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다 입으로 먼저 접하는 당시(唐詩)의 아름다움
옛 선비를 따라 시를 읊고 시의 정취를 느끼다
얼마 전에 트럼프의 외손녀가 당시를 읊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국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당시를 트럼프의 외손녀가 읊자 중국인들이 그 귀여운 모습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시는 국적과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당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꾸몄다. 기존에 출간된 당시나 한시를 다룬 책들은 대개 감상과 해설 위주로, 단순한 번역에 그쳤다. 반면 이 책은 최대한 당시의 운율에 따라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당시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본문 디자인 역시 독자들이 운율을 느끼며 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시의 독음에는 당시 운율의 3요소인 평측, 분구, 압운이 표시되어 있다. 또한 문어적인 의미에서 한자 독음 사이를 일괄적으로 배치한 게 아니라 구어적인 기준에 따라 간격을 조정했다. 긴 간격을 두고 쉬었다가 읽어야 할 경우는 한자 독음 사이를 좀 더 길게 배치하고, 짧게 끊어 읽어야 할 경우에는 간격이 짧게 배치되어 있어 독자들은 한시의 독음 사이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운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당시를 구성하는 한자들마다 새김과 의미를 표시해서 일일이 해석을 달았을 뿐만 아니라, 국어사전 표제어인 경우와 한자어의 조합인 경우를 나눠 표시했으며 각각의 단어 뜻도 설명해 두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당시를 낭송하고 감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자 공부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각 시의 말미에는 해당 당시를 간자체로 표시한 것과 중국어 발음을 함께 실어 중국인들과의 대화에서도 바로 해당 당시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중국인과의 비즈니스나 그 밖의 교류에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당시 한 수를 읊거나 이를 화제로 삼을 수 있다면, 대화의 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500여 편이 넘는 당시들 중에서도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는 52수가 선별되어 있다. 이렇게 수록된 당시들 중에는 중국 초등, 중학 어문 교과서 등에 실린 작품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당시는 발달 과정에 따라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 네 시기로 구분되는데 편역자는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가려 뽑았다. 뿐만 아니라 형태면에서도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악부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되어 있어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당시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책의 부록에 실린 근체시 평측도에서는 당시의 운율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당시에 내재되어 있는 규격미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울러 ‘시인 소전’에서는 책에 실린 시인들에 대한 인물평이 실려 있어 해당 당시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고전 시의 참모습
모든 시는 시인의 모국어로 낭송해야 운율이 살아난다. 따라서 그 나라 언어를 모르면 그 언어로 쓴 시의 운율을 살리면서 읽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는 한국 한자음으로 읽을 수 있다. 타국의 시를 자국 나라 소리로 읽는 경우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아주 특별한 일이다. 게다가 오늘날 현존하는 당시는 당나라 시인이 처음부터 자기 시집으로 엮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붓으로 베낀 두루마리 형태로 전해지던 시들은 당나라 말기에 가서야 비로소 목판으로 찍은 책의 형태로 출판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는 책으로 출판되기 이전에 수많은 독자가 읽으면서 좋지 않은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 결과 오늘날 남은 당시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주옥같은 작품들뿐이다. 이 책에 실린 당시 역시 하나같이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인생의 깊이와 감동을 오롯이 전해 주는 명시들이다.
당시가 단순히 풍광 좋은 곳에서 안빈낙도를 노래했다고만 여긴다면 이 역시 잘못 생각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 「석호 아전(石壕吏)」에서는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던 민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징집을 피해 달아난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할머니에게 사납게 꾸짖는 석호 아전의 모습과 관리에게 자신들의 딱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한 편의 씁쓸한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온다. 맹교(孟郊)의 시 「유랑자 노래(遊子吟)」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절절한 시어로 잘 표현했다. 국경 지방의 풍물을 주제로 한 시 형식인 변새시(邊塞詩) 가운데에서도 천고千古의 명작이라 여겨지는 왕한(王翰)의 「양주 노래(?州詞)」에서는 삶의 덧없음과 쓸쓸한 국경 지대의 풍광이 묘사된다. 이처럼 여기에 실린 당시들은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물론 시대의 결까지 모두 오롯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역사로도 손색이 없다.
이백 「고요한 밤 생각」
침상 머리에 달빛 밝은 것을
마당에 서리 내렸나 여겼다.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머리 숙여 고향 집 생각한다.
「정야사靜夜思」는 객지에서 둥근 달을 보고 고향이 그리워 읊은 시이다. 이 둥근 달은 늦가을 새벽, 서천에 기울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시인은 자다가 추워서 깨어나 고향을 그리워했던 게 아닐까. (본문 36쪽)
두보는 759년, 48세 때, 중앙의 벼슬(좌습유左拾遺)에서 물러나, 산시 성 화주華州(화현華縣)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있으면서 이 시를 지었다. 당시 장안은 수복했지만 난리를 평정하지 못했으므로 징병徵兵이 무자비하게 행해졌다. 두보는 이때 낙양에서 화주까지 여행하고, 「신안리」 「동관리」 「석호리」의 ‘삼리三吏’와 「신혼별」 「노인별」 「무가별」의 ‘삼별三別’을 전후해서 지었다. 두보의 ‘삼리’ ‘삼별’은 실제의 견문을 토대로 전쟁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괴로움을 리얼하게 그린 명작이다. 특히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新樂府{」의 모델이 되었다. 낙양시에서 서안시까지는 철도 기준으로 약 390킬로미터인데(그 사이 거리: 낙양-(30킬로미터)-신안-(85킬로미터)-석호-(140킬로미터)-동관-(50킬로미터)-화주-(85킬로미터)-서안) 이 길은 중국 동서를 잇는 대동맥으로 지금은 국도 310, 철도 룽하이선?海線이 지나고 있다. 대체로 완만한 비탈길이 길게 이어진다. (본문 211~212쪽, 두보 「석호 아전」 해석 부분)
이백의 작품에 있어 최대의 특색은 그 웅혼한 기상에 있다. 이것은 그의 천재성과 개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작시作詩에 있어 자잘한 수식어에 얽매이지 않았고 대구를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장시長詩든 단시短詩든, 마치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적어 내려간 것 같지만, 사실은 그의 인상과 감정을 정확하고 훌륭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이백의 이러한 낭만적 태도는 자연스럽게 당시唐詩 이전 수백 년간 가중되어 온 시가에 대한 여러 가지 구속(격률格律)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시는 모두 1,000수가 넘지만 율시는 100수가 못 된다. 이백은 악부의 정신과 언어에서 가장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시집 가운데 악부는 약 140수가 있으며, 율시?고시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악부의 변형이다. (본문 331쪽)
저자
두보
두보는 성당시대(盛唐時代) 때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렸다. 허난 성 궁현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두보는 각지를 방랑하며 이백 등의 시인을 만나기도 했다. 널리 인간의 심리, 자연 가운데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했으며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리기도 한다.
역자
지영재
1936년에 출생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성립사범대학 국문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귀국하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육군사관학교, 단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에 출강하였으며, 단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하였다. 강의는 주로 당시(唐詩)와 사곡(詞曲), 중국문학사(中國文學史) 등을 담당하였다.
저서로 고려의 문인 익재 이제현의 여행과 그의 시 세계를 음미하며 쓴 『서정록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편저로 『부생육기』, 『실학총서 지봉유설』(초역), 『중한성어소사전』(공편)과 『중국시가선』 등이 있다.
『봄의 강, 꽃, 달, 밤』은 초심자를 위하여 『중국 시가선』 558수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52수를 뽑아서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엮은 입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