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카프카의 주요 중단편 소설들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수록 작품은 모두 카프카가 생전에 발표한 것들로,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나머지 작품은 단편집 『시골 의사』와 『단식술사』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역자 김태환 교수(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는 원문에의 충실성에 대한 요구와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잘 읽혀야 한다는 요구를 최대한 조화시킨다는 원칙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이 책을 통해 카프카가 만들어 낸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 세계와 비합리적 세계의 대립 속에 드러나는
부조리하고도 광적이며 환상적인 무의식 세계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거대한 갑충으로 변신함으로써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방 안에 갇히고 만다. 벌레로서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가족의 경제 상황에 대한 걱정뿐인 그레고르와 현실적인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 그레고르 가족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선고』에서 게오르크 벤데만은 자신의 독립과 성공이 아버지와 친구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결혼 초대 편지를 쓴 다음, 편지를 들고 아버지의 방을 찾아간다. 그 순간 아버지의 반격이 시작된다.
무엇보다 『변신』과 『선고』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합리적 의식 세계와 비합리적 무의식 세계의 대립이다. 합리적 의식 세계를 빙산의 일각으로 보이게 만들 만큼 광대한 비합리적·충동적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발견이 20세기 정신사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면, 카프카는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완벽한 소설적 표현을 제공한 최초의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프카는 현대 소설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소설을 넘어 연극, 더 나아가 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의 유대-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프카와 동시대 프라하 출신의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일 것이다. 카프카가 처음 작품 발표를 시도하던 1910년대 초에 릴케는 이미 프라하를 떠난 지 오래였고, 시인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높이며 많은 후원을 받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카프카는 내성적이어서 거의 고립된 상태로 살아갔고, 프라하를 거의 떠나지 않았으며, 생계를 위해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서 근무하여 퇴근 후에나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는 릴케와 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라는 명성을 공유한다. 릴케가 20세기 시에 광범위하고 깊은 영향력을 미쳤다면, 카프카는 카프카를 제외한 20세기 소설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 소설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카프카는 소설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도전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험하는 가운데 이전까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던 것이다. 카프카의 뚜렷한 영향을 받은 작가로는 카뮈, 샤르트르, 베케트, 이오네스코, 로브그리예, 보르헤스, 마르케스 등이 있으며, 아도르노, 벤야민, 블랑쇼, 데리다, 들뢰즈 등 수많은 현대 철학자, 사상가들도 카프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 오고 있다.
나는 이 작가의 글에서 가장 고유한 방식으로 나와 관계되어 있지 않거나 놀라지 않았던 글은 결코 한 줄도 읽어 본 적이 없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자주 꿈의 성격 속에서 완전히 구상되고 형상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이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 냄으로써, 생의 이 기괴한 그림자놀이를 비웃고 있다. ― 토마스 만
서울대 권장 도서 100선
연세 필독 도서 200선
미국대학위원회 SAT 권장 도서
저자
프란츠 카프카
20세기 현대 문학의 선구자인 카프카는 1883년에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1년에 프라하 대학에 입학하여 화학, 법학, 문학을 공부하면서 1906년 법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교 시절인 1904년에 첫 작품『어느 투쟁의 기록』을 집필할 만큼 삶의 의미를 문학 창작에 두었으나 아버지의 강한 영향으로 법학 공부를 하였다. 졸업 후 프라하의 국영 보험회사 ‘노동자 산재보험 공사‘에서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글 쓰는 것을 병행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세 번이나 결혼을 통한 독립을 시도했으나 결혼이 가져오는 속박에 묶이지 않기 위해 생애의 대부분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한 후 ,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 요양소에서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임종 시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원고, 일기, 편지 등을 모두 불태워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작품과 문서 등을 상당 부분 편집, 출판하여 그의 문학 세계를 대중에게 알렸다. 카프카의 주요 작품으로는 『성』, 『변신』, 『실종자』, 『판결』, 『유형지에서』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표피적인 일상의 모습을 뛰어넘어 현실과의 긴장을 지속한 채 세상에 대한 끊임 없는 존재론적 통찰을 견지한다. 그는 세계가 총체적이자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없고 개인은 주관적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출구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직시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종속성, 전체주의의 폭력성, 관료주의의 부도덕성 등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총체적인 난맥에 묶인 개인이 세상과 적대적인 관계를 상정한 후,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외에도 카프카의 작품은 환상 문학적인 요소,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정신분석학적 접근 등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미완의 여백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는 20세기에 가장 많은 논문과 연구서가 발표된 저자 중의 하나다. 카뮈는 카프카를 실존적 인간의 효시로 보았다.
역자
김태환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대학에서 비교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푸른 장미를 찾아서?혼돈의 미학』, 『문학의 질서?현대 문학이론의 문제들』, 『미로의 구조?카프카 소설에서의 자아와 타자』 등이, 옮긴 책으로 페터 V. 지마의 『모던/포스트모던』, 한병철의 『피로사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선고 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