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 “오소리감투가 둘이다”
다종다양한 우리 생물들을 다채로운 우리말로
전하는 전래동화 같고, 속담 풀이 같은 이야기 생물책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숨어 있고 스쳐 지나치기 쉬운 뭇 생명들이 펼치는 흥미롭고, 기이하고, 또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낳은 알들에게 산소가 풍부한 물을 흘려보내며 살뜰히 보살피는 문어, 온몸으로 양분을 흡수하며 우리 몸속에서 7미터나 자랄 수 있는 촌충, 실제로는 곰팡이를 먹을 뿐이지만 책을 망치게 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책벌레, 숙주로서 우리만큼이나 말라리아의 원충에 걸려 기이한 행동을 벌이며 고생하는 불쌍한 학질모기, 너구리 똥도 져 나를 만큼 평화롭고 사회적인 동물인 오소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여러 생명들의 한살이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특히 과학적인 내용을 풍부한 우리말 어휘를 구사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한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용천지랄(꼴사납게 마구 법석을 떨거나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나 ‘야마리(얌통머리와 같은 뜻으로 마음이 깨끗하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의 ‘얌치’를 속되게 표현한 말)’와 같은 우리말의 재미난 표현이나 ‘굴밤(도토리)’, ‘구덕(구덩이)’ 등의 방언, ‘엉세판(매우 가난하고 궁한 것을 이르는 말)’이나 ‘저지레(일이나 물건에 문제가 생기도록 해서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와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표현들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고 다양한 어휘들을 사용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우리말이 지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책에서는 최대한 글맛을 살리기 위해 이러한 단어들을 거의 대부분 살리는 한편 별도의 각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우리말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지식은 각각의 생물들과 연관된 풍부한 속담과 관용어구를 설명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먹이가 부족해질 경우 같은 종끼리도 서로 잡아 먹는 갈치의 속성을 설명하면서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는 속담도 같이 이야기한다. 이 속담은 친구들 끼리나 혹은 친척 간에 서로 싸움질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비슷한 뜻으로 “망둥이 제 동무 잡아먹는다”라는 속담도 함께 소개한다.
아울러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이 대거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이 책만의 특징이다. 까나리액젓으로 유명한 까나리와 구이로 만들어서 서민들의 술안주로 즐겨먹는 양미리는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생물 분류 과정에서 목(order) 단계부터 서로 다른 종이다. 까나리와 양미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지느러미인데, 까나리는 등지느러미가 매우 길어 등 전체를 덮고 있는 반면에 양미리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뒤쪽에 아주 치우쳐 서로 대칭으로 달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물에 사는 뱀인 무자치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무자치는 파충류임에도 불구하고 물에서 사는데다가 심지어 알을 뱃속에서 품어 새끼를 낳는 난태생이다. 무독성에 순한 편이어서 공격적이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겨울이 혹독한 우리나라 날씨에 적응한 몇 안 되는 뱀 중 하나가 바로 무자치이다.
도토리거위벌레, 쌀바구미, 옴진드기, 촌충, 무자치, 금낭화, 잇꽃, 새삼 등 흔히 보기 힘들거나 독자들이 그 모습을 알기 어려운 생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세밀화들이 함께 실려 있는 것도 이 책만의 장점이다.
“그의 저서는 과학이라면 일단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일반인들에게 과학이 수식으로 된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교수신문」
나쁜 생물은 없다, 다만 별난 생물이 있을 뿐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여러 특별한 생명들 이야기
책에는 여러 다양하고 흥미로운 생물들이 소개되는 한편, 우리의 기존 상식을 뒤집거나, 잘못된 상식을 깨트리거나, 혹은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식충식물이라 하면 우리는 식물이 벌레를 잡아서 영양분을 삼는다고 막연히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식충식물은 엄밀히 따지면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식충식물도 광합성을 하지만 부족한 영양분의 일부를 곤충을 통해 보충할 따름이다. 식충식물이라고 벌레를 잡는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네펜테스의 한 종류는 작은 포유동물인 산지나무두더지나 쥐와 공생하기도 한다. 이들이 네펜테스 뚜껑에 생성되는 단물을 핥아 먹는 사이 그 아래 주전자 모양을 닮은 포충엽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 이것을 양분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위궤양을 일으키는 성가신 병원균으로만 알려져 있던 헬리코박터균도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세균이다. 헬리코박터균이 위산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배고픔을 알리는 공복 호르몬인 그렐린과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는 식욕 억제 단백질인 렙틴의 양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이 세균들이 아예 없으면 호르몬 조절을 하지 못해 과체중이 될 수도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자연이란 오묘해서 “쓸데없는 것은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불교와 기독교에 공통적인 상징물로 쓰이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불교에서 흔히 쓰는 불구(佛具)인 풍경, 목어, 목탁은 모두 물고기를 상징한 것이다. 큰 나무를 잉어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속을 파내어 만든 목어나 풍경 끝에 달려 있는 물고기 등은 언뜻 봐도 물고기를 연상시킬 수 있다. 목탁 역시 물고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목탁에 나 있는 뚱그런 구멍 둘이 물고기의 눈이고, 손잡이가 바로 꼬리지느러미에 해당한다.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기독교 신자임을 나타내 주는 표시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 기독교 신자들이 모여들던 카타콤 같은 곳에서도 암호처럼 물고기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에는 각각의 생물들에 대한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상식을 풍부하게 해주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저자의 이러한 해박하고 재미난 글들을 읽다 보면 과학과 문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학문이 결국 하나로 모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러 갈래로 다양하게 뻗어나간 생물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하나의 세포나 아미노산의 출현에 이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저자
권오길
쉽고 재미있는 과학 대중 교양서를 집필한 1세대 학자로 ‘과학계의 김유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토속적이고 구수한 입담을 구사한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한국간행물 윤리상 저작상, 강원도문학상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이후 수도여중고, 경기고교, 서울사대부고 교사를 역임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꿈꾸는 달팽이』 『인체 기행』 『생물의 죽살이』 『생물의 다살이』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 『원색한국패류도감』 『하늘을 나는 달팽이』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생물의 애옥살이』 『생명 교향곡』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