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말도 섞기 싫을 때, 『어느 작가의 오후』
퇴근길에 만난 얌체족이 미울 때, 『디어 라이프』
문득 아기의 심장 소리가 듣고 싶어질 때, 『두근두근 내 인생』
…일상의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소설에서 만난 당신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삶의 여러 순간들―외롭거나, 무료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즐겁거나―에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이나 선배, 혹은 스승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이 다가와 독자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보지만 앞에 앉은 얌체족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독자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이지만 또한 전혀 뻔하지 않은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떠올리며 소소한 일상과 이를 이겨내는 인물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바쁜 평일을 지나 한가롭지만 너무나 지루한 주말 동안 집에서 멍하니 있다가 불쑥 멋진 이성과의 불온한 상상이 찾아온다면 에쿠니 가오리의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로맨틱한 필드 워크가 도움이 될 것이다. 무늬만 대학생으로 사는 게 헛헛해지고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이 좋다. 매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지쳐 누군가와 말도 섞기 싫은 날에는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가 제격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오면서 문득문득 느끼는 감정의 기복에 따라 책에서는 맞춤형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밤은 짧고, 소설은 길다”라고 말하며 매일 밤 책을 펼쳐든다. 그동안 숙면용, 쾌변용, 대리만족용, 현실도피용, 허세용 등으로 책을 ‘남용’해 오던 저자는 소설 속에서 만난 수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에게 밤마다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책은 이러한 밀회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저자가 만난 인물들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고전이라 불리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안나와 브론스키 같은 문학사상 유명한 인물에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쓰쿠루 군처럼 근래에 ‘뜬’ 인물은 물론이고 앨런 베넷의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에 등장하는 여왕님에 이르기까지 국적과 계급, 인종을 초월한다.
이제 막 결혼한 여성 저자가 들려주는 이 같은 소소한 생활에서 겪는 경험담과 여러 고민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 등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동년배 여성들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울림으로 다가선다. 저자가 소설 속의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성 저자나 혹은 나이가 지긋한 저자의 시선과는 또 다르다. 저자는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서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네드라라는 인물을 발견하고 멋진 결혼 생활 이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에서는 같은 여성으로서 자신이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가 지금의 자신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감정을 섬세한 방식으로 이해한다. 여성에게 어머니는 넘어야 할 장벽이자 자신의 또 다른 미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한 여자』를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되짚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나서는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여성이라면 으레 고민하게 되는 아이를 낳는다면 어떨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이러한 감정과 해석은 다른 남성 작가들과는 다른 위안으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그러다 보니 저자가 책에서 뽑은 문장들 역시 여성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남성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같은 작품임에도 조금은 다르게 해석하고 바라보는, 이 지구상의 또 다른 반쪽의 눈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찾아오는 꽃이 필요한 순간들처럼
외롭거나 무료하거나 기쁘거나 슬플 때,
말없이 책을 펼치고 당신을 만나다
저자는 여러 소설에서 만난 인물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영감을 얻거나, 수다스러워진다. 또 소설 속 인물을 기억하거나, 혹은 그 인물들을 생각할 때마다 달뜨게 된다. 이 책의 목차도 이러한 저자의 감상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수백여 권의 소설을 읽고, 블로그에 감상문을 써온 저자는 이 책에 소개할 30권의 소설을 간추리는 데에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소비했다. 이렇게 고르고, 골라 선별된 이들 작품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같은 고전에서부터 더글라스 케네디의 『템테이션』 같은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김영하나 은희경, 김애란 같은 한국 작가들부터 에쿠니 가오리, 요시다 슈이치 같은 일본 작가들, F.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영미권 작가들까지 여러 국적의 작가를 총망라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단순히 책 내용을 소개하거나 등장인물의 분석과 비평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각각의 작품에 걸맞은 감각적 사진들을 배치해서 한 권의 사진집 같은 느낌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내용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든가 T.S. 엘리엇의 「메마른 인양선」 같은 시를 소개해 주거나 저자와 관련된 인터뷰 내용 일부를 글의 말미에 넣어 독자들이 좀 더 작품에 대한 감상을 다각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다각적으로 작품들을 바라보게 되고, 동시에 자신의 삶도 반추하게 된다.
<추천사>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팬이었다. 그의 블로그 ‘A room of One’s Own’을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들키지 않게, 즐겨찾기에 북마크를 해 두곤 몰래몰래 열어 보곤 했다. 여행을 떠난 도시의 호텔에서 그의 블로그를 읽다 잠들었고, 눈을 떠서는 지난밤 다 읽지 못한 그의 블로그를 계속 읽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읽어 주는 책과 더불어 부다페스트, 프라하, 런던, 암스테르담, 시애틀, 카이로, 상하이, 루앙프라방, 도쿄를 여행했는데, 그러니까 그는 나의 ‘책 읽어 주는 여자’였던 셈이다. 그녀가 가진 ‘책에 대한 감각’이 나는 너무 좋았고, 그가 모든 일을 그만두고 평생 책만 읽고 밑줄만 그으며 살면 좋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가 평생 여행만 다니기를 원하는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고백하자. 나는 단어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주의 깊게 짚으며 문장을 읽어 내리는 그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일이 즐거웠으며 그가 밑줄 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이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 최갑수(시인·여행작가)
저자
조안나
책이 유일한 친구라 좋아했고, 더 혼자 있고 싶어서 좋아했고, 지금은 다른 사람과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 좋아한다. 대학생 때 시작한 블로그를 십 년째 운영하며 책과 관련된 모든 일을 기록하고 저장하고 있다. 숙면용, 쾌변용, 대리만족용, 현실도피용, 허세용 등으로 책을 지나치게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 많은 곳은 끔찍이 싫어하지만 희한하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좋아한다. 현재는 잘 나가던 출판사를 관두고 새벽마다 트위터로 출근해서 전자책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업무일지를 쓰고 있다. 오랜 연애를 끝내고 한집살이를 시작한 후 한 남자와 매일 저녁을 함께 먹는 바람에 그나마 이어지던 관계들도 대폭 축소된 삶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십 대의 치기 어린 애독기를 담은 『달빛책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