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사색은 고달픈 세상에서 제정신 차리고 사는 데 힘을 보태며,
아득한 절망의 늪에 빠져 무기력해진 경우에는 무력감을 치유할 해독제가 되기도 한다.
_버트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중에서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가 초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빠지게 되는 끝 모를 열등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멸시당한 후 느끼는 불쾌감, 그리고 자신을 멸시한 대상에게 품는 증오감……. 이러한 느낌들이 우리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슬픔의 감정이다. 갈수록 복잡해져 가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쁨보다 슬픔의 감정을 더 많이 겪을 수밖에 없는데, 이 슬픈 감정은 삶의 의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우리를 실의에 빠뜨리고 때로는 삶의 의욕마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한다.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는 스피노자는 자신의 대표작 『에티카』를 통해 우리가 슬픈 감정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조언해 준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상처받은 이들이 스스로 슬픔을 치유해 내고 끝내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고심했던 사유의 흔적들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티카』는 기하학적 정리와 증명으로 둘러싸여 있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데다가, 그래서 등장한 여러 해설서들 역시 난해한 철학 용어들로 뒤덮여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은 스피노자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에티카』를 기존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흥미롭게 풀어 준다. 옛이야기 같은 풍부한 예시나 비유, 스피노자와의 가상 대화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스피노자 철학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1. 내용
철학사의 뒷골목에 버려져 있던 욕망의 재발견!
이성은 욕망의 조력자이며, 감정은 욕망의 표현이다.
전통적으로 욕망은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욕망에 대한 찬미는 곧바로 더러운 욕망에 물든 인간, 특히 성적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인간의 고귀한 특성은 오직 맑고 투명하고 청명하며 깨끗한 이성에 있고, 욕망은 이성의 고결한 활동을 방해하는 불결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욕망은 서양 사상사 거의 전 기간을 걸쳐 뒷골목에 버려졌다. 플라톤은 우리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비유했다. 한 마리 말은 ‘욕망’이고, 다른 한 마리는 ‘의지’이다. 그리고 마차 위에서 고삐를 꽉 붙잡고 있는 것은 ‘이성’이다. 항상 정도(正道)를 지향하는 이성이 의지에게 명령을 내려 자유로운 영혼의 욕망을 조절하게 해야 아무 탈 없이 정해진 길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이성 중심주의’는 플라톤 이후 철학사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스피노자는 플라톤의 비유를 나름대로 수정하여 인간의 영혼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의 영혼은 이성과 감정과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혼의 본질은 이성이 아닌 욕망이라고 말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마부였던 이성이 스피노자 철학에서는 말이 되어 마차를 끌어야 했고 욕망이 새롭게 고삐를 쥐게 되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욕망이 늘 영혼의 중심에 있고, 이성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영혼의 브레인이며, 감정은 욕망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를 나타내는 눈금일 뿐이다.
자기 보존의 욕망, 즉 ‘코나투스’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지배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욕망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일반적으로 욕망이라는 단어는 저급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욕망은 매우 긍정적이며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우리 영혼의 소중한 일부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욕망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라며, 이러한 삶에 대한 욕망을 ‘코나투스’라고 명명했다. ‘자기 보존의 욕망’이라고도 하는 코나투스야말로 스피노자 사상을 설명해 주는 핵심 키워드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주요 화두인 감정도 코나투스와 연관된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크게 기쁨과 슬픔 두 가지로 나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결합’의 관계를 맺는다면 기쁨이 찾아오고, 반대로 파괴적인 ‘해체’의 관계를 맺는다면 슬픔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쁨은 삶의 의욕으로서 밝게 빛나는 가슴속의 촛불과 같이 우리의 코나투스를 증진시키는 정서를 말하고, 슬픔은 코나투스의 촛불을 당장이라도 꺼 버릴 것처럼 삶의 의욕을 위협하는 정서이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감정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수동적인 슬픈 정념을 능동적인 기쁨으로 바꿔 주는 이성
감정의 족쇄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 도정
우리 감정 대부분은 외부 대상의 자극에 의해 수동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수동적인 감정을 일러 ‘정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크게 경쟁심, 경외심, 경멸이라는 세 개의 감정의 틀로 스피노자가 말한 슬픈 정념을 설명한다. 명예심, 허영심, 자기 멸시, 열등감, 오만 등 거의 모든 부정적 정서들은 ‘미움의 삼중주’ 선율이 만들고 조합해 낸 슬픈 화음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슬픈 정념에서 벗어나 기쁨으로 향할 수 있게 인도해 주는 것은 ‘이성’이며, 이러한 과정은 감정의 족쇄에서 해방되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 도정이라고 말한다. 욕망과 무지만을 두 손에 꼭 쥐고 태어난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경험을 통해 서서히 이성을 일깨우게 되는데, 그 이성이 크게 자라나 자신의 행동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기쁨과 자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감정으로 쉽게 상처받는 우리를 위해
스피노자가 전하는 가슴 따뜻한 위로와 조언
이 책은 지난날을 돌이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서 시작된다. 지나가 버린 선택에 대한 죄책감으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스피노자는 그 당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니 더 이상 후회하지 말라고 다독여 준다. 이 책에는 어쩌면 스피노자가 『에티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진심이 담겨 있다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슬픔을 극복하고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스피노자의 가슴 따뜻한 위로와 조언 말이다. 전염력이 극히 강한 타인의 욕망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며, 끝내 그 아래 간직된 당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면, 감정과 욕망의 주인이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의연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힘과 용기를 준다.
2. 추천사
철학은 골치 아프고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지은이는 조붓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로 철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끌어 간다. 딱딱하고 어렵다 여기는 스피노자조차 어느 틈에 우리 곁으로 우리 삶으로 스며들어 만나고 느끼게 해 주는 마력을 지녔다. ‘철학 공부하는 의사’인 지은이는 철학만 이론적으로 파고드는 기존의 철학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철학의 즐거움을 사랑스럽게 들려준다. 철학이 이토록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준다. 매력적이다!
― 김경집(인문학자, 『인문학은 밥이다』·『엄마 인문학』 저자)
스피노자는 요새 ‘핫(hot)’한 철학자다. 숱한 베스트셀러들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해하기가 무척 버거운 사상가다. 그럼에도 그의 철학은 인기를 끈다. 막막한 미래, 신산스러운 현실을 헤쳐 갈 지혜를 안겨 주는 까닭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 철학의 고갱이인 『에티카』를 울림 크게 풀어 준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 내 삶을 구원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청춘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 안광복(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수업』 저자)
저자
심강현
1968년생. 의과 대학 시절 정신과학과 심리학 강의를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을 다루는 의학 과목들로 꽉 짜인 의대 수업 중에서, 유독 정신과학만은 인간의 사유와 정신, 그리고 심리 및 행동 전반까지 모두 포괄하는 매우 독특한 별개의 학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시작된 철학과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 공부는 현재 진료와 인문학 수업을 병행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여러 철학자 중에서 특히 스피노자와 니체를 좋아해 주로 그들의 원전을 중점적으로 읽으며 여러 철학 강좌 수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자는 스피노자를 읽으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을 두 가지 정도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며, 두 번째는 모든 아름다움은 그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스피노자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미움과 원한에서 벗어나 드디어 사랑과 관용을 실천할 수 있는 자신만의 삶의 태도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완성을 위한 과정은 늘 우리를 괴롭히던 슬픔을 딛고 끝내 기쁨을 잉태시킬 수 있는 삶의 과정에 숨겨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스피노자 문체의 엄밀함을 잠시 내려놓은 이 책은 그 뒤에 숨겨진 스피노자의 따뜻한 가슴속 체온마저 느끼게 한다.
현재 의사로서 신체와 우리 정신의 관계, 특히 현대 철학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는 감각의 생리학적 작용기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궁리출판, 201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