라 왕실의 비밀』, 『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왕의 여자』, 『철의 제국 가야』, 『한국사 인물통찰』,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동아시아 패권전쟁』, 『조선사 클리닉』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조선상고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