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이 청대 말기 4대 견책소설 작가로 추앙한 이보가의 장편소설
청대 말기 견책소설(청대 말기에 나온 사회소설로, 관료 사회의 부패 및 무능을 폭로하고 백성의 우둔함을 풍자한 소설)의 유행을 불러일으키며 동시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문명소사』가 을유세계문학전집 68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1. 작품 소개
격변기 중국 관료 사회의 부패와 무능, 설익은 지식인들의 이중성,
기녀와 같은 기층민들의 실상을 꼬집은 수작
이 작품은 청 정부가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잇달아 경자사변(庚子事變)을 겪으면서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고 새 정치, 새 학문을 내세워 근대화를 추진하던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 말 중국 소설계에서 정치‧사회적 비판 의식이 가장 두드러진 작가 중 하나인 이보가는 60회의 다양한 일화를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와 미숙하고 충동적인 지식인, 구습에 얽매어 있는 우둔한 백성 등 다양한 군상들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문물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문명소사』 속 관료 사회는 시험을 보고 안 되면 돈으로 관직을 사는 것이 당연하고(심지어 자식이 일곱 살 때 기부금으로 관직을 사 어린아이가 이미 종4품인 경우도 있다), 돈이면 다 해결된다. 그야 말로 부패와 비리의 퍼레이드다. 그렇다고 모든 관료가 다 무능하고 부패한 것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바른 뜻을 품고 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하지만 돈으로 관직을 사는 중국의 관습과 꼬였던 일도 인맥과 뇌물이 동원되면 문제가 해결되고 성공의 길이 열리는 모습, 백성보다는 자신의 관직 부지와 정치적 공적이 우선인 모습이 대부분이고 이것은 부패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작가는 관료에 대한 비판과 폭로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혁명 운운하는 인물들이 사실은 유신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미숙한 모습, 남을 속이고 제 잇속이나 챙기는 모습, 아비의 힘에 기대 권력을 누리거나 구습을 답습하는 모습 등을 통해 설익은 지식인, 얼치기 가짜 문명인을 비웃는다. 그리고 기녀와 기층민들의 실상과 우둔함도 아울러 꼬집는다.
그런데 청 말 백성들은 우둔하긴 해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줄 안다. 비록 한때 일어난 바람같이 끝나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관리를 또는 관리가 두려워하는 서양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설을 듣고 서명 한 번 했다가 잡혀 갈 게 무서워 친척집에 숨어 지내기는 하나 불의에 뜨거워지는 젊은이도 있으며, 청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한 유신파의 위기의식이나 대처 방안 중 꽤 정확하고 실질적인 것들도 있다. 이런 여러 계층의 다양한 일화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나라가 걸어가야 할 길은 새로운 문명을 향한 점진적인 근대화의 길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겁하고 무능하며 미련하고 탐욕스러운 수많은 관료들의 이야기 끝에 지혜롭고 강직한 관리 한 사람을 등장시켜 희망을 말한다.
60회에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동과 관료들의 썩은 내 나는 모습들을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은 그 모습이 단지 백여 년 전 중국에서 벌어진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윤 추구만 생각하며 최소한의 경비로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운영하는 자본가, 권력을 차지하면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치인, 자신의 이익 때문에 시대의 흐름이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권력가들이 2014년 대한민국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된 중고 여객선을 싸게 구입해 화물 과적, 필요한 보수 요청 거부, 저임금 등 형편없는 수준으로 배를 운항해 오다 터진 세월호 참사,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그리고 결국 내놓은 답이 ‘해경 해체’인) 무능한 정부가 전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 빠뜨렸고 돌아오지 못한 어린 생명이 아직도 바닷속에 남아 있기에 이 책은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음 회를 궁금해 하며 재미있게 읽다가 당시의 무능, 부패, 우둔함이 지금도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느끼며 이보가의 조롱에 낯뜨거워짐을 넘어서 한숨을 내쉬게 되는 것이다.
2. 줄거리
근대로 전환하는 격변기 청나라 말, 유계현이 호남성(湖南省)에 태수로 부임한다.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바로잡겠다는 뜻을 품은 그는 우선 시험을 통해 인재를 뽑으려고 문동(文童)들의 경전과 고문 능력을 시험한 이후, 활쏘기 등으로 무동(武童)들을 시험한다. 그런데 관내에서 서양인의 찻잔을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해 유계현이 만사를 제쳐 두고 그 사건을 수습하러 서양인을 찾아가면서 시험을 보려던 사람들이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기다리게 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무동들이 퍼뜨린 어처구니없는 소문에 분노한 백성들이 무동들과 함께 관으로 쳐들어가고, 결국 엉뚱한 오해가 불러온 사건과 서양인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려는 간계 그리고 이어진 중상모략으로 유계현은 뜻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자리를 내 주게 된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부축등은 백성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이 앞선 사람이었다. 호남성 사람들은 충직한 태수 대신, 백성 위에 군림하며 세금을 착취하고 치적을 세우는 데만 급급한 태수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3. 판본 소개
원본으로는 타이완에서 출판된 삼민서국(三民書局) 2007년판 장소정(張素貞) 교주(校注), 무천화(繆天華) 교열본(校閱本)을 사용했고, 참조 판본으로는 중국 대륙에서 출판된 중화서국(中華書局) 2002년판 한추백(韓秋白) 점교본(點校本)을 활용했다.
4. 본문 속으로
백홀관(白笏綰) 제군(制軍)은 양강총독이 된 후, 아편을 먹거나 첩을 끼고 노는 것 외에 기타 나머지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가 부임한 후로 수하의 호남인들은 조용했다. 하여 조정에서는 도리어 그를 몹시 신뢰하여, 임명한 지 5~6년이 다 되도
록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다.
요 몇 년간 조정에서는 유신(維新)을 예의 주시하여, 방치하였던 많은 일들을 대거 새롭게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학당 개설에 더욱 치중하였는데, 백홀관은 이제껏 어떤 일도 관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또 아편을 크게 피웠다. 그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즈음에야 겨우 일어났다. 하여 일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당 몇 곳을 개설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조정의 계획을 대충대충 해치울 생각이었다. 자신이 관장하지 못할 터라, 이 일을 곧 강녕부 지부에게 일임했다. 그러고는 또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유유자적했다. - p571
어쩌면 그 내용은 비록 다르지만, 머리와 가슴, 말과 행동, 구호와 실천이 제각기 따로 노는 삶이며,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식을 농하면서 저 잘난 체 뽐내는 작태며,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서양인들을 경원하는 떠받듦이며, 무엇보다 잇속 챙기기에는 재빠르되 시민들의 삶을 책임질 일에는 복지부동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관료들의 행태며, 그리고 그로부터 빚어지는 온갖 웃기고도 슬픈 소동은 지금-여기에도 여전히 편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여 근대로 전환하는 과거 격변의 시대에 얼치기 가짜들이 저도 모르게 벌이는 한심한 소동과 어처구니없는 일화들로 구성된 60회라는 길다면 긴 편폭의 소설을 읽는 내내 내게서 떠나지 않은 것은 저들에 대한 비웃음이나 조롱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우리의 지금-여기 현실에 대한 낯뜨거움이었다. - 해설 중에서 (p834)
저자
이보가
李寶嘉 : 중국 청나라의 소설가이자 신문, 잡지 편집인. 1867년 강소성(江蘇省) 무진(武進)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보개(寶凱)였는데 보가(寶嘉)로 바꿨다. 자는 백원(佰元), 별호(別號)는 남정정장(南亭亭長), 필명으로는 유희주인(遊戱主人), 구가변속인(謳歌變俗人) 등이 있다. 사대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산둥성에 사는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시부(詩賦)에 뛰어났던 그는 과거에 응시하여 수재(秀才)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인 향시(鄕試)에는 급제하지 못했고, 그 또한 더 이상 관직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1896년에 가족과 함께 상해(上海)로 갔는데, 그곳은 청나라 조정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어서 진보적 성향의 작품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지남보(指南報)』, 『유희보(遊戱報)』, 『세계번화보(世界繁華報)』, 『수상소설(繡像小說)』 등의 신문, 잡지를 경영하면서 자신이 쓴 소설을 간행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문명소사(文明小史)』,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남정필기(南亭筆記)』, 『남정사화(南亭四話)』, 『우향실인보(芋香室印譜)』, 『예원총화(藝苑叢話)』, 『골계총화(滑稽叢話)』, 『진해묘품(塵海妙品)』, 『기서쾌도(奇書快睹)』, 『성세연탄사(醒世緣彈詞)』, 『해상번화몽(海上繁華夢)』 등이 있다. 특히 『관장현형기』, 『문명소사』가 견책소설(譴責小說, 청대 말기에 나온 사회소설로 관료 사회의 부패 및 무능 등을 풍자하고 폭로한 소설)의 유행을 불러일으키며 동시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상소설』이라는 잡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던 중 폐 질환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06년 40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청 말 중국 소설계에서 정치사회적 비판 의식이 가장 두드러진 작가 중 하나인 그는 『관장현형기』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당시 중국 관료 사회의 부패 및 무능을 다룸은 물론, 주요한 정치적 사건, 기녀와 같은 기층민들의 삶, 설익은 지식인들의 이중성 등을 다루었다. 특히 근대로 전환하는 격변기에 얼치기 가짜 문명인들이 이끄는 근대화의 모습이 어떤지를 유학생이나 자칭 개명했다는 지식인의 이중성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 준 『문명소사』는 제재의 측면에서나 예술적 성취, 당시에 끼친 영향력 등으로 볼 때 중요하고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역자
백승도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장자’에서의 진인(眞人)의 담론 방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지금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서 상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도와 로고스』(공역),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공역), 『늑대의 꿈』, 『장파 교수의 중국 미학사』 등의 번역서가 있다.