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든 공상과학소설의 대부,
미스터리와 철학을 결합해 특별한 탐정 소설을 완성하다!
체코 문학사 천 년 동안 체코인들의 가장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은 작가 카렐 차페크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깊은 철학적 사유와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 주며 철학자, 저널리스트, 번역가 및 평론가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해 체코 문화의 선도자 역할을 감당해 온 체코의 ‘국민 작가’다. 그는 1917년부터 신문사에 다니며 칼럼과 기사를 쓰는 한편 소설, 희곡, 수필,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썼다.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문명의 발달로 인한 폐해와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며 체코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이러한 차페크의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굉장히 다양하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연민과 현실 인식을 다루는 철학적 작품이다. 또 하나는 『도롱뇽과의 전쟁』, 「R.U.R」, 「곤충 극장」, 「마크로풀로스의 비밀」 등과 같은 유토피아적 소설과 희곡들이다. 이 작품들이 당시 유럽 전역에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그는 오늘날 공상과학소설의 대부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차페크가 1928년, 굉장히 독특한 형식의 단편 소설을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한다. 온갖 희한한 미스터리를 담은 48편의 소설들은 그다음 해에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라는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서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선보이며, 깊은 철학적 사유를 유쾌한 추리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어 미스터리를 철학의 반열로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이 위대한 작가의 인간에 대한 성찰과 독보적인 발상, 천재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유머와 위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사건, 익숙한 추리 소설의 문법,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로 나아가는 독특한 일상 미스터리 24편
인정받는 대(大)시인 레오나르트 운덴에게 가난하고 나이 든 여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 된 자신의 외동아들 프랑크 셀빈이 이모 집에 침입해 돈을 훔치고 이모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친절한 시인은 자신이 사건을 제대로 알아보겠노라 약속하고, 실제로 범인 수사와 재판 과정에 허점이 많은 것을 발견한다. 그는 프랑크 셀빈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고, 사회의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우는 그에게 ‘진리의 기사’, ‘양심의 목소리’라는 별명이 붙는다. 7년이란 시간 끝에 결국 셀빈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레오나르트 운덴의 명예는 더욱 높아진다. 어느 날, 교도소에서 나온 셀빈은 시인을 찾아와 그에게 오히려 대가를 요구하는데……. 「셀빈 사건」의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한편 「배우 벤다의 실종」에서는 벤다라는 연극배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그 누구도 벤다의 행방을 알지 못하고, 이에 평소 벤다의 팬을 자처하며 종종 그의 술값을 내 주곤 했던 외과 의사 골드베르크가 직접 그를 찾아 나선다.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의 집에 있다가 새벽에 나가 그대로 종적을 감췄다는 것, 이때 아무 옷도 걸치지 않고 오직 손가방 하나만 들고 나갔다는 사실뿐이다. 사태는 미궁에 빠지고,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배우로 추억한다. 그리고 한 달 뒤, 단서를 잡은 골드베르크는 누군가를 찾아가 “벤다는 진정한 예술가였어요!”라며 고함을 지른다.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정의로 심판하는 자는, 그리고 심판받는 자는 누구인가.
각 단편마다 미스터리가 있고, 이를 푸는 탐정 혹은 경찰이 등장한다. 범인은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차페크는 일상적인 삶에서 미스터리를 포착하고 이를 풀어가면서, 구질구질한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넘어서 절대적 진리와 정의에 대한 물음에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무겁고 심각하기보다 시종일관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재미있게 풀어내 맛깔나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탐정 소설’을 만나는 기쁨을, 기발한 발상과 진중한 주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을 읽는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일반 탐정 소설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들은 범죄와 탐정 외에도 주로 인본주의, 정의 그리고 진리에 대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차페크는 범죄의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것을 고려하지만 (…) 사람들의 심리와 도덕에 더 관심을 보인다. 바로 이 점이 차페크 단편들의 핵심이다. 그러나 비록 강력한 작가의 심리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차페크의 이야기들은 아주 훌륭하고 매력적인 범죄 이야기들이다. 그의 단편들은 빼어난 예술 작품들이다.
-김규진, 「해설」 중에서
“나의 창작의 원천은 카프카, 하셰크, 그리고 카렐 차페크다. 차페크는 전체주의 세계의 섬뜩한 미래를 예견한 소설들을 쓴 첫 유럽 작가다. 그의 문체는 매력적이고 심오하다.”
_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차페크의 소설은 경이 그 자체다.”
_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
저자
카렐 차페크
카렐 차페크는 1890년 1월 9일, 체코 북부 크라코노셰 지역의 말레스바토노비체에서 시골 마을 의사인 아버지와 감수성이 풍부한 어머니 사이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두 살 위의 형 요세프 차페크와는 어릴 때부터 각별한 우애를 나누며 희곡과 단편을 공동 집필하는 등 평생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 한편 네 살 위의 누이 헬레나는 훗날 피아니스트 겸 전기 작가가 되어 카렐과 요세프의 전기를 집필한다.
베를린과 파리의 대학 유학을 거쳐, 1915년 25세의 나이로 카렐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7년부터 신문사 「나로드니 리스티(Narodn? listy)」에서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단편집 『길가 십자가』를 시작으로 소설, 희곡, 신문 기사, 수필,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썼다. 1920년에는 형 요세프와 공동 집필한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으로 오늘날 보통명사가 된 ‘로봇’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탄생시켰다. 이 공연은 연극 무대 사상 최초로 등장한 인조인간이라는 존재로 유럽 전역에 거센 파란을 일으켰고, 차페크는 큰 성공을 거두며 인기 극작가로 부상한다. 1921년 체코의 유력 일간지 「리도베 노비니(Lidov? noviny)」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긴 차페크는 이후 작품 안팎으로 체코 민주주의와 반(反)파시즘의 선봉장이자 문화적 선각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여러 번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나치스 독일에 저항하는 정치 성향 때문에 끝내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1938년 12월 25일 인플루엔자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 철학 소설 3부작 『호르두발』, 『별똥별』, 『평범한 인생』과 『도롱뇽과의 전쟁』, 희곡 「R.U.R」, 「곤충 극장」, 「마크로풀로스의 비밀」 등이 있다.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는 차페크가 1928년 「리도베 노비니」에 연재했던 작품을 모아 출간한 ‘주머니 이야기’ 시리즈 두 권 중 하나로, 일상적인 미스터리를 철학의 반열로 끌어올리며 그 독창성은 물론 차페크 특유의 경쾌한 유머를 살렸다는 호평을 받는 작품이다.
역자
김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러시아어과에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체코 프라하 카렐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체코 카렐 대학교 한국학과 교환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명예교수로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부총장과 동유럽학대학장을 지냈다. 한국동유럽발칸학회 회장, 세계문학비교학회 부회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대한민국오페라연합회 상임고문 등을 맡았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밀란 쿤데라』, 『카렐 차페크 평전』, 『일생에 한 번은 프라하를 만나라』, 『체코현대문학론』, 『프라하-매혹적인 유럽의 박물관』, 『여행 필수 체코어회화』, 『여행 필수 슬로바키아어 회화』, 『러시아·동유럽 문학·예술기행』 등이 있고, 번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별의 왈츠』, 카렐 차페크의 소설 『별똥별』 외 다수의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