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_80
쾌락
IL PIACERE
저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1863년 이탈리아 페스카라의 유복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원래 성은 달랐지만 귀족이었던 외삼촌 안토니오 단눈치오에게 유산을 물려받고 그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 1874년부터1881년까지 프라토 지방의 치코니니 기숙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1879년 아버지의 후원으로 첫 시집 『이른 봄(Primo Vere)』을 출간하게 되고 크게 성공을 거뒀다. 1881년 로마로 이주해서 로마대학 문학부에서 공부했다.
1883년 갈레세 공작 가문의 마리아 아르두앙과 결혼하여 귀족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실현했다. 마리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단눈치오의 여성 편력 때문에 1890년 파경을 맞았다. 1887년에 만난 바 르바라 레오니와 1892년까지 고통스러운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쾌락』과 단눈치오의 다른 작품들에 계속 등장했다. 1894년 여배우 엘레오노라 두세를 베네치아에서 만났다. 엘레오노라에게 많은 영감을 받아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시기에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으며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895년 초인 사상을 다룬 『바위 위의 처녀들(Le vergini delle rocce)』을 발표했으며, 이후 니체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초인 시학을 완성했다.
1897년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국수주의자들과 함께 연설가로 활동하며 군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군중들을 선동했다. 시인에서 군인으로 변신해서 52세의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1916년 비행기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지만 예언자적 시인, 영웅적 초인으로 추앙될 정도로 인기는 절정에 올랐다.
전쟁 후 몬테네보소 공작 작위를 받지만 파시즘 시기에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을 불신해서 가르다 호수의 별장에 칩거하다가 1938년에 사망했다. 단눈치오의 작품들은 현대 이탈리아 문학뿐만 아니라 토마스 만이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역자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비교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탈리아 정부가 주는 ‘국가번역상’을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의 교수로 재직했다. 이탈로 칼비노, 프리모 레비, 알베르토 모라비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 카를로 콜로디의 『삐노끼오의 모험』과 잔니 로다리의 그림책들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