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_75
러시아의 밤
RUSSKIE NOCHI
파우스트와 그의 동료들이 서구의 문명과 역사를
체스 말처럼 다루며 토론하는 산업혁명기의 천일야화
『러시아의 밤』은 을유세계문학전집 75번째 작품으로 국내 초역으로 소개되는 블라지미르 오도예프스키의 대표작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이야기와 여러 철학적 담론들이 펼쳐지는 이 작품은 19세기판 천일야화라 할 수 있다. 비록 천 일에 못 미치는 아홉 번의 밤을 보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철학적이면서도 현학적인 대화와 서구 문명의 병폐를 꿰뚫는 작가의 시선은 천일야화에 버금가는 깊이를 담고 있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소개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된 이 작품은 작가가 이야기 속 인물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주제들을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을 길고 긴 러시아의 밤을 닮은 철학의 밤으로 흥미진진하게 안내한다. 이 책의 사유적 깊이는 첫 장면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무도회장에 참석한 로스치슬라프는 따뜻하고 안락한 실내에서 불과 세 치 남짓 떨어진 창밖으로 거센 북풍이 휘몰아치는 걸 바라보며 불의 발견에서부터 건물을 짓고 창틀을 만들기까지 인류의 발전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는 이른바 계몽된 문명 시대에 도달한 인류가 과연 더 행복해졌는가를 자문하다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검은 고양이를 늘 옆에다 두고 현미경으로 작은 딱정벌레를 관찰하고 몇 시간씩이나 손톱을 다듬기도 하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친구 파우스트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이들 친구들은 파우스트의 동료들이 남긴 수기를 읽으며 학문과 예술, 철학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파우스트가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원고의 내용은 모두 하나같이 신비롭다. ‘기사 잠바티스타 피라네시의 작품들’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건축의 설계도면이 실린 책에 붙잡혀 실제로 설계도면이 건축되기 전까지 영생에 가까운 시간을 살면서 계속 저주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통해 파우스트와 친구들은 예술에 있어서 유익한 것과 무익한 것이란 무엇인지, 과연 유익한 것만이 예술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즉흥시인’ 역시 예술의 지난한 과정과 고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기계적이고 효용적인 관점에서 예술을 접근하는 시각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즉흥시인’의 주인공은 악마 같은 능력을 지닌 박사에게 쉽게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박사는 대신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런 능력을 갖게 해준다는 말에 오히려 고마워한다. 주인공은 이내 뛰어난 시를 지어내게 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듣게 되면서 괴로움에 빠진다. 박사의 제안으로 인해 그는 창작의 고통이 곧 기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구의 적도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질산염과 유황,
석탄을 가득 채운 다음 불을 붙여 터트린 듯한
놀라운 이야기들의 향연
이 책에는 예술뿐만 아니라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계몽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도 거듭하고 있다. 파우스트가 친구들에게 전하는 ‘이름 없는 도시’라는 이야기는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이다. 이익은 인간의 모든 행동의 본질적인 원동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신대륙에 세운 이름 없는 도시는 벤담의 공리주의 사상에 맞춰 도시를 운영해 나간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최선의 이익을 내는 것을 우선으로 삼던 도시민들은 처음에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나간다. 그들은 이웃 식민지를 착취하며 발전해 가지만 점점 도시가 복잡해지고 여러 이익 집단들이 서로 상충되는 의견을 보이면서 분열해 나간다. 결국 폭동이 일어나고 서로 저마다의 이익만 추구하던 이름 없는 도시는 완전히 몰락해 버리고 만다.
‘최후의 자살’이라는 다른 이야기에서는 맬서스가 예견한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인구수에 의해 기술이 최고조로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집단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멸망하게 되는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인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식량 생산이 인구수를 따르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생명을 경시하는 경향이 만연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절망의 예언자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인류를 집단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회유한다. 이들에게 회유된 인류는 적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를 뚫은 다음에 그 속에 질산염과 유황, 석탄 등을 가득 채우고는 불을 붙여 지구를 터트리고 만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문명에 기대어 편리함만을 추구했던 우리들에게 서늘함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저자의 시각이 무조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는 통일적인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저자는 새로운 세기를 책임질 수 있는 시각의 전환을 주장한다. 절대 왕정 지지자이면서도 농노제 폐지와 공개 재판 제도, 감옥 개혁 등을 주장하며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속기를 배우기도 했던 저자 오도예프스키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디스토피아에서 길어 올린 유토피아적인 전망을 맛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