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면 곧바로 음담패설을 말하며 낄낄거리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는 성에 대해 우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식이 없다. 우리의 각 분야 지식수준을 그래프로 만든다면 성 지식 부분은 아래로 푹 꺼져 있을 듯하다. 이제 우리도 성에 대한 이야기를 지적이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신분석학, 인지과학, 여성학, 사회학, 진화심리학, 철학, 생물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성을 바라보며 이야기한 이 책이라면 수준 높은 성 담론이 가능하도록 해 줄 것이다.
1. 도서 소개
21세기 지성인이라면 이 정도 성 지식은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인지과학, 사회학, 여성학, 진화심리학, 철학, 행동경제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통해 성을 바라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조르주 바타유, 미셸 푸코, 게일 루빈, 제프리 밀러 등 이 책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주장은 당시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들로,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뜨거울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들은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고 성을 사유(思惟)하게 해 줄 것이다. 이 책의 기둥을 이루는 지식인 열 명의 주장에 덧붙여 지그문트 바우만, 질 들뢰즈, 데즈먼드 모리스, 조안 러프가든, 슬라보예 지젝, 피터 싱어, 어빙 고프먼 등의 저서(참고 문헌) 250여 권을 바탕으로 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최근의 흐름까지 담았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
사방에 성적인 이미지가 넘실대는 꽤 개방적인 성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성 지식은 바닥이다. 스치듯 받은 성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접한 왜곡된 성 지식이 전부다. 이러한 성 무지는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성이 수치심으로 주입되면 성을 더럽고 죄스럽게 인식하게 되고, 배우자와의 성관계도 아름답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음지에서 뒤틀린 모습으로 발산하게 된다. 성을 밝은 곳에서 지식으로 접하면 성 문화가 바뀌고 좀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성을 억누르는 정책을 쓴 미국보다 성에 대해 열린 교육을 한 유럽의 낙태율이 훨씬 낮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성에 대한 건강한 지식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성, 이제 어두운 데서 탐닉하지 말고 지식으로 탐닉해 보자.
단순한 성 지식이 아닌, 교양 지식을 선사하는 흥미로운 학설과 주장!
- 일부일처제를 배우자에게 속박시키는 올가미로 여기며 불만을 갖고 있는 남자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이 자랑할 만한 권력과 재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일부일처제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듯하다. 왜냐면 일부다처제 시대엔 권력가가 여러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바람에 노총각으로 홀로 살다 간 남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남자 조상들을 떠올리면 일부다처제의 그늘에 서게 될 남성의 수는 적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일부일처제는 번식 평등화 도구이자 남성 평등화 장치다.
- 흔히 ‘정자 경쟁’이라고 하면 영화 <마이키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한 남성의 수많은 정자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정자 경쟁은 타인의 정자와 벌이는 경쟁을 말한다. 다자 연애를 하던 선사 시대에 벌어진 남성 간의 정자 경쟁이 현대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 즉 남성의 성기 모양에 숨은 비밀부터 정자의 수가 현대에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 등을 설명한 학설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 특히 성인 남성과 미소년의 사랑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생각보다 신사적이다. 젊은 남자는 돈을 받으면 안 되고, 명예롭지 않은 상대라면 거부해야 하며, 쾌락을 피한 채 똑바로 선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삽입이 가능한 체위를 피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성에 자유로웠으나 자신을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고, 이것은 동성애에도 적용된다. 또한 이 자기 절제는 정치권력가의 필수 덕목이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절제한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 처음 보는 이성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왜 인기 많은 사람은 따로 있을까?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재생산(번식) 본능으로 작동하는 구애 기계라고 정의하면서, 그 때문에 남자가 허세를 부리고 여성이 모래시계형 몸매를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편화된 이성 선호도가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하며 짝짓기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인간의 성 전략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여자들은 주변 친구들이 “저 남자가 널 좋아하는 게 분명해.”라고 말해 줘도 아닐 거라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 반해 남자들은 여성이 예의상 웃어 줘도 그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이유를, 인간은 본심을 잘 감춰서 마음을 알기 어렵기에 판단을 유보해서 기회를 잃기보단 일단 성적인 관심이라고 유추해 내는 쪽으로 남자들의 뇌가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현대 성 문화 변화의 중심에는 여성운동이 있다. 1960년대에 일어난 제2의 여성운동은 68혁명과 연결되는데, 남녀평등과 여성 해방은 물론이고 안기는 여성에서 안는 여성이 되면서 사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후 누군가 성관계를 요구하는데 꺼려하면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원치 않아도 남성의 만족을 위해 억지로 성관계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여성성을 순결한 것으로 포장하고 여성의 우월한 도덕성을 알리기 위해 정숙과 순결을 자신의 가치로 되새김질하며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하다가 지금의 성 문화가 정착되었다.
- 일본에서는 여자들이 약자인 일부 남성을 외면하면서 약자 남성들이 연애도 못하고 성욕 해소가 되지 않아 괴롭다는 ‘성적약자론’이 공공담론 속에서 부상했다. 자칭 성적 약자들은 여자들이 경제력 없는 남자들을 선택하지 않아서 자신들이 성적 약자가 되었으니 여성과 사회는 성적 약자를 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잘나가고 돈 많은 남자만 선호하는 여자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수많은 여성 성적 약자들을 구제하려고 나서지 않는가? 왜 비인기녀의 불만과 고통은 들리지 않을까? 공공담론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고, 성별에 따른 권력의 비대칭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밖에 모든 것을 ‘성’이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봤던 프로이트, 인간은 성관계를 통해 기쁨과 쾌락을 얻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빌헬름 라이히, 에로티즘은 금기를 어길 때 발생한다는 조르주 바타유, 여성 자신의 성에 대한 긍정이 곧 여성이 힘을 얻는 과정이라고 주장한 자위 전도사 베티 도슨, 자기 배려와 절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미셸 푸코, 동성애 등 타인의 다양한 성애 방식을 정죄하지 않는 민주화된 성 도덕을 주창한 게일 루빈, 인간을 구애 기계라고 정의하면서 성 선택을 통해 생명이 진화했다는 다윈의 이론을 발전시킨 제프리 밀러, 진화심리학으로 이성 선호도의 보편성을 설명한 데이비드 버스, 사회생물학과 선사 시대 인간의 성생활을 통해 일부일처제를 파헤친 데이비드 바래시와 주디스 이브 립턴 등이 주장하는 흥미롭고, 신선하고,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
이인
음탕하면서도 경건하고, 가벼우면서도 진중하며, 여유를 부리면서도 부지런하고,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사람.
인간이란 무엇이고 왜 이런지 사유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에게 인문학이 무슨 쓸모가 있을지 궁리한다. 기존의 생각들을 뒤집는 화끈하고 강렬한 생각을 좋아한다. 깊이 있으면서도 산뜻하고 재미있으면서 묵직한 글을 추구한다. 치열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살고 있고,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빛에 눈멀지 않고 그늘에 눈 돌리지 않는 눈 밝고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늑하게 아름다운 지성이 되고자 한다.
철학,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꾸준히 쓰고 있으며, ‘다중지성의 정원’과 ‘차이 에듀케이션’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 『나는 날마다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 것인가』, 『생각을 세우는 생각들』 등이 있다. 싱그럽고 묵직한 주제로 새로운 책들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