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신화를 소재로 빚어낸 그리스 문학의 정수
그리스 비극은 전통 신화를 소재로 일정한 형식에 맞춰 극화하여 연극 축제 때 무대에 올린 공연 예술이다. 여기에서 전통 신화란 비극 장르가 생겨난 기원전 6세기 말 이전에 서사시나 서정시 등의 장르에서 서사된 신화를 말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그리고 서사시권 다른 서사시들이 바로 비극 시인들이 작품 소재를 발굴했던 주요 저장소였다. 비극 시인은 전통 신화 소재를 재활용했지만, 소재로 삼은 신화의 중핵을 파괴하지 않았다. 신화를 소재로 극화할 때 전통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신화를 재활용해 극화했던 것이다.
비극은 그리스 역사에서 정치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원숙했던 기원전 5세기에 나온 그리스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시학』 제26장에서 비극을 가장 우수한 문학 장르라고 말한 바 있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꼽히며, 그중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을 비극에 부여한 최초의 사람으로서 ‘비극의 창조자’로 불린다.
“인간은 자신의 죄과에 대한 신의 응징과 고난을 통하여 지혜에 도달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저주받은 가문의 역사를 작품의 줄거리로 삼아 그의 근본 사상인 “인간은 자신의 죄과에 대한 신의 응징과 고난을 통하여 지혜에 도달한다”를 표현했다. 인간의 죄과에 대한 신의 응징은 반드시 당대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들 손자 대에 가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 사상이 가장 원숙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오레스테이아 3부작이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아트레우스 가문과 특히 오레스테스 및 엘렉트라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 등의 세 작품이 내용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아트레우스 가문의 혈족 살해의 저주와 복수 이야기를 비극의 형식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신과 운명, 국가와 개인의 문제에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아가멤논」: 트로이아 원정을 떠나기 위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아를 정복한 후 귀향한다. 딸의 희생에 분노한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계략을 꾸며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추방당했던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귀향하여 누나 엘렉트라를 만나고, 계략을 세워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살해해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자비로운 여신들」: 어머니를 죽여 복수의 여신들의 추격을 받게 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의 명령대로 도시 국가 아테나이로 가서 아테나 여신에게 탄원한다. 오레스테스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구원된다. 복수의 여신들은 재판 결과에 분노하지만, 아테나 여신의 말에 설득되어 자비로운 여신들로 변모한다.
현존하는 유일한 그리스 비극 3부작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기원전 458년 대(大)디오뉘시아 제전에서 공연되어 13번째 우승을 거둔 작품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3부작은 신의 뜻을 단순히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절대적인 규범에 속박당하면서도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 존재의 근본을 장엄한 극으로 창조해 낸 작품이다. 아버지가 딸을, 아내가 남편을,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패륜적인 사건들이 연속되지만, 누가 옳고 그른지 즉 정의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 나타난 이야기 유형들은 전통 신화에서는 물론 비극 장르에서도 반복되고 변주되는 유형이다. 이 이야기 유형은 귀향, 발견, 계략, 복수, 희생, 추방, 탄원, 구원의 유형을 말한다. 이러한 유형들이 결합하여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플롯이 구성된다. 여기에는 반전과 전도의 원리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복자가 패배자가 되고, 계략을 사용한 자가 계략에 당하고, 희생시킨 자가 희생 제물이 되고, 복수한 자가 복수당하고, 그리고 탄원하는 자가 구원받는 자가 된다.
영국 시인 스윈번(A. C. Swinburne)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인간 정신의 최대의 성취”라고 극찬했고, 괴테(J. W. von Goethe)는 훔볼트(K. W. Humboldt)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가멤논」을 “예술품 중의 예술품”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짜놓은 양탄자”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그리스 비극 3부작으로 3부작의 대표적인 본보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3부작의 형식으로 우주적 힘을 상징하는 신들의 갈등과 투쟁, 가문의 저주와 실현, 국가의 위기와 왕가의 멸망, 문명 제도의 설립 등과 같은 거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번에 을유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그리스·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정암학당의 젊은 고전학자 김기영 박사가 그리스어 원전을 새롭게 번역하여 그리스 비극의 진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비극 특유의 영역이 인간의 비참함을 가장 암담한 상태에서, 그리고 인간의 위대함을 가장 찬란한 상태에서 보여 주는 것이라면, 아이스퀼로스는 비극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모든 비극 작가 중에서 가장 진실하게 비극적이다. 그 누구도 인생의 불협화음으로부터 그처럼 울려 퍼지는 음악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이스퀼로스의 극작품에는 체념이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대한 정신이 위대하게 재앙을 마주 대했다. ― 이디스 해밀턴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시카고 대학 선정 그레이트 북스
클리프트 패디먼 선정 <일생의 독서 계획>
저자
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는 기원전 525/524년 아티카의 데모스 엘레우시스에서 에우포리온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기에 아테나이에서 참주 정치가 민주 정치로 바뀌는 정치적인 급변을 경험했으며,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 그리고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비극 시인이자 정치사상가로서 아이스퀼로스는 서정 시인 핀다로스, 비극 시인 코이릴로스와 소포클레스 등과 교류했다. 시칠리아에 건립된 식민 도시로 외유를 떠나 그곳 엘리트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쉬라쿠사에는 히에론 1세의 초대를 받아 두 번이나 여행했다. 기원전 476/475년의 첫 번째 방문 때는 「아이트네의 여인들」을 무대에 올려 도시 국가 아이트네의 창건을 경축했다. 두 번째 방문 때는 기원전 472년 공연한 「페르시아인들」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기원전 458년에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공연하고 나서 다시 시칠리아를 방문했다가, 기원전 456/455년 겔라에서 사망했다. 그곳에 세워진 묘비명을 읽어 보면, 놀랍게도 아이스퀼로스가 위대한 비극 시인이라는 사실은 빠져 있고 마라톤 전투에서 싸웠다는 사실만 적혀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기원전 499/498년에 비극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데뷔하고 나서 15년 만인 기원전 484년 비극 경연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이는 소포클레스가 20대에 우승한 것과 비교하면 늦은 나이에 첫 우승을 거머쥔 셈이다. 한 전거에 의하면, 대(大)디오뉘시아 제전의 비극 경연에 19번 참여하여 13번 우승했다고 한다. 아이스퀼로스가 사망한 후에 도시 국가의 결의로 그의 비극이 살아 있는 작가의 비극들과 경연되기도 했다. 아이스퀼로스는 70~90편에 달하는 작품들을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작품은 모두 7편으로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제외하면 「페르시아인들」, 「탄원하는 여자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역자
김기영
서양고전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 과정 서양고전학 전공에서 석사 학위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소포클레스 양분 구성 드라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암학당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오이디푸스 왕 외』, 『오레스테이아 3부작』, 지은 책으로 『신화에서 비극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 『그리스 비극의 영웅 세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