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세계문학전집_69
우리 짜르의 사람들
LYUDI NASHEVO TSARYA
“우리 모두가 헤엄치고 있는 신의 세계에서 각각의 인간은 ‘특별한 경우’다”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 작가의 단편집
울리츠카야의 작품 속 인물들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히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인류 보편의 믿음을 증언한다. -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심사평
을유세계문학 69권으로 출간된『우리 짜르의 사람들』은 현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그녀는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의 주요 문학상을 모두 휩쓴 발군의 작가이자, 그녀의 소설은 출간 즉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제2회 박경리 문학상의 수상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울리츠카야는 사랑, 용서, 희생, 가족, 제도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주제로 삶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이 작품에서도 ‘작은 인간과 역사 속의 그의 삶의 운명’이라는 그녀의 주제 의식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히피와 떠돌이 개, 두 다리가 없는 술주정뱅이 상이군인, 결핵 환자, 장님 노인,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젊은 청년, 수학자, 간호사 자매 등 각 작품마다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 성격, 관계들은 하나의 전체적인 군상을 이루고, 그들이 모여 만드는 모자이크는 그 어느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작가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절망적인 슬픔을 견뎌내고, 삶의 무게에 휘둘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질박한 삶의 가치를 역설한다. 작가는 각 단편마다 일상 속 페이소스와 아이러니를 특유의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이는 사람에 대한 관심, 운명에 대한 연민, 고통에 대한 공감을 품고 있는 작가의 시선 때문에 날카롭지만 냉소적이지 않다.
특히 이 작품집은 지금까지 한국 독자들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소비에트 러시아 시대의 삶의 모습을 내밀하고도 상세하게 전달한다.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참담하고 힘겨운 시기를 거치면서도 삶을 영위해 나간 러시아 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상이군인과 그 가족의 삶의 모습,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 일반 소련 시민들이 최고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그의 죽음에 대해 취했던 태도,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의 궁핍한 러시아의 현실과 꿈을 상실한 러시아 청년들의 이야기 등을 가감 없이 진실하게 접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러시아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프랑스, 미국, 일본 등지로 확장되어 주제 의식이 인류 보편사적인 문제임을 명시한다. 작가는 동물들의 미사가 열리는 미국의 대성당, 소비에트 정권하의 러시아, 네 가구만 살고 있는 작은 프랑스 마을 등 전혀 다른 배경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탄생, 죽음, 사랑, 배신 등 인류 전체의 일상 세계를 조명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일구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삶의 참모습과 의미를 보여 준다. 소소한 사건을 잣아 거대한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세계관을 통해 독자는 그 누구의 어떤 삶일지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본문 속으로
너는 곧 잎사귀와 돌멩이들, 사람들, 구름의 아름다움이 바로 한 사람의 장인의 손으로 엮여져 있다는 것을, 미풍이 잎사귀들과 그 그림자들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잔물결 위에 새로운 무늬가 생기고 늙은이들이 세상을 떠나가고 갓 태어난 것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동안 구름은 물이 되어 사람과 동물 의 목을 적시다가 이윽고 그들의 녹아내리는 몸과 함께 토양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이 모습을 관찰하는 우리 짜르의 작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기뻐하고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춘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작가를 눈치채지 못하면서.
- 작가 서문에서
“베네치카!” 나는 간절함을 담아 그를 불렀다. “당신은 벌써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천상적인 것을, 당신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것들을 즐기고 있을 테니 사람들로 가득 찬 기차간은 더 이상 아무 상관없겠지. 하지만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될까? 그들은 오래된 울타리 밑에 자신들의 낡아 빠진 날개를 접고 앉지도 못하고, 무력함과 뉘우침의 온화한 눈물로 그 값을 치르지도 못하며, 반대로 술에 취한 피를 흘리고는 도끼나 탱크를 들이대고 있어. 이 작은 아이들은 또 대체 어떻게 될까?” 명쾌한 대답을 들으리라는 어떠한 희망도 없이 나는 세상을 떠난 베네치카 예로페예프에게 물었다.
- 「모스크바-포드레스코보, 1992」에서
울리츠카야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거대한 역사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작은 인간들의 사랑과 갈등, 용서와 화해를 다룬다. 우리의 이 작품 역시 작품 제목이 말하듯, 일차적으로는 황제로 이해되는 ‘짜르’의 일반 대중들의 삶에 대한,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우주를 창조하고 관장하는 ‘신’으로 이해되는 ‘짜르’ 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작가의 총체적 사유가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과 결합하여 놀라운 예술품으로 빚어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 작품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와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의 포스트 소비에트 사회의 러시아 인들이 절망과 압제의 어둡고 암울함 현실 속에서도 담담하게 살아가며 꽃피워 내는 삶에 대한 기대와 기쁨, 사랑을 읽을 수 있다. - 박종소, 「해설」에서
저자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1943년, 가족이 2차 세계 대전을 피해 머물렀던 러시아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종전 후 가족 모두 모스 크바로 돌아왔고 울리츠카야는 모스크바 대학의 유전학 및 생화학부를 졸업했다. 울리츠카야는 소비에트 연방 과학 아카데미 산하 유전학 연구소에서 2년 간 근무했지만 1970년대 지하 출판물 제작 및 유포에 연루되어 연구소에 서 해직당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코 공직에 나가지 않았다. 실내 유대인 음악 극장(КЕМТ)에서 문학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 고 수필, 아동극, 라디오 드라마, 인형극을 썼으며 연극 평론가로도 활동 했다. 또 몽골의 시들을 러시아 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980년대 말부터 잡지에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영화로 제작된 시나리오 「리베르티의 자매들」(1990, 블라디미르 그라마티코프 감독)과 「모두를 위한 여인」(1991, 아나톨리 마테시코 감독)의 작가로 유명해 졌다. 1992년에는 문학지 『신세계』에 단편 소설 「소네치카」를 발표했다. 이 단편은 1994년 프랑스 어로도 번역되어 프랑스에서 ‘올해의 번역’으로 꼽 히기도 했고, 그 덕분에 울리츠카야는 프랑스의 ‘메디치상’을 받기도 했 다. 1993년에는 첫 번째 선집 『가난한 친척들』이 프랑스 어로 번역, 출간 되었다.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러시아 ‘부커상’을 수상 한 『쿠코츠키의 경우』(2001), 러시아 ‘올해의 소설상’을 받은 『당신의 슈릭 올림』(2003), 러시아 ‘올해의 문학상’을 받은 『우리 짜르의 사람들』(2005), 러시아 ‘최우수 문학작품상’을 받은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2006) 등이 있다.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주요 문학상을 모두 휩쓴 류드밀라 울리츠카 야는 2012년 우리나라에서 제2회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녀의 작품은 지금까지 3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박종소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어문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한 단계 높은 러시아어 1, 2』, 번역서로는 바실리 로자노프의 『고독』,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아저씨의 꿈』,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악에 관한 세편의 대화』,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의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열차』,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우리 짜르의 사람들』 등이 있으며 공역으로 『말의 미학』, 『무도회가 끝난 뒤』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